신춘문예에 응모하면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한 달여 시간 동안 6편의 소설을 썼다. 5편의 단편소설(경향신문, 문화일보, 부산일보, 국제신문, 경상일보)과 1편의 중편 소설(동아일보)을 써서 6개의 신문사에 응모했다. 4편은 우편으로 2편은 직접 신문사를 찾아가서 원고를 건넸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아니었을까?
2024년의 마지막, 나름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일을 해내고 싶었다. 그건 아마 등단이었던 모양이었다. 글쟁이(무명의)가 글쟁이(공인된)에게 인정받는 일이었다. 귀국 후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국에 문학 열풍이 불어 닥쳤다. 그 여풍이 신춘문예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응모자들이 몰렸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속 결과는 실패다. 나의 글은 아직 경쟁력이 부족한 듯하다. 무명이 나와 더 잘 어울리는 모양이다.
글에서 돈으로의 가치교환
글을 쓰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정확히는 현실의 삶에 필요한 것을 글로서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글쓰기의 상업화(자본화)를 이뤄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 방법이다. 모든 창작은 순수함에서 시작하지만 순수함은 현실 사회에서 지속되기 어렵다. 그 순수함이 자본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럼 창작의 상업화가 시작된다.
7년이 넘는 시간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내가 쓴 글이 돈이 된 적이 없었다. 아! 잊을 뻔했다. 얼마 전 브런치의 한 독자 분께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1만 원을 후원해 주셨다. 감사하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 주었다. 첫 번째 상업화였다. 일만 원이라는 돈이 고맙다기보다는 다른 독자보단 조금은 더 깊은 관심이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저 시급이 1만 원(25년 기준, 10,030원)인걸 감안하면 굳이 내가 7년간의 써온 글을 경제학적 가치로 판단하면 한 시간의 노동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돈이 아닌 댓글과 좋아요 또한 내가 글을 쓰는데 많은 힘이 된다. 하지만 작가가 좀 더 오랜 시간 상상과 허구의 세계에 머물기 위해서는 현실의 삶을 지탱할 무언가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작가는 삶과 글을 병행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글만으로는 삶을 지탱하며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걔중엔 삶을 최소화하고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글을 쓰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존경할 수밖에 없다. 과거 위대한 작가 중에는 그런 작가들이 많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삶에서 벗어나 있을 때 삶을 좀 더 냉철하고 명확하게 드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들이 장편의 글을 쓸 때 잠시 세상과 단절하고 칩거 혹은 일상의 공간에서 떨어져서 쓰는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삶과 일상의 관계 속에서는 삶과 일상을 관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시간은 현실적인 문제들에서 멀어지며 소홀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멀어진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 글이 돈으로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시간 동안 현실의 삶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많은 돈을 벌기보다 글을 쓰는 동안 현실을 버틸 수 있는 돈만 있으면 된다. 물론 그 돈이라는 것이 작가들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너무 많은 부를 얻은 유명 작가는 글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질 거라 생각한다. 작가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글을 쓰기보다는 강의와 대중매체에 출연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자들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대중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의 본업과 소명은 글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글이 아닌 다른 방식을 선호하고 그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된다. 그것이 더 빠르고 많은 부를 가져주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이제 작가가 아닌 인플루언서 혹은 강연자로서 본업을 옮기려는 것이다. 인플루언서와 강연자도 책을 쓴다. 그 순서가 다를 뿐.
7년 만의 겨울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 어느덧 세 달이 지났다. 7년 만에 다시 한국의 겨울을 맞이했다. 남반구의 한여름 더위 속 크리스마스에 익숙해져 가던 나였다. 7년 동안 옷장 속에서 잠자고 있던 겨울 옷을 꺼냈다. 다행히 어머니가 나의 옷들을 모두 버리진 않았다. 두툼한 점퍼와 머플러를 꺼내 입고 겨울을 맞이했다.
그리고 맞이할 새해엔 여태껏 살아보지 못한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대에 시작한 직장인의 삶으로 30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삶의 터전을 바꾸고 지구 반대편에서 청소부, 식당 주방보조, 택시와 택배 기사, 그리고 목수로 6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직업은 단연 목수였던 것 같다. 가장 오랜 시간 했던 일이고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손끝으로 사물과 공간을 느끼고 체험하는 이 세계는 항상 컴퓨터 속 가상의 세계 속에서 갇혀 있던 나의 사고와 관념을 뒤집어 놓았다. 인생의 중반부 이미 서로 다른 아주 이질적인 두 종류의 삶을 모두 경험했다. 물론 그 삶 속에는 또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관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두 세계가 충돌했다. 혼란스러웠다.
정반합(正反合)의 성장
헤겔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정반합의 불편한 성장의 과정’이라고. 정말 불편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처한 환경은 나를 바꿀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만약 삶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바꾸어버리면 된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면 그때부터 변화는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다만 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하지 못한다. 세월이 가면 너무 많은 것들에 얽혀버려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익숙한 것들 속에 머물면서 변화하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다. 강한 의지와 결단 그리고 익숙한 것들 속에서도 그것들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무심해져야 한다. 많은 주변의 질타 혹은 서운함을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일상의 삶 속에서 변화할 수 있는 자는 더욱 위대할 수밖에 없다. 그게 가능할지는 나로서는 다소 회의적이지만 말이다. 내가 바뀌는 변화는 환경과 관계의 변화 없이는 힘들다.
익숙한 것들에 다시 익숙해지려 할 때…
한국에서 살아온 시간은 한국을 떠나서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그 말은 한국에서의 삶이 더 익숙하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온 한국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익숙해지고 있었다.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똑같은 삶으로 되돌아갈 순 없다. 그럼 이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익숙한 것들과 관계들이 다시 나를 그때의 나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이제 그 길은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고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이 너한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네가 세상에 맞춰야 한다”
이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맞추고 나에게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지금 나의 생각이다. 내가 속한 삶의 공간과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삶을 단순화시켜 버리기로 했다. 그걸 요즘 사람들은 미니멀 라이프라고 얘기하더라. 뭐 TV에 나오는 그런 자들처럼 유별나게 미니멀할 순 없겠지만 그런 삶을 지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벗어날 수 없는 삶 속에서 휘둘리지 않는 방법 중에 하나는 삶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과거엔 수많은 관계와 스케줄에 숨 가쁘게 쫓고 쫓기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것들을 만들지 않는다. 시간을 내가 주도하려 한다. 당장의 효율과 부가가치를 창출해 만들어 내는 노동력이 되기보단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고 당장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과정 속에서 찾고 만드는 나만의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었다. 인간의 성장 형태가 선형이 아닌 비선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매주 혹은 매달 꼬박꼬박 눈에 보이는 응당의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과 조금은 멀어질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과거 6년의 시간 동안 깨달았다. 내가 읽고 쓰면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읽고 쓰면서 나를 알고 타인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지금 돌아온 이곳에서 읽고 쓰던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사회와 주변으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앎과 삶의 동행이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이전과는 다른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고 내가 타인과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며 선한 영향력을 퍼뜨릴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명하나 유명한 삶
내가 하고자 하는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또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되지 않으려면 당면한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생계를 위한 경제적 행위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글을 돈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전보다 많은 시간 글을 썼다. 그리고 글들을 출판사에 투고하고 공모전에 보내고 새로 만든 소설들을 신춘문예에 보냈다.
나는 페소아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의 줄타기를 할 만큼의 깜냥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멀티플레이가 되지 않는 나의 뇌를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현실세계에서 나의 이상세계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테스트해보아야 했다. 이것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결국 현실의 삶이 이상을 밀어낼 수밖에 없다. 현실을 지탱하면서 이상을 키워야만 한다. 이건 어찌 보면 현실과의 타협이고 또 달리 보면 이상의 대중화이고 상업화이다.
글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 표현이 당대의 대중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느냐로 글의 절대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왜냐 종종 시대를 앞서간 자들의 글은 언제나 그들이 죽고 나서 빛을 보기도 한다. 페소아처럼. 사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다. 생전엔 불운했지만 죽고 나서 영원해졌다. 무명했지만 유명해졌다. 물론 당대의 대중에게 공감을 얻고 함께 호흡하는 예술가들도 많다. 나는 그걸 시험해 보고 싶다.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해보지 않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그래서 나의 글을 전문가들에게 퍼뜨렸다. 세 달여의 시간 동안 거침없이 써내려 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떠나보내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도 편안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등단은 실패했다. 신은 나에게 무명하나 유명한 길을 바라는 모양이다. 난 이제 내가 마주한 상황과 처한 결과가 만들어 내는 다음 상황을 따라갈 뿐이다.
나는 다만 내가 가는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