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401호 VIP 1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치도치상 Jan 15. 2024

반년의 삶이지만 서러워요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이 이렇게 서럽던가요.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지만 흐르는 눈물은 감출 수 없었어요. 엄마라 스스로를 칭하는 여자는 말과 행동이 달랐어요. 말로는 다 먹고 준다고 하면서 음식을 자기 입으로만 연신 가져갔을 뿐이에요.


콩콩이는 서러웠어요. 배신감이 찾아왔어요. 식구는 밥을 함께 먹는 사이라고 들었어요. 그러나 콩콩이에게 찾아온 것은 미지근한 공모양 치발기일 뿐이었어요.


최근 마련된 이유식 의자에 콩콩이를 앉히고는 아빠라 스스로를 칭하는 남자는 여자와 함께 먹기 바빴어요. 어찌 이를 가리켜 식구라 할 수 있나요? 콩콩이는 치를 부르르 떨었어요. 이가 아직은 없지만 떨었어요.


콩콩이는 엄마 아빠가 엄마 아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옛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어요. 병원에서 바뀐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조리원에서 바뀐 것일까요? 진짜 엄마 아빠는 어디에 가고 자기 입만 입이라는 두 남녀가 콩콩이 곁에 남겨진 걸까요?


고독했어요. 남자와 여자는 빨간 국물 속의 면을 건져먹기 바빴어요. 콩콩이는 애꿎은 치발기 끈만 만지작 거렸어요. 예전 같았으면 소리소리를 지르며 울었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숨죽이고 눈물을 삼켰어요. 인생은 이렇게 고독한 건가요?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던데요.


콩콩이가 스스로 챙겨 먹을 정도로 컸다면, 이렇게 서럽지는 않았을지도 몰라요. 고작 반년을 산 콩콩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유리창에 붙은 딸랑이 돌리기, 각종 장난감 및 물건 핥기, 여자와 남자를 바라보고 웃기, 울기, 떼쓰기, 소리소리 지르기, 뒤집기, 맘마 먹기, 똥 싸기 정도가 고작이에요. 심지어 잠도 혼자 못 드는 콩콩이에게 남자와 여자의 대우는 가혹했어요.


남자는 다 먹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는 분유를 타기 시작했어요. 100미리, 150미리, 200미리. 분유가 콩콩이의 눈에 밟혔어요. 콩콩이는 입꼬리가 올라갔어요.

“아아앜!”

콩콩이는 소리를 질렀어요. 다리는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지기를 반복했어요. 고개 역시 위아래로 재빠르게 움직였어요.


젖병을 물자마자 콩콩이는 허겁지겁 빨기 시작했어요. 게 눈 감추듯 분유는 사라졌고, 이내 안도감을 느꼈어요. 엄마는 분유를 해치운 콩콩이를 안아주었어요.


콩콩이는 날아갈 것만 같았어요. 아! 이백 미리의 분유의 힘이란. 서러움, 배신감, 고독감은 눈 녹듯이 사라졌어요. 콩콩이는 다시 방긋방긋 미소를 지었어요. 다시 식구가 된 기분이었나 봐요. 물론 콩콩이가 빨간 국물의 면발을 엄마 아빠와 함께 먹으려면 앞으로 지금까지 산 반년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야겠지만요.

이전 14화 2&4에 "강"이 있는 레이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