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적당히 사는 네와 뭐든 완벽한 나 사이의 벽은 허물어질 수 있을까? 인생은 참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치아에 쩍쩍 들러붙는 엿 같다고 할까? 길 가다 돌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당황스럽고 아프고 짜증 났다. 돌은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다. 잘못은 그 돌을 못 보고 넘어진 나에게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이 참 막막하고 한심스럽다.
공부에 열중하고 아이를 그이한테 맡긴 결과 알콩이 대상포진에 걸렸다. 일도 하고 육아도 하느라 스트레스가 심했나 보다. 나보고 제발 적당히 하라는데. 내겐 그 말이 마치 ‘무슨 공부냐. 애나 보라’는 말로 들렸다. 젠장.
내 인생도 중요하다고. 나도 내 일을 하고 싶다고. 7시면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정장 입고 출근하고 싶다고. 좋아하는 것에 맘먹으면 올인하는 나와 뭐든지 적당히 사는 그와 첨예하게 대립되는 포인트다. 이렇게 가치관도 성격도 다 안 맞는데 어떻게 결혼까지 하고 애까지 낳았을까? 그래. 딱 하나 맞는 건 유머 코드. 연애할 땐 이 남자 재밌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 지금 새벽 2시. 낮에 쥐 똥만큼의 커피를 마신 탓인지 우울한 기분 탓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다 그이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토익 시험이 이달 말인데 안되면 다음에 보라는 그 말이 참 쉽다. 누구는 그것 때문에 목숨 걸고 공부하는데.
뭐든 적당히 사는 그 사람의 지난 인생과 나 사이의 거리가 참 멀게 느껴진다. 갑자기 웬 토익시험이냐 물었다. 굳어버린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알아들을까? 물론 목적은 대학원 준비를 위함이었다. 15년 만에 느낀 수험생의 긴장감과 사회에 속하기 위한 노력은 짜릿했고 잊고 있던 과거 그 맛의 미각세포가 되살아난 것 같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900점. 오. 아직 죽지 않았다. 되었다. 이젠 뭐든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바닥을 쳤던 자존감이 어깨 위까지 올라앉았다. 팔짱을 끼고 말이다. 훗.
현재는 미래의 역사다
책을 읽다 마음을 후비고 들어오는 문장에서 멈췄다. 입양아가 쓴 <서른 살의 레시피> 주인공은 3살 때 버려지고 미국으로 입양된 후로 좋은 양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풍족한 요리로 영혼을 달랬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부모는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 정체성에 질문을 던졌다. 내가 요즘 그렇다. 새벽녘 2시~5시, 무려 3시간 동안 잠에서 깬 아이를 달래고 다시 재우느라 진을 뺀 터라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했다. 아이는 여전히 먼저 일어나 아직 꿈나라인 엄마를 깨우지 않고 손뼉 치다, 옹알이하다, 벽에 기대다, 드러누워 엄마가 깨기를 기다렸다. 분 단위로 엄마가 눈을 떴는지 확인하며 참을성 있게 잘도 놀았다. 간밤에 울며 불며 한시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은 게 미안했는지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나는 이미 잠에서 깼지만 그러지 않은 척 숨을 죽이고 연기를 하고 있었다. 단 1분이라도 더 누워있고 싶어서다. 그이가 와주기를, 아이를 안고 나가 분유를 타 주고 놀아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희망일 뿐이다. 이틀 째 마음을 뺏긴 책을 들고 조용히 침실로 들어왔다. 마저 페이지를 넘기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는 더.이.상. 안 되겠어.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사랑과 돈 모두를 가졌지만 정작 그의 마음은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뿌리를 찾아 떠나야 함을 직감하듯 나 역시 눈은 책의 활자 어딘가로 응시하고 있지만 자아정체성을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주 오랫동안. 육아로 지친 육신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며, 늘어진 영혼을 어떻게 생기 있게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인지 새로운 구상을 하느라 굳어진 뇌는 다시 활기를 띠었다. 오랜만에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며 희망의 호르몬을 발산하기 시작한 것이 기쁘기라도 한 것처럼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마치 18년 전 그 날처럼 말이다. 어두운 밤 천장을 바라보며 홀로 눈을 뜨고 있었다.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미래를 생각하니 암담했다. 변화 없는 이 삶의 새로운 길이 필요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마음은 외치고 있었고 고졸 신분에 사표를 냈다. 몇 개월 후 대학 캠퍼스 분수대에 앉아 흩날리는 봄의 벚꽃을 바라보았다. '그래, 잘했어. 이제 한 발작 움직인 것뿐이야.' 23살 그때의 도전은 만개한 벚꽃을 위한 시작이었다. 눈을 감았다. 향긋한 봄 냄새가 가득했다.
그로부터 18년 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고작 10개월이 되었을 뿐인데 여전히 정체성을 찾아 헤매고 있다. 물론 행복하다. 자는 아기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이제 이쁜 짓을 하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 딸의 앙증맞은 모습을 볼 때도, 내 유전자를 후세에 남긴 것에 대해 참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내 온전한 행복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주름진 내 미간을 귀여운 손으로 딸아이가 고루 펴준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심각한 생각이라도 하느냐고 묻는 것처럼 아이는 내 눈을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가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렇다. 엄마는 변화를 꿈꾸고 있다. ‘나’라는 존재를 일깨울 수 있는 무언가 다른 일이 지금 필요했다. 분유 타고 이유식 만들고 청소, 밥, 빨래하는 엄마, 아내가 아닌 OOO 이름 석자의 존재 유무와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홀로 자립할 수 있을 매개체, 능력과 재능을 다시 키우고 살려야 했다. 어쩌면 이미 채워져 있을지 모를 그것을 깨우고 싶었다. 간절히. 나라는 본질을 무엇으로 다시 채워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지금은 속이 텅 빈 금세 부스러지는 오래된 공갈 과자와같았다. 더는 달콤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속이 무엇으로 채워졌을지도 모를 빈 집 말이다.
몸의 자양분
식탁 위 메마른 화분의 나뭇잎이 힘없이 매달려 있다. 요즘 내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물을 주어야 다시 활기를 찾을 텐데, 주인인 나부터 나에게 물을 주어야겠다. 나에게 자양분은 무엇인가? 햇빛과 거름 그리고 충분한 수분이 꽃에게는 잘 자랄 수 있는 영양분이다. 몸의 모든 에너지가 지구가 아닌 우주 밖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이제 내 영혼마저 내가 아닌 공중의 어딘가에서 편안한 안식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 마치 ‘이 몸에선 더 이상 얻을 게 없어.’ 하고 속삭이듯… 눈은 멍하고 동작은 느리다. 생각과 말이 다르게 나가며 만사가 귀찮다. 어딘가로 홀로 훌쩍 떠나고 싶다. 내 영혼을 다시 주워 담기 위해서 말이다. 인간의 지친 몸과 병든 영혼은 자연으로부터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산, 들, 바람, 충분한 햇빛 그리고 철썩이는 바다, 파도, 석양, 일출 그것들로부터 지친 내 몸에 생기 있는 에너지를 다시 채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