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과 달러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유미는 모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20년 동안 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것만 봐도. 베트남 같은 나라에 병원도 짓고, 학교도 짓고, 농민들 교육도 하고… 나름 이색적인 일이라 지루할 틈이 없기도 했다. 제안서를 검토하고, 밀고 당기고 협상도 하고, 남들은 쉽게 살아보지 못하는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도 6년을 살았다. 언제 말을 바꿀지 모르는 나라들과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사업을 하는 게 적성에 맞았다. 어려운 과제를 맞닥뜨리면 오히려 투지가 불타오르곤 했으니까.
10년 전 태국에서 열린 국제개발 콘퍼런스에서 유미는 한스를 처음 만났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통감각이 서로를 친근하게 느끼게 했다. 서로의 전문분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나누며 시작된 관계는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다. 마른 체구에 안경을 쓴 한스는 뭐든 꼭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곤 했다. 안경 너머로 작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평가하고, 사업을 만드는 일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쉴 때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재밌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영화를 흉내 내곤 했다. 밤에는 올드팝을 노래하고 EDM을 작곡하고. 유미는 그렇게 초등학교 소년처럼 신이 난 한스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오랜만에 둘 다 한국에서 일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유미는 엘살바도르에서, 한스는 에콰도르에서 근무하다가 4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함께 살면서, 둘은 다시 한번 서로를 알아가는 몇 달을 즐기고 있다.
5월의 토요일 아침, 먼저 잠에서 깬 유미는 조용한 거실로 나왔다. 집 앞 가로등 불빛을 가리기 위해 내려놓은 블라인드는 거실전체를 크림색으로 감쌌다. 크림색 소파, 크림색 벽지, 크림색 블라인드. 텅 빈 공간의 황망함에 공기가 약간 희박해지는 느낌이 들어 유미는 블라인드를 올렸다. 계곡옆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벽오동이 눈에 들어왔다. 도톰하고 커다란 초록잎들과 콩알만 한 열매가 들어있는 갈색 깍지를 뽐내고 있다. 벽오동의 잎은 사람의 머리만 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부유한 느낌이 들었다. 유미는 핸드폰으로 조용필의 ‘꿈’ 노래를 틀고 조용히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아빠가 좋아했던 노래인데, 유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래가 공감이 될 만큼 나이를 먹은 건지, 어제 최종면접까지 보고 힘이 빠져 마음이 말랑해진 건지, 유미는 20여 년 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를 떠올렸다. 캐리어 하나 들고 서울역에 내렸다. 당장 집을 구할 돈이 없어 큰고모 집에 얹혀살았었다. 고향을 떠나서 외롭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돌아보니 그랬던 시절이었다. 평생을 살았던 남쪽의 항구도시 부산을 떠나 처음 겪은 서울의 겨울은 욕이 나오게 추웠다. 그랬는데, 어느덧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열대기후에 피부는 이국적으로 그을렸고, 돌이킬 수 없는 주근깨가 생겼고, 땀구멍은 넓어졌다. 이젠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여권과 달러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노랫소리에 잠이 깬 한스가 거실로 나왔다. 유미는 ‘잘 잤어?’하고 인사했다. 유미는 좀 더 크고 전문적인 기관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해오다 최근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기후변화 관련된 국제기구 최종 면접을 막 마친 참이었다.
“나, 어제 면접 잘 봤는지 모르겠어. 준비한 것도 다 못하고.”
한스는 잠이 덜 깬 눈을 반쯤 뜨고는, “후후, 그렇게 말은 해도 잘 봤을 거면서. 그리고, 너는 다양한 나라에서 일해 본 경험도 있고, 복잡한 걸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잖아. 면접관들도 딱 보면 안다고.” 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그런가’ 유미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유미는 나른함을 떨치고 잠에서 깨듯 소파에서 일어났다. 밥 먹자! 유미의 목소리에서는 불안함의 무거움보다는 미래를 향한 작은 희망의 산뜻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