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윤찬이는 정말 피아노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윤찬이 담임선생님의 문구를 보면서
덜컥 이런 생각이 든다.
'나중에 윤찬이한테 피아노를 쳐보라고 시켜보면 어쩌지?'
'선생님 기대치에 맞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한 순간에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던 어린시절의 내가 스쳐지나간다.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저 감정이고, 나의 기호인데, 나는 그 '좋아한다'는 것을 결과로, 실력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좋아한다=잘한다
그래서 늘 '증명'할 수 없으면 좋아한다는 말 조차 꺼내고 싶지가 않았다.
좋아하면 잘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뒤에 따라올 '판단'의 후폭풍이 두려웠다.
물론 좋아해서 하다보면 잘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좋아한다'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보지 못하니,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온전히 누리지를 못했다.
좋아하면 행복해야 되는데,
좋아하면 불안했다.
저 글 쓰는 거 좋아해요.
(그래도 잘 쓰지는 못해요)
나 피아노 치는거 좋아해요.
(치는거만 좋아해요. 제 실력은 형편없구요)
나 클래식 음악 듣는거 좋아해요.
(좋아만 해요. 근데 곡의 제목을 물으면.. 전 몰라요)
나 애들하고 함께 노는 것 좋아해요.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예요)
그냥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상태로 누리면 될 것을 늘 괄호 안의 말들의 단서를 붙이며 '몰입'의 상태를 나 스스로 방해했던 것 같다.
잘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기대에 못미칠까 두려워서.
늘 나에 대한 기준치가 높았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판단의 목소리'에 발목잡혀 나와 타인을 끊임 없이 판단하고 평가했다.
어릴적 부터 습득되어져 어느 순간 내가 되어버린 판단의 목소리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자유롭지 못한 굴레였음을.
Just like.
나는 그저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즐기고 누릴 뿐임을.
평가하지 말자.
판단하지 말자.
그리고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증명하려 하지 말자.
그렇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때,
상대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관대해지고,
내 아이를 품을 수 있는 품은 넓어지는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사람, 나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다♡
충분히 누려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