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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역

정답은 없어도, 정리를 해보자

by 뜻지 Mar 16. 2025

12~19학년도

브런치 글 이미지 1

 샛별 제도를 운영했다. 일종의 주번 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어린이들에게 주번이라는 명칭을 주기에는 어딘가 딱딱하게 느껴져서 어떤 용어를 쓰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샛별'을 찾았다. 샛별은 태양이 뜨기 전에 새벽하늘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금성의 순우리말이다. 샛별 제도를 어린이들에게 안내하며 샛별을 맡은 날은 그 누구보다도 더 부지런히 학교 생활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매일 남학생 한 명, 여학생 한 명씩 두 명의 어린이가 학급의 일일비서가 되어 우유 가져오기, 칠판 정리하기, 각종 심부름, 특별실 이동할 때 앞지킴이-뒷지킴이, 체육 수업이 들었다면 친구들 앞에서 준비 체조하기 등 자신이 샛별을 맡은 날의 학급 대소사를 챙긴다.


+장점

월별로 1인 1역을 따로 정하거나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 없다.

모든 어린이들이 일 년 동안 번갈아가며 학급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경험한다.


- 단점

샛별이 해야 하는 업무가 유독 많은 날이 있으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저학년의 일일반장과 유사하여 학급임원을 선출하는 중, 고학년에서는 그 역할이 다소 겹칠 수 있다.



22~24학년도

 2년 간의 코로나 원격 수업 시기를 뒤로하고, 다시 본격적으로 대면수업을 시작했던 22학년도. 지역도, 학교도 새로 옮긴 터라 어리바리하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차에, 학년부장님께서 학급에 필요한 1인 1역이 정리된 파일을 공유해 주셨다. 8년 동안 함께 해오던 샛별을 떠나보내고, 학급운영에 1인 1역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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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학년도 3월, 6월, 12월의 1인 1역

 1인 1역 제도를 여태껏 안 하다가, 12년 차에 처음 해보려니 낯설고 막막했다. '그냥 내가 익숙하게 해 오던 방식으로 할까?' 고민하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두려운데 22년 차에 처음 시도해 보려면 더 힘들겠지. 올해는 일단 1인 1역을 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자. 그래야 더 좋은 걸 선택하는 눈도 생길 테니까.'  

 어떤 역할이 학급에 필요한지, 이 역할은 몇 명에게 맡기는 게 좋을지, 어린이들이 1인 1역을 어떻게 고를 것인지. '샛별' 때는 해 보지 않았던 고민이 시작됐다. 3월에 정한 1인 1역은 월마다 학급회의를 하면서 그 내용이나 필요한 인원을 조금씩 수정해 나갔다. 순위가 결정되는 교실 놀이 우승자에게 1인 1역을 제일 먼저 뽑는 권한을 주기도 했고, 번호순으로 1인 1역을 정하고 그다음 달에는 역번호순으로 1인 1역을 고르게도 했다. 최대한 우리 반 어린이들이 골고루 1인 1역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어린이들도 중복해서 고르지 않으며 잘 따라주었고, 자신이 맡은 1인 1역도 한 달 동안 성실히 수행했다. 학급회의에서는 학급신문을 제작하는 1인 1역을 만들자는 의견까지 내며 1인 1역 개편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오삼이반 어린이들 덕분에 함께 만들어가는 학급경영의 즐거움을 배웠다. 교사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차려두고 시작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배웠다. 학급경영에서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반이 지향하는 것과 우리 반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대원칙을 세웠다면, 그 외의 소소한 살림 방식은 함께 맞춰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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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역 아이들이 성심성의껏 제작한 학급신문. 금손이 참 많았던 오삼이반. 편집장인 나는 도화지 제공밖에 한 게 없었다.

 23년도에도 샛별이 아닌 1인 1역을 운영했다. 23년도 학급 세우기 주간에 어린이들에게 1인 1역 이름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귀엽고 재치 있는 작명 실력 덕분에, 어린이들을 따라 깔깔 웃으며 덩달아 즐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런 소소한 이름 붙이기 활동을 통해 그해 어린이들과의 티키타카 궁합도 가늠해 볼 수 있으니, 여러모로 일석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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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학년도 3월, 6월, 12월의 1인 1역

  나는 다했니 다했어요 플랫폼을 학급운영과 수업에 유용하게 활용해 왔는데, 사루피반 1학기 학급 회장 어린이가 1인 1역으로 월급 쿠키를 받고 싶다는 의견을 건의했다. 어린이는 옥효진 선생님의 세금 내는 아이들 유튜브를 흥미롭게 본 모양이었다. 1인 1역 별 난이도를 비교하여 월급 쿠키의 개수를 정하고, 쿠키 가게 메뉴 가격에 준하여 2학기부터 1인 1역 쿠키 월급을 도입했다. 월급을 주어야 했기에, 1인 1역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는지 꼼꼼하게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1인 1역 점검표를 만들어서 체크를 했는데,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었다. 23년도에는 수기 양식에 체크를 했고, 24년도에는 다했니의 체크리스트 양식 자체에 체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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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수기 점검표 양식. (우) 다했니의 체크리스드 점검표 양식

+ 장점

잘 운영된다면 체계적으로 학급을 관리할 수 있다.

학급화폐와 연계되는 경우 직업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 단점

매월 새로운 1인 1역을 정하고, 한 달간의 활동을 반성하는 시간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1인 1역을 학급화폐와 연계하는 경우에는 1인 1역 수행에 대한 점검이 필수적인데, 꽤나 품이 들어간다.

 

 쿠키 월급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에게 있어 1인 1역은 학급경영으로 하는 많은 활동 중에서 학생들이 학급을 위해 봉사하는 역할 정도였다. 하지만 쿠키 월급을 도입하고, 세금 내는 아이들 유튜브와 경제금융연구회의 연수를 찾아 들으면서 1인 1역 운영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나의 교실에서는 어린이들이 1인 1역을 수행하고 월급을 받아서 학급 쿠키 가게, 자리 경매 등에서 쿠키를 소비하거나, 학기말 학년말의 장터에서 쿠키를 소진하는 단순한 형태였다. 소비가 아닌 저축과 투자를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한 점이 늘 아쉬웠고, 1인 1역이 단순한 학급봉사를 넘어 경제, 사회, 환경, 진로 교육까지 겸할 수 있는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도 쿠키 월급을 시도했기에, 경제금융교육까지 관심을 닿을 수 있었고 학급 화폐 운영에 대한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었다. 1인 1역 월급을 도입하면서 부담이 되었던 1인 1역 점검 역할 또한 하나의 직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어린이들이 본인의 신용도를 기반으로 1인 1역을 선택하는 권한을 갖는 것, 진정한 경제교실 운영을 위해서는 재화를 단순 소비하기보다는 창업과 투자 활동까지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솔직히 창업-투자 활동까지는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긴 하지만, 1인 1역이 단순 학급 봉사의 개념을 넘어서 살아있는 경제 교육과도 연계될 수 있도록 좀 더 체계를 갖추어야겠다는 숙제가 생겼다.  

 학급운영에는 왕도가 없다. 다른 선생님이 해서 좋아 보였던 방식이 우리 학급에는 통하지 않을 때가 있고, 작년 아이들과는 잘 운영되어서 내게는 익숙했던 방법이 올해 아이들과는 맞지 않을 때도 있다. 에듀테크와 경제교육 등 시대의 변화, 세대의 변화를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학급을 '잘' 운영한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몸소 겪은 시행착오 끝에는 배움이 있고 내가 직접 헤맨 만큼 내 땅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내 시행착오의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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