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한 관찰과 통찰이 지닌 힘은 곧 사랑이었다.
너무 사랑하지만 너무 힘든 사람, 나를 너무 사랑해주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
아이러니 하게도 이 두 사람이 한 인물인 경우가 나말고 당신에게도 존재하지 않을까.
분명 따뜻한 시선과 다정한 마음인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괴롭고 외로운 이유는 단 하나였다.
상대방이 나한테 무엇이 필요한지 보다 본인이 주고 있는 노력이 문제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나 역시 미성숙한 태도로 그 사실 하나를 약점 삼아 뾰족하고 날선 말들을 내뱉고 그 초점 하나에 그 사람의 죽을만큼 쏟아불는 노력을 부정하곤 했다.
"지금 네가 하는 노력은 내가 바라는게 아니야.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좀 보면 안돼?"
"네가 주고 싶은 거, 네가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하는거잖아. 내가 받고싶은 거에 관심을 가져야 사랑인거잖아"
그럴 때 마다 내 말을 좀 더 쉽게 이해해 잘 받아 들이고 쉽게 개선되고 그렇게 미안하다며 손을 다시 마주잡고 화해하는 장면은 역시나 쉽게 일어나질 않았다.
그저 굳어가는 표정과 서운해하는 모습들과 싸늘해지는 공기와 쉽사리 어떤 말도 꺼내지않는
그렇게 시선을 서로 떨어트리고 몸을 멀리하며 각자의 시간에 잠기곤 하는 장면만이 일상적이었다.
늘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잘 줄 수 있을까.
언제 어디에서 본 건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과 뇌리에 깊게 박힌 문장이 바로 제목과 같은 문장이었다.
[사랑은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자 눈으로 살피고, 귀로 듣는 행위이다]
사실 알고있다.
해당 문장이 나의 마음과 뇌리에 깊게 박혔다고 해서 이것이 곧 나와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 올바른 사랑의 정의가 아니라는 것을.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를 뜯어보고, 열어보고, 나눠보며 서로 마음을 맞대어 그 정의를 함께 찾아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같은 소리를 반복해 하고 같은 상처를 반복해 주고 받겠지만 이제는 그걸 뜯어 고치고 바꾸려고 하는거 보다도 그러한 싸움과 갈등 그마저도 사랑으로 포용하고 또 사랑으로 안아주는 당신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가 뭐냐고 말이다.
그래서 너의 사랑은 뭐야?
나는 네 사랑이 나로 정의되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