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기들은 조울증이 아닐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울음을 터뜨리던 아기가,
장난 하나에 까르르 웃는다.
방금까지 세상이 끝난 줄 알았던 그 표정은
이제 천진난만한 낙원의 얼굴이다.
그 감정의 급격한 파동은 어딘가 조울증의 증상과 닮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병이 아니다.
그건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다.
아직 필터 없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전두엽이 다듬기 전의 ‘순수한 감정의 파동’이다.
감정이 고스란히 표출되는 그 모습은
어쩌면 인간의 원형,
우리가 가장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성인이 되면서 우리는 감정을 억제한다.
기쁘다고 모두 웃지 않고,
슬프다고 모두 울지 않는다.
상황을 고려하고, 눈치를 보고,
스스로를 검열하며 조율한다.
그것이 어른스러움이고 사회성이라 불리지만,
동시에 우리는 감정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그에 비해 아기들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다.
기쁨은 즉각적으로 피어나고,
슬픔은 그대로 터진다.
그들은 감정 그 자체로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조울증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병리인가, 혹은 우리가 잊어버린 감정의 힘인가?
아기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감정 변화는
결코 병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의 본래 모습이다.
우리가 조율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여기는 그 강도,
그 뜨거움 속에 바로 ‘살아 있음’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점점 ‘조절된 인간’이 되지만,
그 조절이 너무 지나치면
‘살아 있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 웃음과 울음,
그 순식간에 변하는 표정 속에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순도 높은 진실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