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이상하게도,
행복할 땐 잘 손이 가지 않는다.
햇살이 좋고, 웃음이 가볍게 떠오를 때
사람은 책보다 사람을 더 찾고,
현실 속 풍경에 더 몰입한다.
하지만 어느 날,
내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리고,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듯한 감정이 들면
나는 조용히 책을 집는다.
책 속 누군가의 고통과 사랑,
내가 해보지 못한 용기와 실패,
그 모든 것이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다가온다.
독서는 어느 정도 비극이다.
우리가 책을 가장 깊이 읽을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우리가 가장 깊이 무너졌을 때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우리는 책 속 현실로 피난을 간다.
책 속 이야기들이 진짜 세계보다 더 의미 있어 보이는 것,
그것은 독서가 주는 위안이자,
동시에 비극적인 역설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누군가—수십 년, 수백 년 전의 누군가—가
이미 그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슬플 때 책을 더 잘 읽는다.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기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책은 결국,
가장 아픈 순간에 가장 조용한 친구가 되어주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진짜 독서란 비극과 함께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