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티라노사우르스처럼 팔을 접고 걷는다. 누군가는 귀엽다 하고,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그저 익숙한 자세였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잘 때도 나는 팔을 꺾은 채 잠든다. 내 몸은 그렇게 긴장을 품고, 동시에 그 긴장을 다루는 법을 배워온 셈이다.
최근 나는 이 ‘티라노 팔’이 자폐 성향이나 ADHD가 있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행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어딘가 울렸다. “아, 그래서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그런 자세를 자주 취했구나.” 그들의 이름이 떠오르고, 그들의 몸짓이, 시선이, 말투가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존재 방식에 안도하며, 가까워졌던 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비슷한 사람들끼리 논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취향의 유사성 이상이었다. 그건 외부 세계에서 끊임없이 긴장하는 몸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드디어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을 감지했기 때문은 아닐까. 낯선 곳에서는 눈을 크게 뜨고 어깨를 웅크리며 방어하는 그 자세가, 나의 몸에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폐일까? 아니면 자폐 성향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익힌 예민한 사람일까?
이런 질문은 나를 끊임없이 갈라놓는다.
‘나는 보통인가, 아닌가?’
‘내가 만든 나인지, 나를 구성한 세계의 흔적들인지?’
자폐나 ADHD라는 진단명은 정체성을 규정짓는 어떤 낙인이기도 하지만, 때론 나를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만약 그것이 어떤 신경학적 차이라면, 나는 그저 세상을 다르게 처리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건 잘못된 게 아니라, 단지 다른 방식의 존재라는 것이다.
ADHD 약을 먹었을 때의 기억은 선명하다. 세상이 조용해졌다. 뇌 안의 소음이 꺼지고, 한 줄기 생각이 처음으로 장애물 없이 달리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나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나의 뇌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거야.”
나는 이제 의심이 아니라 이해로 나아가려 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받아들이는지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한다.
‘티라노 팔’은 나의 이상한 버릇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거칠 때 내가 선택한 생존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생존 방식은, 나와 같은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공명을 가능하게 했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이 특이한 동작, 몸짓, 사고의 리듬들은 우리들끼리 서로를 찾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완전히 정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나라는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시선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