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정신분석

by 신성규

헤르만 헤세는 단지 한 명의 소설가가 아니었다.

그는 의식의 리듬과 정신의 불협화를 문장으로 옮긴 작가였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독자는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의식의 흐름 속을 유영하게 된다.

그는 언제나 하나의 중심에 머무르지 않았고, 정신의 경계와 감각의 과잉을 끌어안으며 떠돌았다.


그의 서사는 줄거리보다 연상으로 움직인다.

의식이 확장될수록 문장은 점점 더 상징적으로 바뀌고,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회전하고 순환한다.

그는 자주 빛과 색과 같은 강렬한 감각 이미지를 사용했는데,

이는 그의 감각 체계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극을 과잉 흡수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그는 글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탐색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이러한 탐색은 종종 자기 자신을 해체하고 다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특징들은 과도한 자기성찰과 메타인지 경향, 그리고 자기감각의 불안정성을 암시한다.


오늘날의 정신의학적 틀로 바라볼 때,

헤세의 정신적 궤적은 단일한 진단 범주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서 나타나는 특성들은 세 가지 진단 범주와 명확하게 교차된다.


첫째, 그는 ADHD의 핵심 특징인 주의산만과 초집중의 혼재된 양상을 분명히 드러낸다.

산만하게 보이다가도, 관심 있는 주제에는 몇 날 며칠을 몰두하고,

정해진 틀을 따르지 않는 사고방식, 그리고 고도로 비약하는 사고 흐름을 가진 그는

전형적인 비선형적 정신의 소유자였다.


둘째, 그는 일부 자폐 스펙트럼의 특성과도 유사한 면모를 지닌다.

사회적 거리두기, 외부 세계보다 내부 세계에 대한 과몰입,

감각 자극에 대한 민감성 등은 자폐적 성향의 흔적을 보여준다.

다만 그는 관계를 완전히 차단하기보다는, 내면에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인간관계를 문학적으로 실험했다.


셋째, 그는 감정적 진폭이 큰 사람이다.

극심한 슬픔과 황홀한 창조적 열정을 오가는 그의 정신 구조는 양극성 장애와도 교차된다.

창작 시기의 고조, 반복되는 무기력, 자아에 대한 극단적인 감정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헤세는 ADHD적 뇌 구조를 중심에 두고,

때때로 자폐적 깊이와 양극성적 감정 기복을 교차하는,

복합적 고도의 정신성을 가진 예술가였다.


헤세는 극심한 감정 기복을 겪었고,

때로는 정신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그는 이 진폭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감정의 흐름을 글로 옮겼다.


그의 고통은 단지 정신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와의 단절된 애착,

결혼 생활의 파탄,

자신마저 무너져버린 정신의 붕괴.


그는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파열을 감정적 진동으로 받아들였고,

그 진동을 언어로 치환해

읽는 이에게는 한 편의 명상처럼,

자신에게는 고통을 통과한 증거로 남겼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광기와 이성 사이에서 진동하는 청춘의 혼이다.

그는 자신 안에 도사린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나’를 태어나게 한다.


싯다르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

말 없이 존재의 리듬에 귀 기울이는 자로 도달한다.

그 도달은 지혜의 도달이 아니라,

파괴와 상실, 욕망과 절망을 모두 통과한 자만이 닿을 수 있는 경지다.


이 모든 작품은, 정신의 복잡한 리듬을 고요한 문장으로 바꾸는 시도였다.

그 고요는 침묵이 아니었다.

그 고요는 끝까지 울고, 끝까지 흔들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내적 평온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ADHD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그 정신의 고통과 진폭을

가장 섬세한 문장으로 기록한 고독한 순례자였다.

그는 정상성이라는 좁은 통로를 걷지 않았고,

그 대신 정신의 언덕과 계곡을 직접 걸어 다녔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지금도 우리처럼 불안한 이들을 위한 문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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