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넘치는 시대의 역설

by 신성규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일생을 살았다.

그의 세계는 정해져 있었고, 그 공간 안에서 시간은 균등하게 흘렀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산책했고, 정해진 방식으로 독서하고 사유했다.


그런데 우리를 보자.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의 강의를 듣고,

어디서든 논문의 PDF 파일을 다운받아 참조하고,

세계의 사상을 실시간 번역해 읽는다.

공간은 무의미해졌고, 시간조차 압축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다.

그처럼 좁은 세계 안에서 칸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논했고,

도덕 법칙의 근원을 추론했다.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지만, 더 깊은 사유에 도달하지 못한다.


왜인가?

나는 여기에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싶다.



1. 정보는 늘었지만, 집중은 사라졌다.


칸트의 시대는 느렸다.

책 한 권을 구하는 데 몇 주가 걸렸고,

지식을 얻기 위해선 정적이고도 반복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반면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다.

검색 한 번이면 수천 개의 링크, 수백 개의 관점.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완전히 읽히지 않는다.

정보는 쌓이되, 의식에 스며들지 않는다.



2. 깊이의 사유보다, 넓이의 소비가 지배한다.


칸트는 단 하나의 문제를 수십 년 간 붙잡았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그 질문 하나로 세계를 구조화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매일 새롭고 자극적인 주제가 던져지고,

깊이 생각하기 전에 다음 콘텐츠가 다가온다.

우리는 끝까지 가보는 철학보다

빠르게 아는 인상에 익숙해져 있다.

지식은 흐름이 되었고, 사유는 뿌리내릴 기회를 잃었다.



3. ‘정신의 고요’가 없어진 사회


칸트는 산책했다.

그의 산책은 명상이고 구조화된 사고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잠들기 직전까지 알림을 받고,

깨어나자마자 피드에 접속한다.

자극은 끊이지 않고,

생각은 분산되며, 내면의 고요는 실종된다.

사유의 위대함은 ‘혼자 있는 시간의 질’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홀로 있는 법을 잃었다.



우리는 칸트보다 더 많이 ‘경험’하지만, 그보다 덜 ‘사유’한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책을 훑고도,

단 하나의 문장을 내면화하지 못한다.

수천 개의 강의를 듣고도,

‘나의 철학’을 말하지 못한다.


지식이 넘치는 시대의 역설은,

깊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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