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앉아도 문장이 흐르지 않고,
생각은 멍하니 허공을 부유하며
나를 피로만 더하게 만들던 오늘.
이상했다.
오늘 운동을 했을 뿐이었다.
조금 무리했을 뿐이었고,
근육은 짓눌려 있었고,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으며,
내 존재는 마치 누군가에게 착취당한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운동은 건강한 일 아닌가?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맑아진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내 안의 세계는 반대로 흘렀다.
나는 몸이 강해질수록, 사유가 약해졌다.
몸의 무게, 근육의 긴장,
심장의 고동이 나를 철학자로부터 짐승으로 되돌려놓았다.
어쩌면 사고는 너무나 섬세한 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뇌의 전력 소모를 허락받은 유예의 순간이며,
미세한 신경의 균형 위에서만 가능한 예민한 춤이다.
나는 그 춤을 잃어버렸다.
몸이 피로할수록,
나는 원초적 본능으로 되돌아갔고,
그곳엔 고차원적 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운동은 확실히 몸을 정제한다.
그러나 나는 깨달았다.
몸이 정제될수록,
내 감각은 사물의 본질을 들여다보던 그 시선을 상실해간다는 것을.
육체는 단단해졌지만,
나는 더 이상 문장의 떨림을 느끼지 못했다.
운동 후의 나는 느려진 존재였다.
멍하고, 납작하고,
마치 땅에 눌려 있는 존재.
그러나 이 고백은
운동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리듬과
운동하는 존재로서의 리듬이 다르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지성은 때로 몸의 이완 속에서,
혹은 아주 작은 움직임의 숨결 속에서 자라난다.
고통으로 조여진 근육 속에선
시가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조심스럽게 운동을 할 것이다.
사유의 공간이 상실되지 않기를 바라며.
몸을 가꾸되,
존재의 흐름을 망치지 않기를.
철학은 단순히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하는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 전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어쩌면 유산소적이고,
가볍고,
미세한 떨림을 담는 방식일지 모른다.
나는 그 떨림을 잃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