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네 살짜리 아이의 엉덩이를 베고 잠이 들어버들어버렸다. 맹세컨대 나는 그 아이의 엉덩이를 베고 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것일 뿐...
퇴근한 남편이 집에 와도 평소처럼 내가 뛰어가 소리 지르며 인사하지 않자, 나를 찾아 방에 들어갔는데 나를 보고는 기가 막혀서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른여섯 먹은 몸무게 육십에 육박하는 애 엄마라는 작자가 네 살짜리 조그만 아이의 엉덩이를 그것도 두쪽 골고루도 아니고 한쪽만 집중적으로 베고 침 흘리며 자고 있으니 누구라도 놀랐을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불편한 쪽잠 모습이 아닌 세상 편한 얼굴로 아이 엉덩이에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아주 푹 잠들어있었으니 그걸 본 남편의 모습이 어떨지 이제 생각하니 궁금하기까지 하다. 어떤 얼굴로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바라봤을까.
반대로 남편이 내 딸 엉덩이를 베고 자고 있으면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발로 남편이라는 인간을 있는 힘껏 걷어차지 않았을까. 곧 남편을 발로 찬 걸 후회하겠지만 순간 작은 아이에게 커다란 몸을 맡긴 어른을 보면 그게 누구든 발로 쳐서 아이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나의 네 살 밖에 안된 딸의 엉덩이에 침까지 흘려가면 잔 이야기를 풀자면 내 이야기를 더 상세히 해야만 한다. 그래야 나의 억울함과 오해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배게에 엄청 민감한 사람이다. 여행 다닐 때 옷은 두벌만 가지고 가도 입고 빨고 입고 빨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속옷도 한두 개만 가져가면 일주일도 넘게 지내 수 있다. 하하하 그렇게나 더럽고 무딘 사람인데 밤에 자꾸 깨는 아기를 키우면서 잠에 있어서 매우 예민해졌다. 잠을 잘 못 자는 아이를 바꿀 수도 없고, 시간을 컨트롤할 수도 없으니 내가 마음껏 화낼 수 있는 건 베개밖에 없다. 그놈의 베개는 높아도 불편하고 낮아도 불편하고 딱딱해도 불편하고 너무 따뜻하면 땀나서 짜증 나고, 시원한 소재면 포근하지 않아 잠이 안 들어 문제고, 이래저래 나의 내면 속 잠재되어 있던 모든 까칠함을 베개를 핑계 삼아 탈탈 꺼내놓은 듯 민감하게 굴었다. 그래서 고급 호텔을 가도 배게가 안 맞아서 밤에 여러 번 깨는 아주 까칠한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이제는 잠을 잘 자는 너희 덕분에 나도 덜 까칠해졌지만 아직 베개에 대한 까칠함이 남아있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 어제 네가 잠들었는데 네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요즘 준비하고 있는 사업 때문에 큰 결정을 몇 개 내려야 하는데 간이 떨려서 결정을 못하고 있어 너무 힘들었다. 결정을 내리면 큰돈이 나가니까 고민을 한다 시장조사를 더 해야 한다는 핑계로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나는 간이 콩알만 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요 며칠 머리가 너무지 끈 지 끈 해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전혀 나아짐이 없어서 나 죽을병 걸린 거 아닌가 생각하며 잠시 아이들에게 어떤 유언을 남길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니 머리가 나을 리가 있나 더 아플 수밖에. 그래서 모든 생각을 정지하고 딸의 냄새와 따뜻한 몸에 좀 취해야겠다 싶었다. 네 냄새를 오래도록 맡고 그 냄새에 취할 때까지 네 곁에 있으면 머리도 가라앉고 마음도 진정이 될 테니까. 이건 아이들 몰래 나랑 남편이 종종 써먹는 민간요법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만병통치약이랄까. 남들에게 팔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나에게 아이들의 존재는 일종의 안정제인 거지 하하하 그런데 네가 깨어있을 때에는 이렇게 오래 안지 못하게 하잖아. 발악을 하면서 내 품에서 도망가지. 오초만 안아준다면서 일이삼사오를 총알처럼 세어버리는 너를 무슨 수로 몇십 분이고 껴안을 수 있겠네. 그래서 잠든 때를 이용해서 니 곁에 다가가서 몸을 최대한 딱 붙였던 것이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머리가 아무래도 불편 불편해서 이래저래 자리를 잡아보는 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볼록한 딸의 엉덩이였다. 작다는 생각, 연약한 아이의 엉덩이란 생각은 한 개도 들지 않고 엉덩이가 토실토실 하토 실토 실하고 푹신하니 베어도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엉덩이에 얼굴을 맡겼는데, 이건 1492년 캘리포니아에서 땅을 파다가 금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야~~~~~~~~~~~~~~~~~~~"
이 극도의 편안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극도의 편안함? 만으로도 표현이 부족한데...
기분 좋고 편안하고 엄청 아늑한 그 기분. 그래서 아이의 엉덩이를 베고 누워서 아이 냄새를 맡고 아이 등을 만지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한참을 그렇게 아이 곁에 있었다. 소화제에 진통제에 침도 맞고 해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머리가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참 신기하지 엉덩이가 뭐라고. 베개는 커야 편하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이건 모 지상낙원이 따로 없구나.
나는 겨우 네 살인 너의 엉덩이 한쪽을 베었을 뿐이다 전체 몸무게가 16이 될까 말까 한 작은 너의 신체 일부의 반쪽인데 그게 왜 그리 편안한 것이냐. 작아도 포근하고 적당한 탄력이 있다. 그리고 깊이 얼굴을 파묻으면 약간 나는 구리구리 한 냄새마저도 너에게 미쳐버린 나는 너무 좋다고 쓰고 싶지만 그건 안 맡는 게 좋은 것 같다. 실수로 얼굴이 너의 그리로 향해 맡게 되었는데 그건 권할 것이 못된다. 아기 엉덩이에 기댈 때 얼굴을 똥구멍 반대편에 놓아야 하는 건그 누구도 잊어선 안된다.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한참을 뻥진 표정을 짓다가 설득이 되었는지 자기도 한 번 베어보겠단다. 하하하 그래서 작은 딸 엉덩이에 머리를 갖다 대는데 딸이 움찔움찔 자면서도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결국 딸 엉덩이를 베어 보지 못한 불쌍한 남편 다음 기회를 기다리시게나.
그런데 딸내미가 내가 자기 엉덩이 베고 잔 거 알면 엄청 싫어하겠지? 손잡고 자는 것도 싫어하는 딸이니까. 니 엉덩이를 베고 잔 걸 알면 노발대발할 거야. 하하하. 그 모습도 조금 궁금한데 입을 한 번 열어볼까나? 니들이 있어 머리가 다시 맑아진 나는 다시 행복한 까불이 어른이 된 것 같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