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중요한가? 오늘 트럼프와 해리스의 토론에서 보면 무척 중요한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껏 살면서 토론을 통해서 결정된 일이 무엇이 있었던가? 그보다는 '의사결정자'에 의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며 토론의 논리보다는 의사결정자의 '기분'에 따른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가 더 중요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토론의 논리는 자칫 의사결정자의 기분과 배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한 무기이다. 의사결정자는 단순히 기분 나쁘다는 이유 말고도 토론에 쓰인 논리와 근거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토론뿐만 아니라 토론의 능력을 보유한 지적 논리자를 제거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토론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며 보인 경계선이라 할 수 있다. 토론 같은 것을 하는 동물이 있던가? 짐승은 오직 힘에 의해서 물어뜯고 굴복시킬 뿐이다. 논리나 근거는 필요치 않다. 인간도 직급, 나이, 권력에 의해서 토론은 생략한 체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까라면 까"라는 말로 함축되는 이 의사결정 과정은 동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의미한다.
토론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논리적 근거를 통해 설득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진화된 인간들에게 매우 중요한 과정이며 그 사회의 문명화된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대선이나 국회에서의 토론은 형편없는 논리와 근거 없는 막말의 모순이라는 점에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논리와 근거에 의한 토론과 설득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기분을 맞추는 능력을 바탕으로 동물적 습성에 의해 주어졌음을 추측케 한다.
그러므로 트럼프와 해리슨의 토론은 누가 이겼느냐 졌느냐를 떠나 가장 진화된 인류 중 최선진국의 의사 결정자의 합리적 설득 능력과 함께 그 사회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인간 최고의 향연이라는 점에 있어서 중요하다.
우리에게 토론은 지금껏 중요하지 않았지만 제발 중요해져야 한다. 계속 문명화를 거부하는 동물로 살아가고 동물의 삶을 물려주길 원하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