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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디의 제작노트 Oct 24. 2021

원점으로 돌아 간 가족

고등학교도 떨어졌는데

# 물어봐 주세요

김피디는 부부가 주고 받는 대화를 보고 하나도 달라 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지, 부부 싸움 할 때는 누가 상처를 많이 주나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자기 말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앞뒤 상황 설명 없이 원하는 것만 말하고, 상대방이 자기를 따라 올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편한 방식대로 요구하고 원하는 대답을 들으면 된다는 식이다.

마치 ‘서로가 상처주기 위해서 만난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럴 때 해결책이 있다. 둘 사이를 아프지 않게 하는 말이 필요한 것이다

 “물어봐 주기”이다,


김피디가 작년에 인천에서 프로그램을 진행 때 일이 생각난다.

성질 급한 아버지 때문에 괴로워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성질 급하다’것 보다는 

차라리 독재가장 이야기다. 가족 어느 누구하고도 집안일을 의논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아버지가 결정한 말은 곧 따라야 한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들어와 이렇게 얘기를 한다 “내일 이사 갈 테니 준비해“  

갑자기 왠 날벼락! 하지만 가족들은 따라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뒤집어 진다. 

요즘말로 “답정너‘이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 만 하라’는 식이다.

평생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에 불안증까지 생겼다는 아내의 하소연.

그 때 상담하던 교수님이 남편에게 한가지 만 부탁을 했고, 아버지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은 말끝에 “당신 생각은 어때?”라는 말을 무조건 붙여 달라는 것이었다.


“밥 먹으러 가자, 당신 생각은 어때?” “내일 아버님 댁에 갈 거야, 당신 생각은 어때” 

“지금 고기 먹으러 갈 거야, 당신 생각은 어때?”

항상 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생각을 물어보는 말 ! 이말 하나로 가장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고 가족들의 마음도 편해졌다. 결국에는 아버지의 생각도 바뀌었다. 

이것이 ‘물어봐 주기’이다. 이 말에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물어봐 주지 않고, 자기 말만 하던 화성 가족은 어떻까?

가족상담을 마치고 좀 달라졌을까? 김피디도 궁금해 하면서 화성으로 가고 있다.


아파트 거실.

남편은 식탁에 앉아 소주를 먹고 있다. 김피디가 다가가서 앉는다.

시계는 밤 9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김피      병구는 어디 갔어요?

       남편      요즘에는 10시 까지는 들어오더라고요. 근데 동네 애들한테 듣기로, 

                   오토바이 타고 다닌다고 그러더라고요

       김피      걱정 되세요?

       남편     걱정되죠. 이번에 걸리면 구속이잖아요. 10번이 넘었는데.. 

       김피     진짜 걱정되세요? 

       남편     걱정되죠 동네에서 다 알고 있는데.. 

       김피     그러면 부끄러운 게 걱정이 되세요? 아들이 구속되는 게 걱정이 되세요?

                   남편 둘 다죠. 이 번에 걸려서 학교 잘리면 안 봐요 이거 방송하고 있지만

                   학교 잘리면 안 봐요, 전 진짜 그래요!


그렇게 되면 프로그램 중단! 병구가 내 운명을 쥐고 있구나! 

김피디도 마음이 불편해 진다.


식탁에 소주 먹는 남편, 그리고 소파에서 전화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30분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병구가 보인다. 

“다녀 왔습니다” 

들어오는 병구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남편, 

‘왠 일 이냐?‘는 표정이다. 아빠가 병구에게 말을 건넨다


     남편    엄마 전화 받았냐?

     병구    네


그리고 병구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아빠도 두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안방으로 사라지고

불 꺼진 거실에 엄마가 이불을 펴며 잘 준비를 한다.

빼곡하게 열린 방에 휴대폰 하는 병구의 모습이 보인다. 병구의 방을 바라보던 

김피디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병구는 문을 닫아 놓지 않는다? 병구의 방은 닫혀 있지 않았다. 늘 방문을 조금은 열고 놓고

있었다. 보통 가족들 간에 사이가 안 좋으면, 문을 닫고 방문을 잠궈 버린다. 

‘이 방에는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무언의 표현이다. 담배 때문에 아빠와 싸운 그 날에도

병구방의 방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가족과 소통하려는 병구의 속마음이 아닐까? 


김피디는 병구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노력을 처음 시작한 건 병구 네!


#병구의 졸업여행


다음날 아침/ 아파트 거실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다, 

‘병구가 오늘 2번 만에 일어났어요’ 들어오는 김피디에게 엄마가 대견 한 듯 말을 건넨다.


병구가 8시에 일어 난 것은 엄마로서는 대단한 일이다. 

변화의 조짐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니 엄마의 마음이 설레 인다.

교복을 입고 넥타이를 찾는 병구가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     넥타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남편     넥타이 안방 화장실에서 본 것 같은데.. 

          병구     예전에 안방 화장실에 벗어 놓은 것 같아요

          남편     그건 니가 관리해야지,, 다음부터는 니 방에 갖다 놓도록 해~

          병구     네~


아빠와 병구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조금은 부드러워 졌다. 예전 같으면 짜증부터 냈다.

‘아들에게 부드럽게 말하기’라는 교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는 걸까?


어쨌든 엄마가 보기에 병구는 노력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맨 먼저 집을 

나서지 않는가? 가방도 손에 들고, 운동화도 신은 병구의 모습을 엄마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곧 이어 식사를 마친 아빠와 두 아이가 집을 나선다, 엄마도 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엄마는 저녁6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낮에 일이 생각나 병구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 만 갈뿐..


집에서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병구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오늘 전화는 언제 들어올지 궁금해서 전화를 거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다시 병구 여자 친구 혜지에게 전화를 건다.


“병구하고 같이 있어? 연락이 안 되네, 병구한테 연락 좀 달라고 해~”


엄마는 낮에 병구와 통화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병구가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 졸업여행 인데 비용을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졸업 여행비를 오늘 까지 

내야 한다는 병구의 말에 엄마는 짜증이 났다. 

‘그런 건 미리 얘기를 해야지, 이제 와서,,“ 갑자기 쏘아 붙이는 엄마의 말에 병구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선생님과 통화해서 졸업여행비를 입금하고 병구에게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럼 여행 안가면 되잖아!” 전화를 끊으며 한 병구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시계를 보니 저녁 8시다. 

내일이 졸업여행인데 또 새벽에 들어 올까봐 엄마는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병구는 8시가 조금 넘어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병구의 방에서 기분 나쁘지 않은 대화가 오간다.

           병구    내일 졸업여행 가는데,, 돈 줘요

           엄마    얼마? 아빠한테 달라고 해

           병구    아빠한테...


병구는 방에서 나와 엉거주춤 아빠한테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방에서는 엄마가 귀를 기울이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병구    내일 학교에서 여행 가야 되요.

           아빠    돈이 필요해?

           병구    네 

아빠가 뒷주머니에서 준비했다는 듯 돈을 꺼내 병구에게 건넨다.

           아빠    여기~ 10만원

           병구    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병구를 보며 아빠. 얼굴에 화색이 돈다.

진짜 병구가 달라지고 있나? 

   “오늘 같이 빨리 들어 오늘날도 없었는데...

    일찍 들어 왔고, 저렇게 인사도 하잖아요. 

    졸업여행도 신경이 많이 쓰이네요, 아무 일 없이 갔다 와야 되는데.. 

    에이, 지가 필요하니까 온 거지 뭐! “


애써 부정하지만, 아빠의 말에 온기가 느껴진다. 내일부터 2박3일 동안 병구는 졸업여행을 

간다. 병구가 없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


# 큰 아들이 없는 집안 풍경


다음날, 병구가 없는 집안은 어떤 모습일까?

병구가 졸업여행을 가서 그런지 엄마는 느긋하다, 아침부터 벌이던 아들과의 전쟁도

이틀 간 휴전이다, 매일 30분 이상을 깨우던 일도 이젠 없다.

소파에 앉아서 하품하는 아내와 식탁에서 밥 먹는 우람이와 해미 그리고 설거지 하는

아빠가 보인다.


아빠의 얼굴도 편안해 보인다, 늘 이 집을 감싸고 돌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공기가 따뜻해 졌네” 김피디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선글라스 끼고 장난치는 해미의 재롱을 즐기고 있는 아빠. TV를 보다가 아빠가 

해미에게 말을 건다

       아빠    아빠한테 강남스타일 춤춰 줄 거야?

       해미    보기만 할 거야

       아빠    아빠에게 보여줘

                 슬기가 추는 거 보고 싶으니까. 아빠만 보여줘 봐

TV를 따라 춤을 추는 막내 딸 해미에게 박수치며 즐거워하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평온한 집을 얼마 만에 느껴 보는지 알 수 없다. 엄마는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낀다.

정말 병구만 이 집에서 없다면 행복해 질까?


여의도 사무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김피디는 사무실로 출근하며 지난 가족상담 내용을 다시 보고 있다.

제작진과 회의를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쯤 병구가 졸업여행에서 돌아 왔겠지. 안부전화 겸 상황을 체크한다.


 “별일 없었죠?”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네‘  엄마의 짧은 대답이다

 “병구는 잘 갔다 왔어요? 

 ”그게 뭐~ 괜찮아요“ 

 자신 없는 엄마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김피디는 차를 몰고 화성으로 향했다.


#원점으로 돌아 간 가족


화성 아파드 거실.

거실로 들어서는 김피디는 다시 공기가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과 식탁에 앉아 있는 아내가 보인다. 엄마가 한숨을 길게 내쉰다. 


      아내     안 보내려고 했지. 근데 지네들끼리 다 약속 잡아놓고 했더라고, 

                 안된다고 했지, 그랬더니 회사 와갖고.. 소리치니까?

                 옆에 있는 언니가 돈을 주더라고..

      남편     학교도 떨어지고, 극장을 가고 싶나?..


병구가 고등학교 지원에서 떨어졌구나.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설마 했는데,,, 엄마의 근심이 깊어간다.

기술고등학교 지원했던 병구는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오전에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서야 

알게 된 엄마.

‘이런 건 직접 전화해서 알려줘야지‘ 엄마는 아들이 야속했다.


오후에 병구는 엄마의 영업소로 찾아 왔었다. 그 때도 아무 말이 없었다. 친구들과

극장가기로 약속 했다는 것이다,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아들 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는 엄마가 반길 리 없다. 

‘정신 차리라’고 언성을 높이는 엄마와 ‘극장가야 한다’는 아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영업소 사람들, 이게 엄마 직장의 오후풍경이었다. 

보다 못한 동료가 용돈을 건네주었다. 돈을 받아 들고 병구는 극장으로 가버렸다.

퇴근 후 

이 일을 상의 하려고 남편에게 말을 건넸지만 남편의 반응은 냉랭했다.


         남편    근데 둘이서 데이트한다고 지금 상황도 좋지 않은데.. 

                   그 전에 학교 떨어졌단 소리도 들었는데..

         아내     아니, 나는 자기한테 시시콜콜히 얘기 하고 싶지가 않아. 


아내의 소리에 화가 난 남편.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소주병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아내는 이래저래 마음이 무거워 진다. 

떨어진 아들보다,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는 남편이 더 밉다. 


         아내     떨어졌대, 그렇게 얘기했으면, 아 그래도 잘 될 거야, 그런 말이 아니라..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지, 그건 자기 생각인거고..

         남편     너! 아까 뭐라 그랬어. 결과가 5시쯤에 나오니까, 결과 보고 보내라 그랬지!

                    학교를 못 갈지도 모르는 판에 그렇게 히히덕 거리고 싶니?

         아내     아니 그러면, 히히덕 거리면 안 돼?


비난하는 남편과 아들을 감싸는 아내, 이 둘의 싸움은 다시 시작 되나?

엄마는 상담하면서 김교수에게 약속한 말이 생각났다. 병구에 대한 일은 부부가 

같이 의논하고 공동대응 하라는 것이었다. 


        아내    결과는 나온 거고, 나는 자기와 상의하려고 말한 건데 이런 식으로 말하잖아!

                  그러니까 나는 자기하고 얘기하고 싶지가 않다니까.

        남편    이건 상의 하는 게 아니라 통보잖아, 지금 할 거 다하면서 통보해주는 거아냐?

        아내     내가 하기 전에 자기가 좀 해주면 안 돼? 병구가 무슨 과를 지원했는지,

                   관심이나 가져봤어?

남편은 일어나 담배를 갖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담배를 물어 든 남편. 줄담배를 피우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김피디가 다가간다.  “속상하세요 ” 

남편이 하소연 한다. “이건 원점이잖아요 원점!”


그나마 조금씩 약속을 지키려 했던 가족들의 마음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가면 안 되는데, 내일 가족회의 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하지 ,,,

김피디의 머리가 다시 복잡해진다.


# 가족회의에서 알게 된 사실


다음 날 저녁 / 거실

김피디와 가족들이 둘러 앉아 있다

‘오늘은 교수님의 미션 중에 하나인 가족회의를 하는 날이 예요‘

김피디의 말에 모두 고개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제 밤 병구가 집에 

들어오고, 아빠와 한바탕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제 ‘병구의 극장사건‘으로 분위기가 냉랭한 것을 느꼈다. 김피디는 가족회의를 빌미로 

분위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김피디는 처음 하는 가족회의를 어떻게 할까 고민 했다. 가족들이 자체적으로 해야 하지만 

그럴 분위기도 아니였다. 

김피디는 주제를 ‘서로의 마음 알아주기’로 잡고 서로 솔직한 감정을 들어 보기로 했다. 

김피디가 거실에 둘러앉은 가족 앞으로 의자 하나를 가져온다. 

그리고 얘기를 하는 사람은 의자 앉아서, 나머지 사람들은 바닥에서 듣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가족에게 바라는 게 뭔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이른바 ‘가족 간의 진실게임’인 것이다.

단, 말이 끝나기 전까지는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규칙도 덧 붙였다.


처음으로 아빠가 의자에 앉기로 했다. 김피디가 먼저 질문을 한다.

“가족들이 같이 산지가 5년이 넘었잖아요? 그 동안 가장 섭섭했던 게 뭐예요?”


잠깐 망설이던 남편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도, 다른 집 같이 아침 좀 얻어먹고 다니고 싶다고, 밤에 뭐하는지 당신은 

      아침마다 내가 깨워 줘야지 일어나고. 그리고 병구도 그렇지, 

      뱀도 아니고 옷을 화장실 앞에다 그렇게 벗어놓지 말라고 해도 계속 하잖아!“


남편은 먼저 병구가 하는 행동에 대한 얘기를 했다. 병구의 생활습관 부터 오토바이 훔친 

이야기, 할아버의 돈을 훔쳐간 이야기, 그리고 어제 고등학교 떨어졌는데도 극장 간 

이야기 까지 이어진다. 병구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었다.

그럴 때면 ‘잘해주고 싶다가도 마음이 돌아선다’고 했다. 또 그렇게 병구에게 화를 내고 나면 

돌아서서 후회 한다고 했다.

병구는 ‘아빠가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다음으로 병구가 의자에 앉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는 병구를 위해서 김피디가 질문을 했다.

구체적으로 아빠와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본다.

“아빠의 어떤 표정이 가장 싫어요?”

김피디의 질문에 잠깐 머뭇거리다 병구가 말을 한다.


     병구    잘 모르겠어요, 그냥, 화났을 때 ‘재수 없다는 얼굴, 짜증난다는 눈빛하고 

              그냥 보기 싫다‘는 표정이 싫어요. 잘해 주다가도 갑자기 화를 내요.

              다른 아빠 같이 행동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 자기 화난다고 때린 것. 이런 것...

     김피    그러면, 아빠한테 맞은 적이 있네?

     병구    네

     김피    그 땐 어떤 생각이 들었어?

     병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빠는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말을 하려는 아빠에게 김피디가 손사래를 친다.

게임의 규칙은 상대편 말이 끝나야 질문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구는 머리끝을 손으로 꼬는 버릇이 있다. 밖에서 친구를 만날 때는 

그런 버릇이 없는데 유독 집에만 오면 그런 버릇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피디는 그것이 사람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이란 것을 알고 있다. 

아빠의 표정에서 생기는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무의식 적인 행동인 것이다.

지금도 병구는 머리를 꼬고 있다.


       김피     그럴 때 그냥 맞고만 있었어요?

       병구     네. 처음에 맞고만 있다가 크면서 안 맞으려고..


엄마의 표정이 불안해 보인다, 다음 말이 이어지면 안 된다는 표정이다, 꺼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김피디는 잘 알고 있다. ‘병구는 칼 들고 아빠는 야구방망이를 들었던 사건’

김피디는 거기까지 나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주제를 살짝 바꾼다.


김피  짜증나고 속상하면 어떻게 풀지?

병구 친구들이랑 놀아요. 친구들 하고 놀면서 잊어버려요.



아빠의 ‘짜증나고 재수 없다’는 표정, 병구는 그것이 자신에 대한 아빠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이집에 들어와 살면서 그 표정은 늘 병구를 불안하게 했다. 그런 탈출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밤늦게 노는 것이었다. 

아빠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집에 오고 싶지 않았구나’


다음으로 엄마가 의자에 앉았다.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 먼저 나온다.

       “모든 일에서 왜 나를 등 떠미는지 모르겠어. 나쁜 일 있으면 나에게 항상

        ‘니가 먼저 해라’ 하고, 잘못됐을 때는 ‘것 봐, 넌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얘기하고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내편에 서서 얘기를 해 준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본인은 얼마나 잘나서 사람을 그렇게 무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 애를 낳고 그랬지만,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듣고 있던 남편이 아내를 쳐다 본다, 고개 숙이고 있던 병구도 고개를 든다.

         “거기에 대해서 자꾸 비판을 하고, 나의 약점을 자꾸 후벼 팔 때 마다 나는 상처를

          받아. 내가 믿고 가야하는 가장인가? 싶기도 하고,.“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조금 씩 맺히기 시작한다.

        “내가 어렸을 때 병구를 낳았어, 그래, 내가 부모를 잘 못 만나서 내가 그렇게 

         살았지만, 그렇다고 나는 내 애를 버리진 않았어. 버린 게 더 나쁘지. 

         내가 책임지고 그래도 여기까지 열심히 살았잖아? 

         내 약점을 자꾸 얘기를 하는데, 그럴 때는 정말 속이 많이 상해. 

         그런 얘기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엄마는 아빠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부부싸움! 싸움은 내가 이기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부부싸움은 이겨서 남는 것이 무엇일까?

상대방과 또 살아야 하는데, 남은 것은 상처뿐이다. 그 것은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어 

엄마같이 이런 자리에 다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엄마가 감정을 억누르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내가 약점이 있어서 이렇게 산다고 생각을

         안 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병구를 포기하지 못해서, 병구를 데리고 이집을 나갈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해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내가 없는 자리에 또 새엄마가 들어오면 내가 받았던 그런 상처를 우람이와 해미도

         똑같이 받을까봐, 그게 무서워서 내가 참고, 그냥 참고, 지금까지 살았던 거야., 

         ...여기 까지 할래요.“


엄마는 흐르는 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여기 까지 말을 하고 내려와 앉았다.

병구는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언제나 강한 엄마라고 생각해 왔는데,

귀찮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사람이지만, 병구는 이 집에서 자신을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집안 제사에 참석하지 않아서 엄마와 싸웠던 날. 병구는 엄마에게 한말을 기억했다.

“어릴 때부터 잘하지 왜 이제 와서 지랄이야?” 화가 나서 내 뱉은 말에 엄마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그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기 까지 생각이 들자 병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적어도 엄마는 나를 버리지 않겠구나” 

아빠가 옆에 앉은 엄마의 등을 가만히 두드려 주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김피디가 엄마의 눈물이 생각난다.

엄마의 상처는 언제쯤 아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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