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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디의 제작노트 Oct 24. 2021

그래도 시작하길 잘했네 !

작은 변화의 시작

# 병구와 집안 대청소


며칠 후 김피디는 화성을 다시 찾았다. 

거실에 들어 온 김피디는 시계부터 확인하고 화면에 담아둔다.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다. 피디들은 습관적으로 시계를 자주 보고 

화면에 담아 둔다. 편집 할 때 시간은 확실한 나침판이 되어 준다. 

그날을 기억 할 때도 그 장면을 나타낼 때도 시계는 확실한 지표가 된다.


현관으로 들어오는 김피디에게  대뜸 웃으며 남편이 말을 건다.

        남편     오늘은 방 좀 치우라니깐.. 아침에 치우더라고요.

        김피     아~병구가요? 근데, 방 구조가 확 바뀌었어요, 

                   지금 보니까 침대도 들어와 있고.

        남편     네, 아침에 말 잘 듣고 그러기에, 안 방 침대 갖다 쓰라고 했어요.

                   아내도 같은 방 쓰기로 했고요..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묻지도 않은 말을 시시콜콜하게 김피디에게 말을 해준다.

기분 좋을 때는 말을 많이 하는 것도 건강에 좋다고 한다. 좋은 에너지가 되니까.


지금까지 아내는 주로 거실을 써 왔다. 안방은 아빠가 두 아이와 같이 잤다. 

아내는 늘 밤에 병구가 들어오는 것을 체크하다 거실에서 잠이 들곤 했다.

병구가 일찍 들어와도 안방에 들어가지 않고 TV를 보다 잠이 들었다. 

TV를 보다 편안하게 잠자는 게 소원’이라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는 김피디.

그런데 무슨 마음으로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게 된 걸까?


변화는 작은데서 시작되었다. 아침에 아빠가 던져본 말이 시작이었다.

 “방 좀 청소해” 기대하지 않고 병구에게 던졌던 말인데, 세수를 하고 다시 거실로 나온 

아빠는 청소하는 병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답만 하는 병구 인데...

오늘은 왠 일로 청소를 다 할까? 그것도 열심히..

병구의 방은 매트리스에서 침대로 바뀌어 있었다, 침대를 연신 쳐다보며 구석구석 

청소하고 있는 병구에게 김피디가 말을 건넨다.

          김피     야, 방 완전 좋아졌네, 진짜! 병구는 어때?

          병구     좋죠.

          김피     뭐가 좋아요?

          병구     바뀌고 있는 게~

부부공동대응? 김피디는 이 말이 떠올랐다.

지난 상담에서 부부공동대응을 과제로 내 주었다. 병구가 사고를 치면 아내가 남편에게 

알리고 부부 공동으로 상의해서 같이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고가 아니다. 변화다!

남편은 아내에게 병구가 청소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아내는 내친김에

모두 집안 청소를 하자고 제안 했다. 어린 두 아이까지 모두 나서 청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거실에서 자던 아내도 안방으로 들어와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자기로 했다, 

이른바 ‘합방’이 성사된 것이다. 

그런데 안방에 있던 침대는 4명이 자기에는 부족했다. 이참에 병구에게 침대를 

주기로 하고, 병구 방에 있던 매트리스를 안방으로 옮긴 것이다.

한 달 만에 보는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에 김피디도 덩달아 신이 난다.

그래도 시작하길 잘했네, 섣부르게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진짜 가족회의


식탁에 앉은 가족들. 무언가를 열심히 얘기하고 있다. 

가족회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저번 상담에서 김교수는 ‘가족회의를 다시 하라’는 미션을 주었다. ‘달라져야 할 것’을 

가족 스스로 얘기하고, 회의 시간이 얼마나 가는지도 기록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서로 다툼이 일어나면 즉시 중단’하라는 당부도 있었다.

지금까지 단 10분도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던 가족들이, 벌써 30분 째 앉아서 얘기를 

이어가고 있다. 엄마는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오간다. 

이제 병구가 자기표현을 시작한 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엄마     약속했어? 27일부터, 10시까지 들어오는 거지? 그럼 내일부터네?

    병구     네~ 해볼게요, 그리고 원래 오늘부터 아빠하고 10분, 애들하고 10분 

                    대화를 해야 하는데..

     아빠    내일은 집에 있잖아, 내일 하면 되지 뭐.

     병구     네

김교수가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 모인 거구나. 이제야 분위기 파악이 된 김피디가 

가족이 지켜야 할 미션을 생각한다.


     첫째  병구문제에 대한 부부 공동대응. 

     둘째  병구는 아빠와 하루 10분 대화, 동생에게는 하루10분 놀아주기.

     셋째  각자 노력할 것을 제시하고, 가족회의 내용 적어 가져오기.

아빠가 합의한 사항을 다시 정리한다. 

      아빠    그니까 너는 이제 앞으로 귀가시간 10시로 딱 해 놓은 거야?

      병구    네. 아 근데 ~잘 할 수 있을까?

      아빠    일단은 우리가 서로 합의 했잖아, 일주일 동안 밤 10시까지 들어오기로..

                근데 좀 걱정돼지? 그러면 통금시간을 조금 연장해주고 니가 밥을 먹고 

                다시 나가는 거야. 그건 어떠냐?

       병구    네 좋아요!


 병구는 가족회의를 하면서 스스로 밤10시 까지 들어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엄마 아빠는 일주일 동안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빠와 동생들과 매일 하루에 10분 대화하고 

 놀아주는 게 문제였다. 밤에 그럴 수는 없으니까..


        아빠     병구야~ 니가 그럼 딱 6시까지 들어와. 그럼 아빠도 6시 전에 올께. 

                  그럼 밥 차리는 동안 너는 애들하고 놀아주고, 밥 먹으면서 아빠랑 얘기하면 되잖아. 

                  그리고 다시 나가서 놀면 되지, 그러면 아빠도 숙제 했으니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지?

         엄마   좋네! 그럼 나도 되도록 6시 까지 들어올게 ! 저녁 영업은 안하고..

                   그럼 귀가 시간은 11시로 하자. 딱 된 거야 이걸로..

병구가 6시에 들어와 미션을 수행하고 다시 나가 노는 걸로, 가족들은 그렇게 합의를 했다.

가장 신이 난 것은 병구보다 엄마다. 

이렇게 약속만 지켜준다면 매일 밤 병구의 귀가 시간 때문에 불안 해 하지 않아도 된다. 

더불어 아이들과 남편 옆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엄마가 냉장고에 큼지막하게 써진 ‘가족 실천사항’을 붙여 놓는다

1. 저녁6시 가족모두 1차 귀가.

2. 병구. 식사 전 동생들과 10분 놀아주기.

3. 병구. 식사하면서 아빠랑 10분 대화하기.

4. 병구. 7시에 나가서 11시까지 2차 귀가.

냉장고에 써 붙인 가족미션을 바라보는 가족들. 이제 자연스럽게 병구도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네,  이제 아침 풍경이 바뀔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던 말이 이제는 들려 올 것이다. “병구야 밥먹어” 


김피디는 얼굴한번 붉히지 않고, 결과를 만든 가족들이 대견할 뿐이다.

이 대로 미션이 수행 된다면 한 층 더 가까워진 가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 단 모두가 ‘지키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인 것이다.

병구는 상담을 마치면서 김교수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병구가 두 동생과 적극적으로 놀아주는 10분이 가족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어,

 같이 TV를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 TV를 멍하게 보는 게 아니라 무슨 프로야? 

 뭐가 재밌어? 이렇게 물어봐 주는 거지. 이렇게 놀다보면 동생들과 할 얘기가 생길 거야, 

 그러면 아빠도 병구에 대한 마음을 바꿀 거야, 아빠가 해야 할 일을 병구가 대신하고 

 있잖아, 아마 대견해 할 걸, 그리고 10분씩 매일 아빠랑 얘기하면 너의 상황을 알기 

 때문에 갑자기 화내는 일은 없어질 거야“

이 말을 병구는 이해하고 있었다. 김피디가 생각해도 명쾌한 해법 이었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아내, 식탁에서 핸드폰 보는 남편, 소파에서 동생들과 

TV보는 병구의 모습이 보인다. 김피디는 아빠한테 다가가서 식탁에 앉는다.


         남편    그나마 지금 사고 안치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죠, 마음이 조금 편하네요

         김피    예전에 비해서 조용한 게 오래 간 건가요, 지금?

                  남편 네~한 달 정도 됐죠

벌써 한 달이 또 지났네, 한 달 동안 사고 없이 지내온 것을 아빠는 감사하고 있었다. 

솔루션 프로그램을 시작한지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매일 매일 싸우던 가족들은 본격적인 상담과 미션을 조금씩 수행하면서 작지만 서로간의 

믿음도 생겨나고 있었다. 이렇게 하다보면 신뢰라는 것도 생겨나겠지..


#듣기만 해도 좋아져요.


김피디는 프로그램을 할 때 마다 참 신기한 경험을 한다.

불편한 부부가 대화를 하면,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말싸움으로 번진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서로의 입장만 내 세우다가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태도는 달라진다. 


중재 역할을 하는 제3자가 있다면 상대방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알게 된다. 중재자가 객관적인 신뢰와 믿음이 있다면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게 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많은 것을 알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생각을 바꾸게 된다. 


김피디는 일산에서 진행한 가족들이 생각났다. 

결혼 하자마자 시어머니의 도박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것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부부싸움을 하면 현실적인 불만에서 항상 신혼 때 겪었던 이야기로 끝이 났다. 

그때의 절망감, 남편의 무능, 시어머의 무책임 등이 줄줄이 튀어 나온다. 

평생 반복되는 부부싸움 테마가 된 것이다.

지금은 남편이 돈도 잘 벌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아내는 여전히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상담이 시작되면서 남편은 당시 아내의 마음과 상처를 알게 되었다. 늘 싸우면서 했던 

이야기를 상담에서 듣게 되었다. 남편은 아내의 비난과 원망이 섞인 얘기를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내를 이해하고 나니 남편의 태도가 바뀌었다. 

단지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은 것 밖에 없었다. 듣는 것만으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바뀔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김피디는 수월하게 프로그램을 끝낼 수 있었다.

항상 변화의 시작은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가족솔루션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동의하면, 실천해야할 일을 정리한다. 그럼 ‘각자 해야 할 일‘ 숙제가 생긴다. 

제작진은 이것을 흔히 미션이라고 부른다.

미션은 추상적인 것을 배제하고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행동부터 실천한다.

예를 들어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하루 한 번씩 안아주기’ ‘다정하게 말하기’보다는

‘감사 합니다’자주하기,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미션으로 주어진다.


행동이 조금씩 바뀌면 상대방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상대방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여기 화성 가족도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가족회의를 통해 한 발짝 

다가서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긍정은 또 다른 긍정을 불러 온다

남편의 말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병구가 많이 따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다 같이 뭐를 한다 그러면 

아빠는 해줄 거라고 말을 해요, 엄마가 ‘아니다’라고 얘기해도 아빠는 해줄 거야‘

라고 말해요 그러면 저도 해주고 싶죠“

병구에 대한 아빠의 시각이 조금씩 변화고 있다. 

    김피      요즘 마음은 좀 편하세요?

    아빠      전에 보다 많이 좋아졌죠. 편해졌어요. 병구한테는 전 보다 편해졌는데,

                아내가 지금도 혼자 결정하고,..듣고 있으면 조금 불편해요


‘엄마는 아직 좀 더 변화가 필요하구나’ 

김피디는 아빠의 뉘앙스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가족은 어디쯤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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