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우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중이다. 선로 위를 달리는 전철의 진동이 신발 바닥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양다리로 흔들리는 몸의 균형을 잡으며 랜덤 플레이로 음악을 듣는다. 무선 이어폰에서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온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노래 제목과 가수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갑자기 목덜미가 따끔하다. 조금 지나니 따끔한 부위가 가렵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모기에 물린 것 같다고 기우는 생각했다. 봄에 모기라니.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팔을 올리기조차 버겁다. 목덜미를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고개를 좌우로, 앞뒤로 움직여 본다. 그다지 가려움이 누그러지는 데 도움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금세 가려운 증상이 사라졌다. 사람들끼리 밀착된 이 좁은 공간에서도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띈다. 팔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공간에서 핸드폰을 보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우의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람도 핸드폰으로 기사 같은 걸 읽고 있다. 앞사람은 머리가 기우의 눈 밑에 있을 정도여서 핸드폰 화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에 실눈을 뜨고 무엇을 읽고 있는지 본다. 얼핏 보니 외계행성에 관한 기사이다. 기우도 관심 있는 분야라서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쉽게 읽히는 글자의 크기가 아니지만, 미간에 힘을 주어가며 읽는다. TESS 우주망원경으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골디락스존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발견된 골디락스존의 외계행성은 항성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존하고 있으며 대기조성은 메탄, 수증기, 오존, 산소,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와 매우 유사한 환경으로 보여 진다. 그다음 부분을 읽으려고 할 때 열차가 여의도역에 도착했다. 기사는 연구방법인 횡단방법과 분광 분석에 대한 설명이 뒤에 이어진다. 내려야 한다. 앞사람도 내린다. 나머지 부분을 읽지 못해 아쉽지만 나중에 검색하면 같은 기사를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기우도 휩쓸려 열차 밖으로 나왔다. 플랫폼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도 조금 전처럼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바로 목 뒤의 가려웠던 곳을 긁는다. 가려운 증상이 거의 남아 있지는 않았던 터라 크게 시원하지는 않다. 뒷목이 땀으로 끈적끈적하다. 여름이 오려면 두 달 이상 남았는데, 사람들이 많은 역 안은 열기로 가득하다.
기우는 전철 안에서 아는 사람을 보았다. 그녀도 여의도역에서 내렸다.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전철 안에 워낙 사람이 많아서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고 사실 그녀와 그리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다. 이름도 모르고 그저 서너 번 정도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다. 그래도 좋은 인상을 받았던 터라 빠르게 걷고 있는 그녀를 쫓아가 아는 척하면서 인사를 건넬지 망설이다가 말았다. 괜히 아는 척했다가 그녀가 당황하면서 분위기만 어색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밝고 상냥한 그녀지만 그건 직업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일 수도 있다. 실제 성격이 어떤지는 모른다. 그녀는 미소가 예쁘고 재치 있게 말을 잘하며 언제나 좋은 향이 났다. 지금도 지하철역 내 특유의 쾌쾌하고 잡다한 먼지 냄새 사이로 그녀의 향이 코끝에 닿는다. 여의도역 밖으로 나왔다. 기우와 그녀는 가는 방향이 다르다. 반대편으로 등을 지고 각자의 갈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