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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by 김초아

어느 날, 남편은 대뜸 나에게 발톱을 깎아 달라고 했다.

“웬 발톱을 깎아달래, 애도 아니고.”

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남편은 자꾸 발톱을 깎아달라고 졸랐다.

“어휴, 정말. 당신 철없어. 아홉 살 난 아들도 혼자 깎는데 왜 이래.”

자꾸 졸라대는 통에 나는 삐쭉 튀어나온 입을 하고 어쩔 수 없이 발톱을 깎아주었다.

남편은 그래도 좋은지 히죽댔다.


매일 아홉 시간 이상 군화를 신고 있는 그의 발톱은 두껍고 거무스름했다. 엄지발가락을 깎고, 아프지 않냐는 나의 말에 남편은 "응."하며 대답했다. 아이들의 얇은 발톱만 깎아주다 두꺼운 발톱을 깎으려니 손아귀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여간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매일 비누로 빡빡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발냄새는 발톱이 잘려 나갈 때마다 솔솔 올라왔다. 질끈 눈을 감고 참았다.

‘그래, 하루 종일 우리 가족을 위해서 고생한 발인데. 너무 싫은 티 내지 말자.’

그렇게 남편의 발톱을 깎는 일은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몇 달이 지나고, 그날은 나도 굉장히 피곤했던 날이었다. 겨우 모든 집안일을 끝내고 앉았는데 남편은 또 발톱을 깎아달라고 했다. 피곤하니 오늘은 당신이 깎으라는 말에도 남편은 계속 졸랐고 그 바람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심술은 손끝에도 뻗쳤고 결국, 발톱 안쪽까지 깎아 버리고야 말았다.

“아야!”

남편은 아파했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피곤한 사람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시킨 게 용서되지 않았다.

“흥, 그러면 본인이 직접 깎으면 되잖아.” 결국 모난 말을 했다.


남편은 그때 이후로 나에게 발톱을 깎아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조용히 방 한구석에 앉아 발톱을 깎았다. 어느 날엔가 남편은 내가 첫째의 발톱을 깎아주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아이에게 “구릿한 발냄새도 좋아. 이야 오늘 정말 신나게 놀고 왔구나!”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한참 지난 지금, 난 왜 빨래를 널다 말고 남편이 나에게 발톱을 깎아달라고 했는지가 궁금해졌을까. 남편의 속옷을 탁탁 털어 널고, 티셔츠를 탁탁 털어 널고. 양말을 탁탁 털어 널자 아, 그제야 이유가 생각이 났다.

냄새나는 발톱도, 군화에 짓눌려 두꺼워진 발톱도, 이런 못생긴 발톱일지라도.

당신의 모든 걸 사랑해 주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온전한 사랑을 받고 싶었나 보다. 자신의 모든 걸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랑,

남편은 사랑해 달라고 말한 것이었다.


지금 내가 다시 발톱을 깎아주겠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흥, 하며 토라질까. 아니면 씩 웃으며 다시 발을 내밀까.

후회스러운 마음이 점점 커지는 탓에 빨래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랗고 맑은 하늘 위로 구름은 흐트러져있었다. 그리고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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