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위한 한우는 없다
아이들만 [무항생제 투플러스 한우] 먹는 세상
아이가 우리가 뭘 먹을 때마다 빤히 쳐다본다. 내가 아이를 안고 음식을 먹을 때면 음식을 따라 시선이 따라온다.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장난 삼아 입에 가져다 대면 입을 크게 벌린다. 이유식을 먹을 때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갖기 전에 봤던 한 해외 다큐멘터리에서는 아이들이 이유식을 따로 먹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식사를 잘게 잘라주기만 한다고 했었다. 겨우 혼자 의자에 앉을 수 있을 때부터 아이는 부모와 같은 식사를 한다고 한다. 나는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과하다고 생각했었고, 만약에 내가 아이를 갖게 되면 저렇게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큐멘터리와는 다르다.
얼마 전부터 와이프는 이유식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들러 이유식과 관련된 책을 빌려왔고, 육아에 지쳐 침대로 와도 한참을 각종 블로그와 SNS를 뒤져가며 정보를 모으고 메모를 했다. 나의 역할은 와이프가 골라주거나 필요하다고 하는 도구들을 인터넷으로 더 싸게 구매해 주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구매한 것만봐도 이유식 용기와 조리도구, 이유식 전용 도마와 칼, 이유식용 수저와 턱받이 등이다.
기본적인 고려요인은 항균과 열탕 소독 가능 여부이며, 그 외에 후기가 좋은 품목,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것들, 예쁜 모양과 프린트되어 있는 그림들, 그리고 편리성에 마지막이 가격이었다. 나름 쇼핑의 천재라고 칭송을 받는 존재였지만,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고 나 역시 다양한 맘 카페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나하나 구매해 나갔다.
결정적으로 모유만으로는 아이들의 철분이 부족하여 소고기를 먹여야 한다면서 와이프가 알아보던 것은 [무항생제 투플러스 한우]였다.
"무항생제 투플러스 한우 라니 "
이미 이름부터 아주 럭셔리하고 우아해 보였다. 소문은 들어봤지만 아직 직접 영접해보지는 못한 그 육류는, 나에게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유니콘의 한 부위와 견주어도 신비스러움이 뒤지지 않을 것 같은 고기의 이름이었다. 와이프는 당연하게 아이가 먹는 것이고 그래서 더 좋은 것을 먹이고자 하여 알아보는 것이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아마 지금부터 우리 집의 식자재는 철저하게 구분될 것이며, 아이가 먹는 이유식의 재료는 주로 [친환경], [유기농], [무항생제], [프리미엄]등의 수식어가 붙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을 나머지 식자재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평범하고 타임 세일하는 것들일 것이다.
솔직하게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단 1%도 아깝지 않다. 심지어 비싸다고 한들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점점 더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늘어간다고는 들었다) 그러니 그 상황이 그렇게 불만스럽지도 않고, 그다지 반대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조금은 슬퍼지는 것은 내가 먹거나 부모님들께 대접할 때는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던 것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주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먹는 것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식자재들이 어른들에게는 나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한 번쯤은 사봤을 만도 한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점점 더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 그리고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에 항상 감사하며 행복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만 특별한 가족이 되고 싶지는 않다. 아이가 먹는 것은 더 비싸고 좋은 것만 먹이고, 아이는 더 비싸고 좋은 옷만 사서 입히고, 내가 하는 많은 것들을 아끼고 줄여가며, 아이에게만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래서 항상 자기가 최고이고,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당장 와이프의 생각을 꺾을 생각은 없다. 아직 아이는 아이 스스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고, 지금은 엄마의 자기만족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함께 지원해 나갈 생각이다. 다만, 시간이 흘러 자신의 대우를 느끼게 될만한 나이가 되기 전에 나는 온 가족이 모든 것을 함께 누리는 상황으로 만들어 놓고 싶다. 아이만 특별한 것을 먹거나 입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환경과 수준에 맞는 것들을 함께 누려나가는 가족으로서의 모습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조금 더 능력이 생겨서 [무항생제 투플러스 한우]를 언제든지 먹고 싶어 지면 한 두어 근씩 사서 집에서 편하게 슥슥 구워 먹을 수 있는 부자아빠가 되는 것이다. 목표가 "[무항생제 투플러스 한우]를 편하게 사 먹는 것"은 좀 우스울지 몰라도 " 가족들이 먹고 싶은 것은 가장 좋은 것으로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정도라면 나름 근사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목표로는 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아직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상태로 나에게 왔고, 우리의 환경은 우리가 자랄 때와는 달라서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건강을 위해 좋은 것들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 분명히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는 똑같이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만을 위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이 특별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좋은 가정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