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여행을 떠나다.

첫 번째 여행

by 박희종

우리 부부는 여행을 좋아한다. 가까운 국내 여행부터 길고 먼 해외여행까지. 나름 꽤 많은 여행을 다녔는데,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 스타일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우선, 여행에 있어 고집이 없다. 꼭 가야 하는 곳이나, 꼭 먹어야 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강박이 없고,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여유로움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 곳을 주로 여행하면서, 그곳의 사람들이 즐겨 먹는 식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하면서 크게 싸우거나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적도 없고, 조금은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고 해도, 쿨하게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의 마지막 여행은 임신 중기의 오스트리아 여행이었다. 임신이 된 것을 알기 전에 미리 예약을 해둔 곳이었고, 너무도 가보고 싶던 곳이기에 최대한 조심해서 다녀오자고 다짐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와 함께한 두 번째 여행일 수 있는데, (첫 여행은 임신 사실을 모른 채 거제도를 한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부터 아이가 우리의 여행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동 스케줄이 짧아졌고, 액티비티가 빠지게 되었다. 음식을 고르는 기준도 입덧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숙소 역시 청결과 편안함이 최고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가 우리의 여행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조금 덜 다니는 대신 더 여유 있는 시간을 즐겼고, 액티비티를 통한 격렬한 즐거움 대신 편안한 곳에서 차분하게 풍경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그 정도 변화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우리에게 온 후, 우리의 삶은 전반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고, 여행은 이미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이 벅차게 힘들었고, 벅차게 행복했다. 아무리 긴 여행의 여정도 육아와 비할바가 아니었고, 세상의 그 어떤 여행의 행복도 아이가 주는 행복과는 견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폭풍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아이는 점점 성장했고, 그래도 어르새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가기도 하고 외식을 할 수도 있게 되는 시기가 왔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제주도 출장이 잡힐 때면 살짝 데려가 볼까도 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을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 연휴는 그냥 지나치기에 너무 아쉬운 기회였다. 처가 쪽 식구들과 이틀 전에야 급하게 숙소를 예약하고, 춘천으로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렇게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을 계획하면 끝인 줄 알았다. 가면 되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숙소를 예약한 다음날 와이프는 아이의 옷을 빨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서 입힐 아이의 내복과 외출복, 손수건부터 담요, 수건에 유모차 커버까지 다양한 종류의 빨래들을 하루 종일 했다고 들었다. 나는 퇴근 후에 아이가 가져갈 장난감과 책들을 소독했고, 와이프는 이유식을 만들고 젖병과 식기, 치발기 등을 소독했다. 그다음 날은 다 마른 옷들을 정리했고, 아이가 입을 온을 코디해보기 시작했다. 또한 2박 3일 동안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들 체크하고 두고 가도 되는 것들을 정리했고, 캐리어를 꺼내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을 때, 여행 준비는 오로지 설렘만 가득했다. 가서 어떤 옷을 입을지,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을지, 선글라스와 모자를 챙기고, 카메라와 보조배터리를 충전하는 것 정도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하던 것들은 지금 고민거리도 되지 않는 것들이다. 우리는 온전히 아이를 위한 준비로 모든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고, 모든 걱정과 고민 역시 오로지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밤 11시가 넘어서 아이의 여행 준비가 다 끝이 나고서야 우리는 간단히 우리들의 옷을 챙기고 짐 싸는 것을 마무리했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더 챙기고 나니 우리들의 짐은 어마어마해졌다.
작은 캐리어 2개와 배낭 하나, 커다란 보냉 가방 하나, 와이프가 들고 있는 꽉 찬 에코백은 별도였다. 차 트렁크에 있는 커다란 유모차 덕에 큰 캐리어에 한 번에 담지 못한 우리는 6개나 되는 짐을 결국 2번에 걸쳐 옮기고 차에 실었다.

"나 다시는 여행 가자고 안 할 것 같아"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지쳐버린 와이프가 한 말이었다. 와이프가 여행에 대한 기대나 설렘을 버린 건 이미 오래전이었다. 실은 우리만 생각했다면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안온 연휴에 아이에게 무엇인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획한 여행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떠나기로 한 것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다 보니 이미 여행에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모르지만, 출발부터 우리는 너무 즐거웠다. 아이는 할머니와 뒷자리에서 즐겁게 놀며 출발했고, 와이프는 오랜만에 나의 옆 자리에 앉아 같이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하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그리고 아이가 잠이 들자 춘천까지 가는 동안 어머니와 우리는 간식도 먹고 음악도 들으며, 평소에는 하지 않던 다양한 대화들을 나누게 되었고, 길을 헤매 우연히 들어간 동네에서는 아주 맛있는 막국수를 먹을 수도 있었다.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 들어간 알파카 농장에서는 우리 아이도 3살짜리 처조카도 신나게 뛰어다니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별이 잘 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2층짜리 숙소는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었고, 집 앞의 작은 개울은 아침마다 아이를 산책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여행 내내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눈이 커다래져서 좋아했고,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도, 부모님들의 모습도 흐뭇했다.

" 우리 아빠는 어릴 때 주말마다 우리를 데리고 놀러 갔었어.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놀곤 했는데, 고무보트에 바람을 불러서 저 먼바다까지 나가는 게 어찌나 무서웠는지 나는 몇 번이나 울고 불고 싫다고 때를 썼는지 몰라."

언젠가 와이프가 나에게 해주었던 어릴 적 추억이다. 와이프가 즐거운 표정으로 하는 어릴 적 이야기를 들으며 , 나도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와 개울가에서 놀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뭐든 여건이 다 좋지 않던 시절인데도, 우리는 날씨가 좋을 때면 주말마다 산으로 계곡으로 놀러 다녔던 것 같다. 계곡에서 다슬기도 잡고, 고기도 구워 먹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그 시절에는 어디서나 취사가 됐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고생은 귀여운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생스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신 부모님의 마음은 지금 우리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아이가 첫 여행을 다녀왔다. 앞으로 그 아이의 삶에는 수많은 여행의 기회가 남아 있을 것이고, 가능하다면 나는 아이와 최대한 많은 여행을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의 여행은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부모님들의 여행도 되도록이면 최대한 많이 함께하고 싶다. 내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앞으로 좀 더 부지런히 여행을 다녀야 할 것 같다. 조금 귀찮고 조금 힘이 든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남은 모든 여행의 기회를 우리 아이와 나의 부모님들과 함께 만드는 추억으로 가득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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