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한다.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서 대학교 때 태어난 첫 조카를 보기 위해 한동안 술자리도 마다하고 집에 일찍 가기도 했었고, 친구들의 아이들도 너무 이뻐해서 선물도 많이 사주고 만날 때마다 신나게 놀아주곤 했다. 심지어 우리 아이보다 1년 반이 빠른 처조카는 내가 너무 잘 놀아줘서 아직도 이모보다 이모부를 더 찾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아이가 생겼을 때, 내가 누구보다 아이를 많이 좋아하고 이뻐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아이가 태어난 후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아이를 좋아하고 이뻐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이 아이를 좋아하는 것을 수치로 따진다면 항상 오늘이 최고치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하루가 지나면 어제보다도 훨씬 더 이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게 최고치인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아이가 좋다.
부성은 본능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버지들은 아이들을 직접적으로 느끼지도 못하고, 태어난 후에도 탄생과정에서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이다 보니 처음부터 부성이 풍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모성 역시 모든 엄마에게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은 아닐지도 모른다.(요즘 많이 발생하는 아동학대의 사건들을 보면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너무나 감사하고 놀랍기는 했지만, 그 아이의 모습이 처음부터 사랑스럽거나 내 마음에 콕 박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처음 보는 존재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 그리고 너무 작은 존재에 대한 이질감으로 한 번에 내 아이라는 친밀감과 사랑스러움이 몰려오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이 아이와 나를 가족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존재가 이제는 내 말귀를 다 알아듣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행동에서 본인의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고, 우리가 알려주는 것을 배우고 따라 하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보내는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우리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이도 똑같다는 것이다. 아이는 당연히 나라는 존재를 아빠로 인지하는 데,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심장소리와 목소리, 냄새 등을 통해 분명히 인지했을지 몰라도, 아빠는 오랜 시간 함께하고 충분한 관계를 형성해야만 인지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아빠는 충분한 시간을 통해 아이에게 인지되어진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 가장 어렵다. 아이는 주말 내내 아빠와 함께 놀고, 아빠에 팔에 매달려 산다. 나는 아이와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되도록이면 주말에는 밥도 내가 먹이고, 기저귀도 내가 갈아주려고 한다. 외출을 할 때는 당연히 내가 아기띠를 하고 나한테 매달려서 다닌다. 아침에 엄마가 자고 있으면 슬쩍 둘이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기도 한다. 하루 종일 붙어서 책도 읽어주고 같이 놀아주다 보면, 아이도 아빠와의 친밀감이 아주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월요일 아침에는 유독 나의 뒤를 더 졸졸 쫓아다닌다. (아빠가 출근한다고 빠빠이를 하자고 하면 빠빠이 대신 아빠에게 안기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럴 때면 정말 회사를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는 주말에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주중에 부족했던 정을 쌓는다.
물론 이러한 관계도 월요일에 아빠가 출근하고, 하루 종일 엄마와 재미있게 놀다 보면 모두 금방 까먹는다. 엄마만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엄마하고만 놀게 되고, 그렇게 주중을 보내다 보면 당연히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찾게 되는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간다. 하지만 주말의 친밀감이 항상 다시 돌아가 버린다고 해도, 주말이면 다시 끈끈해지는 관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 관계가 나는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동스럽다.
부모가 되면 당연히 아이가 이쁜 줄 알았다. 아니 부모가 되는 순간, 한방에 아이가 전부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도 점점 정이 쌓여가는 것이고, 끈끈한 관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결국 점점 쌓여가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
"아니 왜 하루 종일 웃고 있어?"
주말에 아이와 함께 있는 나의 표정을 보고 아내가 나에게 한 말이다. 나는 아주 심각한 딸바보다. 이미 회사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알정도로 딱 보면 티가 팍팍 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나의 이 심각한 상사병은 절대 나아질 가망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낼 예정이고, 그렇게 아이와 나는 점점 더 많은 정이 쌓여 갈수록 나의 병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일이나 다른 상황에 대한 핑계로 아이와의 시간을 미뤄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정적인 가족의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피곤하고 귀찮다는 핑계로 아이와의 시간들을 미뤄버린다면 분명하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아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의 품을 떠나고 있고, 내 품 안에 있을 때 더 많은 정을 쌓아놓지 않으면 우리는 더 가까워질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의 품을 떠나고 있고, 지금 더 많은 정을 쌓아놓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세상에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도, 나의 업무도,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취미생활도 모두 중요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결국 꿈꾸는 목표는 모두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은 가족을 기준으로 봤을 때를 말한다.) 과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결과도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행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니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와 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오랜 시간이 지난 우리가 추억을 이야기할 때 환하게 웃으며 서로 행복해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