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면도기부터 치워야겠다.

상처보다 깊은 사랑

by 박희종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떨어져서 이마에 멍이 들었다고 한다. 아이는 놀라서 울고 아내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번 주에 돌사진을 찍기로 예약이 되어있기 때문에 더 걱정이 큰 거 같다.

"괜찮아. 사진이니까 보정도 될 거야."

"애들은 다 다치면서 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이가 다친 걸로 가슴 아파할 아내가 걱정돼서 최대한 태연하게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전화통화를 했다. 실제로도 크게 다친 것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또 전화가 왔다.

"오빠. 아기가 면도기를 손으로 잡았어!"

"피가 자꾸 나는데 애가 울어서 지혈을 못하겠어, 어떻게 해!"

아내는 너무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고, 뒤에서는 큰소리를 우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선 어서 집 앞에 있는 병원에 가라고 했고, 아내는 전화를 끊었다.

"면도기..."

정말 생각도 못했다. 내가 아침마다 쓰는 면도기를 아이가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아이가 다쳤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면도기를 꺼내놓고 쓰던 나의 습관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조금만 더 세심했어도, 내가 아이가 면도기를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이는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아서 꿰매지는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만, 아이가 자주 빠는 손가락을 다친 것이라서 자꾸 빨려고 하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이 있었다.

아내는 너무 놀라서 나한테 전화를 하고는 울면서 병원에 가고, 집에 와서도 계속 울었다고 했다. 아이가 다친 것은 처음이라서 나는 아이만큼이나 놀랐을 아내가 걱정됐다.

아내가 커다란 붕대를 감고 잠든 아이의 사진을 보냈는데, 보자마자 마음이 짠하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한동안 면도기를 볼 때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아이가 다치는 것이 모두 부모의 탓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막상 다치고 아프니까 모든 것이 다 내 탓인 것만 같다. 아이는 앞으로 더 많이 넘어지고 다칠 텐데, 우리는 그때마다 참 많이 미안하고 속상할 것 같다.

어쩌면 오늘은 아이의 손에 감아진 붕대보다 더 커다란 붕대가 엄마와 아빠의 마음에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아이가 다쳐서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아이의 멍 보다고 진하고, 아이의 상처보다 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 가족이 모두 덜 아프기 위해서라도 오늘 집에 가면 위험한 것들을 다시 찾아보고 싹 치워야겠다. 아이는 우리의 생각보다 빨리 크고 더 빨리 움직이고, 훨씬 더 의욕적이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당장 면도기부터 치워야겠다.


keyword
이전 28화이 꽃이 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