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저는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내년에 이 학교에 꼭 들어갈 거거든요. 그냥 서류만 좀 먼저 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기생충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대화다. 다니지 않은 학교의 재학증명서를 위조하면서 뻔뻔하게 자기 합리화를 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는 그 모든 것이 계획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 상황은 어쩌면 자신의 아들을 감싸는 마음과 당당하게 말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방어본능 일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삶과는 대조적인 아들의 태도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다.
"저는 원래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이 제 계획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뿐입니다."
또 다른 드라마에서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살아가던 주인공이 말이다.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해봐도 그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계획 자체를 세우지 않는다는 말은 당연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나는 계획이란 말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직장 내에서의 수많은 계획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분석적이고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수립되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안에서의 목표는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새로 출시하는 신제품의 목표나 새로운 서비스의 기대효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자극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희망적이지 않고 기대가 되지 않는 프로젝트는 진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계획은 성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리고 그 기대와 희망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들이 의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기생충 아들의 계획은 어쩌면 그 학교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나는 그 학교에 들어갈 사람이니 이 증명서는 속이는 것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이 과외를 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계획이 기대와 희망을 포함하고 있다 보니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당연히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더 간절히 바라던 것이나 계획의 성공을 확신했던 경우는 더 큰 실망감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후자의 드라마 주인공처럼 계획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후자의 드라마 주인공의 경우 기대와 희망은 거부하지만 스스로의 생활태도에서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은 유지가 된다. 그런 경우 계획은 없다고 하더라도 성과에 대한 만족이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획을 포기하는 순간 열정적인 부분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즉, 기대와 희망이 없으니 굳이 열심히 하거나 힘들게 노력할 필요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슬픈 경우는 계획을 포기해서 의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생각할 수도 없는 힘든 환경에 처해있다 보니 머릿속의 경우의 수가 아예 사라지는 상황이다. 즉, 무엇인가 미래를 기대하고 상상하기에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벅찬 경우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계획이라는 단어는 그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획을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는 반듯이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주 가벼운 예로 여행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여행을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보통의 가정이나 모임에서는 이런 상황들이 펼쳐진다.
[상황 1] "우리 여행이나 한번 갈까?"
"무슨 여행이야 여행은 그냥 집에서 쉬면 되지"
"아니 그래도 날 풀리면 어디 가까운 데라도"
"아 됐다니까 피곤한데 무슨! 말도 꺼내지 마"
[상황 2] "우리 여행 갈까?"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아니 뭐 아무 데나 바람이나 쐬고 싶어서"
"그래 , 그럼 어디라도 가자"
[상황 3]
" 우리 여행 갈까? 나 제주도 가고 싶은데 "
"그래? 언제? 당신 휴가 낼 수 있어?"
"사무실에 말해봐야 하긴 하는데 연차 하루 정도는 낼 수 있을 거 같아"
"그럼 나도 지금 하는 프로젝트 마무리하면 여유 좀 생길 거 같으니까 다음 달 첫 주에 갈까?"
" 어! 정말 좋다. 그럼 내가 우선 비행기 티켓부터 알아볼게"
" 그래 그럼 내가 숙박 좀 찾아보지 뭐 맛있는 맛집도 좀 찾아보자"
"오키 정말 좋아 벌써부터 떨린다"
[상황 1]은 계획의 시작도 없는 포기 상태인 경우다. 실제로 여건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필요도 없이 이미 선을 긋고 무시해버리는 경우다. 결과는 여행을 떠올림으로 인해서 좌절감만 느끼게 된 상황이다. 이런 경우 몇 번의 시도는 더 해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될수록 좌절감만 커지게 돼서 점점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조차 싫어하게 된다. [상황 2]의 경우 여행을 가자라는 부분의 합의는 했지만 실제 계획이나 실행을 하는 주체가 없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가자 가자 라는 말을 나오지만 실제로 여행을 가게 될지는 미지수이며, 가게 되더라도 급하게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계획과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계속되는 실망감이 쌓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실망은 해도 스스로 실행하지는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여행이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 서로의 탓만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황 3]의 경우는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해서 계획으로 이어지고 실행으로 연결되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다. 특히, 기대와 희망이 주는 행복이 계획과 실행의 과정에서도 계속 이어지게 되고, 그 계획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을 경우는 시작부터 끝까지 긴 기간 동안의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인 경험은 다음의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불러온다. 즉, 또 다음 여행을 준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계획이나 실행이 중간에 예상치 못한 변수나 난관에 부딪쳐서 포기하게 되더라도 결과는 앞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시작도 해보지 못한 [상황 1]의 경우나 계획이 없어 어물쩍 넘어갔던 [상황 2]는 단순한 실망감과 좌절감으로 기억되겠지만 [상황 3]의 경우 어느 단계에서 어떤 이유로 계획이 틀어졌는지가 명확하기 때문에 실망을 하더라도 납득이 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다음의 계획에서는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지금 여행이라는 예를 통해 상황을 구성해보았지만, 우리의 삶도 같다고 생각한다. 결국 삶에서 바라는 것이 있을 텐데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포기 해버 리거나 바라기만 하고 아무런 계획이나 노력도 없는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스스로는 기대하지 않아서 실망하지 않았다고 자위하며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삶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된다. 우리는 간혹 꿈을 꾸지 않는 이들에게 현실적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적이다라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해서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해서 치밀한 계획과 노력으로 좀 더 명확하게 만들고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어릴 적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쳐서 계획 없이 살아가는 모습들은 스스로를 가장 슬프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계획이 다 있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이 어떠하든 내 안에서 기대하고 희망적으로 그릴 수 있는 미래의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좀 더 지치지 않고 움질 일수 있다. 그래야 현실의 부조리를 좀 더 견뎌낼 수 있다. 그래야 지금의 고단함을 위로할 수 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노력을 즐길 수 있다.
지금 당장의 현실이 그리 녹녹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차피 주관적이 내 인생이라면 내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보자. 그 계획이 정말 내가 바라는 삶으로 날 안내해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