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면 안되는 세상
도대체 어디까지가 폭력이라 할 수 있는 걸까?
큰 딸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조퇴를 하고 싶다고... 아까부터 팔이 아프다더니 팔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정도인지 걱정이 됐다. 근데 팔 아픈 게 이유가 아니었다.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는데 여자아이 둘이 자기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서로 자기 옆에 앉기 싫어했다며 그래서 기분이 상해서 조퇴를 하고 싶다고 한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이런 일이 자꾸 생긴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땐 너무 좋다고, 너무 재미있다고 진작 중학교에 왔으면 좋았을 거 같다며 그렇게까지 좋아하던 딸아이인데 1학년 2학기부터 이런 일이 부쩍 잦아졌다. 그래도 조퇴를 하고 싶다고까지 한 적은 없는데 내가 한번 조퇴를 시켜줘서 그런 건지 요즘엔 툭하면 조퇴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 딸은 굉장히 활발하다. 그리고 완전 모범생이고 착한 친구다. 학교에서도 알려진 모범생으로 모든 선생님들도 인정하고 좋아하시고, 학교 수업도 너무 잘 듣고 공부도 곧 잘하는 학생이다. 근데 참 희한한 게 그렇게 착하고 예쁜 학생인데 몇몇의 친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딸은 모두와 잘 지내고 싶어하고 한두명이라도 싫어하는 것 같으면 속상해 한다.
친한 친구들은 엄청 친하다. 하지만 싫어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우리 딸을 싫어한다. 왜 싫어하는지는 우리 딸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그 친구들이랑 접점도 없고, 같이 엮이는 일도 없는데 그냥 싫어한다. 심지어 얘기를 들어보면 알지도 못하는 애도 있다는데 그 친구들마저도 자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자기는 누군지도 모르는데 싫어하는 티를 내니 자기도 답답해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다. 이름조차도 모르는데 이유가 있을 리가 없다. 학원을 같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같은 반, 같은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처음엔 딸아이가 잘 못 느낀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반복이 되니 이제는 진짜 싫어하는구나 확신이 들었다.
근데 이건 뭐 물리적인 폭력도 아니고, 대놓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뒤에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웃고 떠들고...
오늘 이런 상황들 때문에 딸아이가 담임선생님이랑 상담을 하고, 그 뒤에 내가 상담을 했다. 담임선생님이 하는 말은 너무 착하고 능력 있고, 훌륭한 아이인데 성품이 너무 여려 밸런스가 안 맞아 아이가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는 것 같다고 하셨다. 결국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생각으로 키도 크고 발표도 잘하고, 공부도 제법 하면서 춤도 추고, 임원도 자주 하니 눈에 띄는데 막상 지내다 보면 여리고 여려 애들이 뭐라 하건 그냥 헤헤 웃고 마는 그런 아이라는 것이다. 화가 나면 화도 내고, 짜증이 나면 짜증도 내야 하는데, 그냥 무조건 다 받아주고 웃어넘기니 알고 보니 얘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을 하는 것. 그런 뜻인 거다.
그래서 결론은? 결국 우리 딸이 강해져야 하고 멘탈관리를 해야 하며, 아예 넘볼 수 없는 넘사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했던 말, 내가 했던 생각들이랑 똑같은 얘기만 하셨다. 그걸 몇 시간 동안 반복하시는지... 내 귀에서 피날 듯...
그래서 앞으로 또 그러면 강하게 무시를 하고, 강하게 난 너희들 따위에 놀아나지 않는다 라는 행동이나 제스처를 보여주고, 이런 일들을 메모로 적어놓으라고 하셨다. 그걸 모아서 계속 반복이 되면 그땐 생활지도선생님께 가져가서 문제를 공론화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이런 얘기를 딸아이에게 하니 알았다고는 하는데 과연 강하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난 그냥 이런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더 이상 우리 딸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것도 폭력인 건데, 그래서 우리 딸이 상처를 받는 건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네가 멘탈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하고 강해져야 하며 무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차라리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넘사벽이 돼서 아예 쳐다도 보지 못할 정도가 돼야 한다 라는 말뿐이었다.
너무 어렵다. 요즘 중학생들은 더 어렵다. 착함이 약점이 되는 세상이라니...
이 험한 세상에 내놓을 생각 하니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