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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by 앙마의유혹

우리 동네에는 아주 유명한 복권집이 있다. TV에도 수십 번 출연하고 로또 1등도 수시로 배출한 곳이다. 그런 곳이 바로 우리 집 앞에 있으니 로또 사기도 좋겠다 하지만 바로 앞이라 그런지 자주 가진 않는다. 거기다 내가 다니는 길의 동선이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최근에 또 방송을 한번 탔다는데 그 효과 덕분인지 평소보다 줄이 더 길어졌다. 전에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혹은 명절이나 그 해의 마지막 날엔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는데 최근엔 평일에도 줄이 길다. 그래서 수동으로 로또를 사기란 쉽지 않다. 난 그렇게까지 줄 서서 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일이 있어 나간 김에 로또나 한번 사볼까 해서 갔다. 줄이 좀 있긴 했지만 못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것도 줄 서기 싫어서 뽑아놓은 자동을 구매했을 텐데 (미리 뽑아놓은 자동 구매는 줄 서지 않고 구매할 수 있다.) 오늘은 왠지 수동으로 사고 싶어졌다. 그래서 줄을 섰다. 줄을 서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수동 선택을 위해 용지를 집으려는데 오늘따라 뭉탱이가 집어지려고 해서 한 장만 뽑으려고 바둥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내 뒤에 사람 두 명인지 세명인지가 새치기를 하고 앞으로 갔다. 당황했다. 분명 나 줄에 서있었고 저 용기를 집은 것뿐인데 자연스럽게 새치기를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고 그 뒤에 줄을 섰다. 또 이런 상황이 생길까 봐 일부러 줄 벗어나지 않고 마킹도 서서 내 손바닥에 대고, 불편하면 옆에 테이블에 대고 마킹을 했다. 마킹 다하고 사인펜을 내려놓는 순간.!


"아가씨!! 다 했으면 뒤로 다시 가서 줄 서야지요!. "


라며 내 뒤에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화를 내신다. 또 당황... 분명 난 처음부터 섰었고 마킹할 때도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러웠다. 내가 저 줄 서있었어요라고 말하려는데 그 가게 직원이


"저분 아까부터 줄 서 계신 분이에요."

라고 얘기를 해줬다. 그러니 할아버지 하는 말

"아 그래요? 우린 몰랐죠. 알 수가 있나."

그러길래 내가 한마디 더 거들었다.

"그래서 줄 서 있었다고 했잖아요. 원래 더 앞인데 제 뒤에 분들이 제 앞으로 가신 거라고요."

라고 말하니 또!

"난 모르니까! 모르니까 그러지."

하면서 큰소리로 화를 낸다.


그러니 다른 직원분이 한마디 더 한다

"그만하시죠. 원래 줄 서셨던 분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그제야 입을 다무신다. 끝까지 몰랐으니 내가 한 말과 행동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온갖 추태는 다 부리고는 자기편이 없는 거 같으니 조용하다. 진짜 너무 화가 났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어려운가? '아 내가 몰랐어요. 미안해요.' 이렇게 말하는 게 어려운 건가?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어떤 할머니께서 너무 미안하다고 하셔서 내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뭐가 그렇게 화가 나셨는지 내가 화풀이 대상이 된 기분... 내 새끼는 한없이 미안하다 입에 달고 살 정도인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는 게 참 많은데...


미안하다는 말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몰랐으면 인정하고 말투라도 바뀌어야지. 끝까지 큰소리 내면서 화를 내고, 직원들이 뭐라 하니 그제야 입다 무는... 아.. 내가 만만해 보이나? 웬만하면 화를 내려고 하지도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러려니 하는 게 나인데, 오늘은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났다.


나는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이렇게까지 기분 나쁘고 화나지는 않았을 텐데...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곱게 나이 먹어야지...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간혹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노인들하고 싸운 영상들 같은 게 올라오면 댓글에 노인공경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물론 당연하다. 노인 공경해야지. 근데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분명 시비는 상대방이 먼저 걸어오고, 말도 안 되는 걸로 꼬투리 잡는데 그걸 그냥 노인 공경이라는 이유로 참으라는 건가? 참을 수 있는 게 따로 있고, 알려줘야 하는 게 따로 있다고 본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진다는 말이 어떤 이야기인지 종종 알 수 있는 상황이 온다.


글을 쓰고 나니 좀 진정이 된다. 억울하지만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오늘 딱 그 꼴...

로또 1등 되려고 액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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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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