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안 Jun 18. 2024

처연하고 애틋한 소설 <용의자 X의 헌신>



스쿠버 다이빙 오픈워터 자격증 코스의 마지막 날, 드디어 실제 바다에 입수했다. 눈앞에 펼쳐진 옥색 빛깔의 또 다른 공간. 물속 특유의 신비한 수중 세계 속을 유영하고 있는 나 자신도 신기했다. 왜 굳이 무거운 산소통을 비롯, 갖가지 장비들을 챙기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스쿠버다이빙을 하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추리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추리소설 하면 대부분 '살인사건'이 등장하는데 이런 살인사건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싫다. 가끔 뉴스에서 흉측한 살인사건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사건이 아무리 픽션이라도, 그걸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읽어가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잔인함, 기괴함, 공포감 같은 분위기를 싫어했다.



물론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과정의 몰입감과 예상치 못한 반전의 쾌감이 추리소설의 매력이다. 학창 시절 '버스커빌의 개' '공포의 계곡' 같은 셜록홈즈 시리즈 몇 권을 재미있게, 빠져들며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그 이후 10년도 넘게, 아니 거의 20년 가까이 다른 추리소설을 찾아 읽지 않은 걸 보면 추리소설이란 장르는  관심사 저 밖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용의자 X의 헌신>은 단번에 내 인생소설 베스트 5 안으로 들어와 버렸으니... 그만큼 내게 준 울림이 컸고, 여운이 깊었다. 뭔가 특별한 소설이었다.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그 틈새를 파고들어 고민하게 하는. 새로운 결과 플롯을 가진 소설.



소설을 읽으면 우리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그들의 목표나 동기, 갈등을 따라간다. 왜 저렇게 행동할까를 추측하고, 나와 다른 해결 방법에 감탄하거나 분노한다. 공감의 예행연습인 셈이다. 동화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타인의 감정을 더 잘 읽는다는 연구 결과 역시 같은 맥락이다.

<소설을 읽는 이유> _ 백영옥




<용의자 X의 헌신>은 초반부터 독자에게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우발적인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살인이기에 주인공은 자수하려 한다. 이때 주인공을 도와주려는 도움의 손길이 등장하고, 사건은 위장된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범인은 누구일까'에 집중하게 한다면 <용의자 X의 헌신>은 범인이 누구인지 이미 드러난 상황.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들이 우발적 살인 이후, 주인공과 작중 인물들의 심리에 몰입하게 만든다. 소설 속 등장인물에서 사이코패스는 없다. 주인공을 괴롭히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인물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신이상자 부류까지는 아니다.




물론 살인은 엄연한 죄이고 잘못이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든다. 맥락과 사연이 있으니까. 하지만  범죄가 밝혀지지 않는다 한들, 주인공이 남은 생을 떳떳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역시 든다. 아, 이 양가적인 심정. 주인공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수사망은 조금씩 좁혀지니 긴장감이 고조될 수밖에.



여기서 소설의 제목대로 작가는 누군가의 '헌신'과, 그 '헌신'의 동기가 되는 내용을 결말부에 보여준다.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된다. 왜 제목이 <용의자 X의 헌신>인지를. 헌신이란 단어의 무게감. 그로 인한 고뇌, 물음들이 교차되며, 용의자 X라는 인물을 계속 곱씹게 될 것이다.




아침 7시 35분, 이시가미는 평소처럼 연립 주택을 나섰다. 3월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바람이 꽤 차갑다. 머플러에 턱을 파묻고 걸었다. 큰길로 나서기 전에 자전거 거치대 쪽으로 힐끔 눈길을 준다. 자전거가 몇 대 있었지만 그 가운데 그가 찾는 녹색 자전거는 보이지 않는다.

_ <용의자 X의 헌신 > 첫문장, 첫문단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은 친절과 한마디 말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반향을 줄 수 있는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소설 결말부, 한 인물이 겪은 에피소드와 심경 변화를 이렇게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묘사할 순 없었을 터. 이 부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어 블로그에 통째로 타이핑해 놓기까지 했다. (여기에도 인용할까 하다가 읽는 이의 카타르시스를 반감시킬 수 있기에...)




정말 오랜만에 진하게 몰입해서 읽은 <용의자 X의 헌신>. 사람들이 괜히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 이런 흡입력이 있으니까. 훅 하고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스토리에 자체에 탄탄한 매력이 있으니까,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으로 재생산되고 재창조되는 거겠지.  



<용의자 X의 헌신> 뮤지컬 포스터


진짜 좋고 괜찮았던 건 다른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한 두 번씩 얘기하게 되는 법. 올 상반기엔 <용의자 X의 헌신>이 내겐 그런 책이다.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바닷속 특유의 새로운 공간미에 눈을 뜬 것처럼, <용의자 X의 헌신>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식 추리소설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소설은 간접적으로 묻는다.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소설은 던져 놓는다. 당신을, 옳고 그름으로 딱 잘라 나눌 수 있는 상황으로. 그리고 재차 묻는다. '여기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이전 14화 네게 고맙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