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야, 엊그제는 맑은 가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책을 나갔어. 투명하고 따사롭게 비치는 햇살에 천변가의 물들이 반짝이고, 살며시 부는 바람에 꽃과 풀들이 일렁이더라. '아, 올해 가을은 오늘로 다 됐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이었어.
벤치에 앉아 찬찬히 가을날을 즐기고 있는데 이름 모를 들풀이 눈에 들어오는 거 있지? 갈대와 비슷한 것 같은데 갈대는 아닌 것 같고, 그런데 가을에 많이 봤던 것 같은 그런 풀이었어.
들풀을 계속 보다 보니 '하나님이 들판에 자라난 이 이름 모를 풀도 정성껏 돌보시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라는 말씀이 생각이 났어. 하나님이 우리를 친히 돌보신다는 거야.
얼마 전에 하이 네가 한 달 정도 키우던 베타라는 하얀 물고기가 죽은 일이 있었지. 그때 네가 너무 슬프기도 하고 또 죽은 베타를 보는 게 무서워서 도저히 물고기를 꺼낼 수 없으니 대신 꺼내서 묻어달라고 하던 말이 떠오르는구나. 아빠도 안 그런 척했지만 죽은 베타를 수조 속에서 꺼내는 게 마음이 많이 어렵더라. 솔직히 좀 무섭기도 했고.
너는 자책하면서 먹이를 오랫동안 못줘서 베타가 죽은 것 같다고 얘기했지. 한 생명을 돌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란 걸 네가 깨달았을 것 같아.
이제 돌이 되어가는 동생 하임이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할 거야. 엄마와 아빠가 기저귀도 갈아주고, 엉덩이도 씻기고, 혹시 하임이가 이상한 걸 주어먹나 주의 깊게 살피기도 해야 하고, 맘마도 제때제때 먹여야 하고, 칭얼대면 잘 달래주기도 해야 하고. 돌봐야 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실 거야. 하나님은 오히려 더 하시겠지.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아빠 같은 어른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돌봄이 필요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돌봄 아래 있으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 생각해보면 이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와 안정감을 주는지 몰라. 사람인 엄마와 아빠는 너를 돌보는 데 분명히 한계가 있어. 네가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그걸 느끼겠지.
그렇지만 언제 어디서나 계시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우리를 헤아리시고, 멀리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히 돌보신다니.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지.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이 날 내팽개치신 게 아닐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고 생각될 때도 분명히 있을 거야.
그래도 잊지 말자. 하나님이 때로 침묵하시는 것 같고, 저만치 떨어져 계시는 때라도, 분명 나는 하나님의 돌봄 아래 있다는 걸 말야.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이 생각하시는 분이고, 내가 보는 것보다 더 멀리 보시는 분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내가 그분의 선하신 뜻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길 원하는 분이셔. 그러기 위해선 때론 훈련이 필요하고, 고독한 시간도 필요하고, 신앙의 근육을 키우는 시간도 필요하지.
아빠가 작년 이맘때쯤에 PT를 받아봤잖니? 나도 가끔 아빠 따라와서 아빠가 PT선생님이랑 운동하는 걸 봤지? 그때 아빠가 잔근육도 생기고 몸 컨디션이 참 좋았었는데 말야.
PT선생님이 아빠에게 근육이 생기려면 못할 것 같을 때 하나 더 해야 한다고 얘기했었잖아. 그러면서 아빠가 간신히 하나 혹은 두 개 더 하면 '나이스~'라고 해줬던 걸 너도 기억할 거야.
아빠 생각엔 하나님이 우리의 최고의 PT 선생님이 아닐까 싶어. 그리고 우리 신앙의 근육을 키워내시기 위해 힘들지만 하나만 더! 외치시고 응원하시고 격려하실 때가 많을 거야.
이 가을날, 천변 공원에, 또 지나가는 길가에 핀 다양한 들풀을 보며 떠올리자. 하나님께서 나를 친히 돌보고 계시다는 걸. 아빠는 네가 계속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하면서 네 마음이 여기서 안정감과 평안함을 얻었으면 해.
학교에 가면서 오는 길에 잠시 여유를 갖고 노란 금계국과 국화를 구경하며 가렴. 또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도. 모두가 하나님의 돌봄 아래 있는 것처럼 너도 그래 하이야. 그러니 크고 작은 걱정에 너무 마음이 무거워지지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려 보자. 랄라랄라 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