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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_ 나태주

오늘, 시

by 김이안 Feb 24. 2025



화창한 날씨만 믿고

가벼운 옷차림과 신발로

길을 나섰지요


향기로운 바람

지저귀는 새소리 따라

오솔길을 걸었지요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 길

막판에 그만 소낙비를

만났지 뭡니까


하지만 나는 소낙비를

나무라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날씨 탓만 하며

날씨한테 속았노라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좋았노라

그마저도 아름다운 하루였노라

말하고 싶어요

 

소낙비 함께

옷과 신발에 묻어온

숲속의 바람과 새소리


그것도

소중한

나의 하루

나의 인생이었으니까요



<인생> _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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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시는 이해하기 쉬워서 좋다. 따듯해서, 다정해서 그의 시를 찾아 읽는다.



맑은 햇살, 푸르른 하늘을 보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길을 나선다. 그러나 순간 심상치 않은 하늘. 돌연 먹구름이 낀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하건만, 이내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고, 무방비 상태로 처량히 젖어가는 나.  



언제 어디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 아니겠나. 하지만 나태주는 그 '변수'인 소낙비를 나무라지 않겠다, 날씨 탓만 하며 분개하지 않겠다, 말한다. 옷이 홀딱, 양말까지 흠뻑 젖어도(, 양말만은..) 나름대로 좋았다고, 그마저도 또 다른 아름다운 하루였다며 잔잔히 미소 지으려 한다.



느닷없는 소낙비가 반가울 순 없다. 당혹스럽고, 짜증도 난다. 하지만 시인은 소낙비 덕분에 생각지 않은 선물들이 딸려 올 수도 있다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물론 당장은 조금이라도 비를  맞으려 혼비백산 뛰어다니겠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나날들. 언젠가는 그마저 '소중한 나의 하루, 나의 인생이었으니까요'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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