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감자를 키우면서 느낀 것은 너무 쉽고 빠르다는 것이었다. 3월에 심고 6월에 수확하는 감자는 정말 빠르게 작업실을 장식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어쩌면 감자는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작물일지도 모르겠다. 쉽게 온 사랑은 그만큼 쉽게 떠난다고 했다. 실제로 불같이 타올랐던 감자크루는 감자처럼 빠르게 사그라들었고 모두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감자를 모두 수확하고 다시 빈 땅을 두었던 작년 가을, 나는 양재에 있는 그린팜널서리를 방문했다. 운 좋게 만난 이애경 대표님은 말했다. "하나만 심지 말고 다양한 것들을 같이 심어보세요. 그래야 재밌잖아."
그렇게 새롭게 탄생한 을지가드닝클럽. 우리는 먼저 심어둔 마늘과 양파를 기다리며 이번엔 오이를 키우기로 했다.
4월의 양재화훼시장엔 온갖 작물의 모종들이 전부 모여있었다. 아무래도 모종이다보니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막 식물에 눈을 뜬 초보 농부들 앞에선 다 엇비슷한 풀때기였다. 낯선 곳에 여행을 가 게임을 하는데 마침 한국 사람이 보이자, 어어 저랑 같이 해요! 하는 마음으로 덥썩 오이를 붙잡은 것이다. 아무래도 13,000원이나 하는 미인 고추라든가,(사실 궁금하다, 왜 미인일까) 어쩌다 쌈밥 집에서나 한 두번 봤을번한 치커리보다는 오이가 친숙했다. 한 판에 (24개인가?) 9,000원이었다.
4월 15일에 사다가 심었고 5월 14일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이 피면서 덩굴도 같이 나왔다. 아마 그때부터 오이가 빠르게 자라기 시작했다. 사람이든 오이든 갑자기 확 자라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오이는 심고 한 달이 되면 지지대를 세워줘야 한다. 안그러면 방황하는 청소년처럼 대충 옆으로 자라다가 엉망이 된다. 우리는 6월에야 제대로 된 지지대를 세웠다. 지지대가 없는 오이 덩굴은 옆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잡아쥔다. 마늘, 양파, 잡초까지. 마치 어른 손가락을 감싸쥐는 아기같다. 아니 자꾸 쓰다보니 오이가 사람처럼 느껴진다. 혹시 오이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그럴리없다. 방금 먹은 반찬에도 오이가 들어있었다. (오이냉국)
한번은 가드닝 클럽에 오이 도사가 놀러 온적 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그는 과거 집에서 오이 농사를 지었다고 했다. 과수원 집 딸은 본적이 있어도 오이밭 아들은 처음이었다. 그는 오이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내가 왜 오이 덩굴이 다른 식물을 감아쥐는 지 묻자 그는 나를 철없는 아이보듯 바라보더니 "살려고..." 라고 했다. 그 날 다른 한 쪽에선 또 다른 을가클 멤버들이 주말 농장 체험 학습에 나선 아이들처럼 옷걸이를 부러뜨려 오이 지지대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오이 도사가 그걸 한참 보더니 "음... 철사 때문에 뿌리가 다칠 텐데요." 라고 했다. 그래서 놀란 우리가 왜 진작 말씀하시지 않았냐하니 그는 찡긋 웃으며 "다 경험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나요?" 라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그는 오이에 대한 모든 것을 넘어 인생을 통달해버린 도사요, 지져스 오이스트였던 것이다.
여튼 지져스 오이도사의 도움으로 우리는 바보같은 철사 옷걸이를 철수시키고 정상적인 지지대를 구매해 지지대를 세워줬다. 예정보다 한 달이 지난 뒤였다. 그럼에도, 오이는 잘 자라줬다. 키우는 사람들이 철없고 무지했음에도 오이는 질긴 생존력으로 그 외로운 기간을 버텨낸 것이다. 옆에 있는 다른 식물이나 서로의 줄기를 부둥켜 안은 채 말이다.
물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건 지지대말고 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