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찬

*칼럼/에세이 연습용 글쓰기 - 서울생활을 회고하며

by blue

나는 현재 경기도의 지방도시에 살고 있다. 돈을 모으기 위해 부모님이랑 함께 사는 삼십대 여성은 꽤 고달픈 구석이 있다. 첫째가 남자랑 밤에 있고 싶을때 그렇고, 둘째가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그리고 셋째가 서울이 그리워서다. 요즘의 나는 서울에 나가고 싶을때가 춤추고 싶을 때 그렇다. 서울에는 춤출수 있는 근사한 공간들이 많다. 예쁘게 차려입고, 가슴뛰는 비트와 리듬에 자신을 맡기는 일에 너무나 도취되었다. 일상의 번뇌를 잊을 수 있는 곳 같다.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는 전시회도 서울에 몰려있다. 아기자기한 테이블보가 깔린 테이블 위에서 달콤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작은 까페들도 서울에 즐비하다. 왠갖 재미는 서울에 다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그런 것 같다. 다시 뭔가 재미를 찾아가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돈만 있으면, 사는 건 재밌다고 서울에서 느꼈다. 아무튼 오늘은 내가 서울에서 생활했던 동네를 글로 남겨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남들이 다 쓰는 강력한 아름다움의 한강 말고, 내가 생활했던 곳들에 관하여. 아마도, 내가 기억해보고 싶은 인물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내게는 그런 기억들이 가슴을 움푹 패고 자리 잡고 있으니까.

연희동, 학교가 있던 곳이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동생들과 우르르 서문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에 굽이굽이 골목을 지나면 옐로 다쿠안이란 까페가 있었다. 정말 귀여운 까페였다. 사실 거기 머문 시간은 대로변 건너 전두환 생가 쪽에 있던 까페보다 덜 한데, 이상하게 이름은 옐로 다쿠안 이란 까페만 기억이 난다. 그만큼 귀여웠다. 연희동은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부터 조용해서 좋았다. 대로변 건너 사러가마트 주변의 동네는 정말 고즈넉했다. 그곳의 아름다운 감나무들이 떠오른다. 가을이면 보기 좋은 색으로 익어갔다. 그 연희동 놀이터에서, 마지막 애인이었던 사람이랑 산책을 하다가 그의 사진을 한장 찍었다. 그는 당시 휴가중인 군인이었다. 캘빈클라인의 로고가 박힌 검정 티셔츠를 입고 빡빡머리의 그가 어린이들의 놀이터에서 불량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진이었다. 그는 그 불량함에 걸맞게, 훤한 대낮에 내게 모텔에 가자고 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이 사실을 친구들한테 고자질했고 순진했던 우리는 옛애인을 비난했다. 그와 연애를 시작하고난 후엔 뭐 이것저것 알게 되었지만... 흠. 젠장, 연애휴식기인 지금 다시 애인을 갖고 싶어졌고 다시 이것저것 알고 싶어져서 큰일이네.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 홍제동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랑 룸메로 반년간 살았다. 당시 유행했던 매운냉면집이 가까운 곳에 있었어서, 친구랑 매운냉면을 먹으며 좋아하곤 했다. 우리가 살던 곳은 옥탑방이었는데, 볕 좋은 날 옥상에 빨래를 널어 놓는게 너무 좋았다. 그때 찍은 필름 사진은 아직도 예뻐 보인다. 그게 바로 서울이었던 것 같다. 친구는 그때 한참 연애중이었고, 옥상에서 걔없이는 못살겠다고 인형을 끌어안고 말했다. (그치만 시간이 흐르고 그 친구는 걔 없이 잘 살고 있다) 홍제천을 걸었던 기억도 아스라이 아지랑이 처럼 피어오르고. 조금 겁먹었던 건, 그때 홍제동 근처 학교에서 살인사건이 나서 집에 돌아가던 길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아차, 정말 빼먹을 수 없는 기억이 있네. 당시 좋아하던 아티스트 오빠가 있었다. 나보다 일곱살인가 많았는데, 나를 데려다 주시고는 우리가 살던 옥탑방을 바라보며 "서울에 이런데가 다있네.."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많이 속상했다. 벽에다 예쁜 사진들 많이 붙여놓고 포근한 우리 보금자리였는데. 아무튼 그 오빠랑 술먹으려고 홍제에서 상수까지 뻔질나게 돌아다녔다. 그 사운드아티스트 오빠는 도대체 정체가 뭔지 본인 신변에 대해선 말을 잘 안해줬다. 심지어 생일도 안알려줬다. 그 오빠랑은 아무 일 없었다. 순진했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어필을 해봤지만 말이다. 야심한 밤에 오빠가 차로 은지랑 나를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은지가 앞좌석에 타고, 내가 뒷좌석에 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은지가 내릴 지점이 되서 은지가 내렸다. 그 순간에 나는 뒷좌석에서 차문을 열고 내렸다. 빠르게 은지에게 안녕을 고하고, 본능적으로 앞좌석에 올라탔다. 오빠는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운전했다. 아 맞다 그 오빠 이름이 승주오빠다. 승주오빠는 정말 안경미남이었다. 운전하는 내내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슴이 떨렸다. 그렇지만 솔직히 뽀뽀도 못하고 손도 못잡았다. 내가 앞좌석에까지 탔는데, 그럼 오빠가 뽀뽀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오빠가 선을 지켰다. 스물셋이었으니 내가 너무 애여서 그랬나. 아무튼 서울에 있으면 그런 떨리는 밤들이 생기곤 했다.

낙원상가가 있는 종로. 그곳도 많은 이유로 이십대 청춘들이 많이 모이는 곳일 거다. 나는 아트시네마 때문에 많이 돌아다녔다. 첫사랑이랑 첫데이트도 그곳에서 했고, 졸업을 앞두고 방황을 하던 터에 마음놓일 곳이 없어 영화관을 많이 찾았다. 사실 종로의 기억은 그렇게 찬란하지만은 않다. 거긴 왜그렇게 황량한 걸까. 기억이 좋지 않다. 씁쓸한 기억들 뿐이다. 영화관을 나설때면 마음 붙일 곳 없는 사람의 표정이 그렇듯 우울한 표정을 짓고는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영화관 안의 영화는 너무 멋있고 아름다운데, 종로의 겨울바람은 너무나 내 현실 같아서 고독했다. 그런 멍청한 시간들을 종로에서 많이 보냈다. 의미없는 것들을 추구하는 행위. 그게 다 뭔가 싶다. 종로에는 디자인감각이 없는 간판들이 수두룩 한것처럼 아주 맥락없는 조형물들 천지 삐까리였고, 그게 싫었던 것 같아. 근데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자 다 괜찮아졌다. 첫사랑이 군대가면서 깨졌는데, 그 애가 전역하고 난 후에 보이던 표정이 생각난다. 그 떨떠름한 표정. 근데 그 표정마저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퇴색되고 심지어 새로운 의미들이 새살 돋듯 되살아났다. 을지로가 힙해지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나는 다시 종로를 찾게 되었다. 우후죽순 생겨난 까페들을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떠들석 하게 시간을 보냈다. 홍제천에서 같이 살던 룸메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첫사랑없이 잘 사는 인간이 되었다. 장소는 변하고 기억도 변해갔다.

서울만세!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울고 웃었다. 서울이 아니었다면 체험하지 못했을 그 수많은 감각, 감정들. 정말 아름다웠다고 회고 한다. 대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사랑들을 해볼 수 있었던 거겠지. 꼭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았어도 좋았던 순간들도 있었고.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있었다. 이십대는 서울에서 살았기에, 더 반짝였던 것 같다. 성남에 사는 지금의 나는 꽤 무심한 인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요즘에도 서울로 나가면 설렌다. 서울의 풍경들은 항상 설렘을 안겨준다. 풍경이 오래된 것을 향하고 있어도 그렇고, 미래를 향하고 있어도 그렇다. 빽빽한 아파트들 빌라들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사람들은 내가 만날 수도 있는 사람들이고, 일평생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신비가 좋아. 언젠가 다시 서울에 살 수 있게 된다면, 또다른 아름다운 순간들로 내 인생이란 앨범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조금은 안정되고 성숙한 나로 ... 직업이 있고 새틴 드레스를 입고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나로 말이다. 그런 좋은 나날들이 언젠가 올거라 생각하면 다시 가슴이 떨린다. 사랑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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