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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Oct 05. 2024

생애 첫 하프마라톤

신기하게도 기쁘게도 완주

첫 마라톤 대회를 나가본 것이 작년 10월쯤 JTBC 10K대회였다. 큰 욕심이 있던 것은 아니고 주위 친구들이 다들 한다길래 덩달아 나갔었는데 우선 대회의 열기에 굉장히 놀랐었다. '나는 쿨쿨 자고 있었을 이 새벽에 이렇게 달리고 싶은 사람이 많았구나' 생각에 한 번 놀라고, 두 번째로는 '죽을 것 같은데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내 몸이 뛰어낼 수 있구나'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일 년 정도 흐른 어제,

생애 첫 하프마라톤을 나갔었다.

그리고, 참 기뻤다.





살면서 나이가 계속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 힘으로 성취를 해내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어렸을 때는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오르는 성적표를 받아 들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꼭 비례해서 승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들들이 매일 잠들기 전에 내가 그들의 발바닥을 주물러주는 노력을 매일 한다한들,이미 자아가 생긴 초등학생 아들들도 내가 원하는 나의시나리오대로 가주지는 않았다. 하물며 마흔이 넘은 남편도 당연하겠지만 마찬가지였다.


내 몸무게도 생각처럼 살이 쉽게 빠지지도 않으니, 내 몸 하나마저도 원하는 대로 하기는 어려운 일인걸 점점깨달았다.


그러나,

그래도,

원하는 거리만큼을 달려내는 것, 이것 하나만큼은 내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명 2km를 연속해서 뛴다는 게 힘들었다. 2km가 익숙해질 때쯤 5km를 한번 뛰어보려고 경정공원을 돌았었는데 그때 나는 내 무릎 슬개골이 나가네~죽겠네~ 끙끙 댔었다.

그렇지만 한번 5km를 뛰어보니 대회 분위기에 휩쓸려 우우 하는 인파 속에 10k까지 뛰어낼 수 있었고 그렇게 그렇게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나무늘보처럼 쉬엄 쉬엄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뛰어주는 노력도 노력이라고

내 몸이 날 배신하지 않고 점점 장거리를 뛰게 해 주었다.

그게 참 고맙고 좋았다.





그렇지만 늘 뛰어보지 않은 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막상 15km까지는 뛰어봤어도 하프마라톤을 나갈 생각 하니 마음이 약간 불안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정말 완주를 할 수 있을까.

전날 밤에 입을 옷을 펼쳐 놓고, 옷에 미리 배번호를 달고 항공샷을 찍은 다음에는, 그냥 어디론가 마냥 도망가고 싶은 맘도 들었다. 결혼식을 하던 그 전날처럼.


작년에는 반바지를 입어야 하나 긴바지를 입어야 하나 전날부터 우왕 좌왕, 핸드폰은 어떻게 해야 되나 들고뛰나 맡기나 오만 걱정 고민들을 했었는데.

올해는 그래도 조금은 능숙하게 평소 달려볼 때 입던 민소매 탑에 헐렁하고 짧은 바지를 후다닥 입고, 계란 후라이도 하나 해서 밥에 간장 참기름 한 숟갈 비벼먹고 여유 있게 선글라스도 끼고 대회장으로 갈 수 있었다.


이번에 참가한 '국제평화마라톤' 대회는 강남구에서 주최하는 대회라 축제 분위기였다. 치어리더들의 몸 풀기운동도 신나게 따라 하고, 대회를 위해 준비한 애플워치의 스트라바 앱도 신나게 출발 버튼을 눌렀다.


첫 대회 때는 뭐가 뭔지 모르겠고 긴장되고 하니까 나를 앞 질러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불안해져서 처음부터 막 내달렸었다. 에너지젤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라서 그냥 긴바지 호주머니에 넣었던 eclips 사탕과 초코아몬드를 힘들 때마다 주머니에서 주워 먹으며 5km 겨우 갔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달랐다.


6:30 페이스보다 빨리 가지 않으리라 여유 있게 생각하며 초반에 내달리지 않았다. 그리고 에너지젤도 다 계획이 있었다. 빨간색 아미노젤을 나는 7K와 14K에 두 번 먹으리라! 계획도 다 세웠다.


그러자 놀랍게도 숨도 별로 차지 않고, 내가 달리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70% 정도만 필요하고 30% 정도는 그냥 내 안에서 계속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수다를 떨면서 가라고 해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어떻게 어쨌든 뛰어봤다고 15K까지는 그래도 뛸만했다. 고비는 또 그 시점을 지나갈 때부터였다. 아직도 6킬로를 더 가야 한다니. 하프마라톤이 20K가 아니고 21K라니 왜 이렇게 많이 남았나 싶다.


그때 우연히 나보다 10살에서 15살 정도는 더 많아 보이는 두 중년 여성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부러 접근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들의 페이스가 나의 페이스와 비슷해서 귀에 들리는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되었다.


내가 엿들은 내용인즉슨,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서 썼던 영정사진을, 아빠 제사를 지낼 때마다 올려두어 왔고, 또 평상시 집에도 계속 그 액자를 올려두고 있는데 요새 엄마가 편찮으신 것이 혹시 아빠가 엄마를 계속 데려가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닐까 고민을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엄마가 좀 있어야 되거든요.... 내가 결혼을 안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계셔야... 사람들이 나를 좀 무시하거나 막 대하지 못하는 거 같더라고요... 뛰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빠네도 그렇고 어느 순간 아빠 산소 가는데도 나한테는 연락도 없이 쏙 빼놓고 가고... 어쨌든 내 위치가 그래도 어느 정도 있으려면 엄마가 계셔야 하는데...'


이런 흥미를 끄는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뛰다 보니 발은 뛰고 있는데 정신은 팔려있어서 덕분에 1km는 또 쉬이 지나간 것 같다. 정신을 가끔씩 팔아주는 게 나에게는 오래 뛰어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엿듣던 이야기가 더 이상 내 페이스와 맞지 않아서 지나가도 그 이야기로 인해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도 엄마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는데. 물론 우리 엄마는 건강하고 어디 가면 내 언니로 볼만큼 아직 아주 젊지만. 그런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는 게 나는 내 사회적 위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엄마가 좋고 엄마를 사랑하고 늘 내편이니까 오래오래 엄마가 있어야 되는데. 그런데 저분은 나이가 꽤 있고 그분의 어머니라면 정말 나이가 있으실 텐데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인 고령인 엄마라도 그 딸에게 사회적인 위치를 잡아줄 정도의 영향력을 준 어머니라면 딸한테 대단히 정서적으로 도움을 준 엄마인 걸까... 아니면 성인으로서 독립된 정서를 함양하지 못하고 단지 본인의 위치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지 않으시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키워냈다면 그 엄마는 오히려 딸에게 도움을 못 준 걸까... 저분은 엄마를 사랑하는 게 맞나? 아니면 그저 본인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걸까? 그렇지만 그것도 어떤 의미로는 사랑인 걸까? 나는 나의 아들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되는 건가...'


답 없는 상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덕에 또 1킬로 훌쩍 지나가준다.


 




10k 대회들에서는 못 보던 간식존이 15k 지점에 마련되어 있었다. 메뉴는 바나나 반쪽과 초코파이였다. 나의 달리기 선배가 '대회에서 주는 건 무조건 다 먹어주라'는 특명을 받았기에 (원래는 바나나를 안 좋아하지만) 우선 먹기 쉬운 바나나 반쪽은 해치웠다. 그런데 나는 이미 14k 지점에서 아미노젤을 아주 야무지게 씹어먹은 터였다. 전혀 배도 안 고프고 목도 안 마르고 그저 좀 힘들 뿐, 내 안의 에너지가 부족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내 눈앞의 초코파이를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한 손에 들고 조금씩 먹으면서 달리기를 이어 나갔다.


달리기를 할 때 좋은 점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맛있는 것을 와구와구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소의 나라면 신나게 먹어 치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리는 내내 7k마다 젤도 먹어주고, 물과 포카리를 줄 때마다 열심히 마셔두고, 바나나도 반쪽 먹으니 이거 원 초코파이가 잘 안 먹혔다.


그래도 쉽사리 내 손에서 초코파이를 놓칠 수는 없어서 한 손에는 초코파이, 다른 한 손에는 빈손으로 열심히 팔 치기를 하며 달려 나갔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뛴다는 게 힘들어서 애플워치까지 사놓고 한 손에 초코파이 들고 계속 뛰는 게 맞나... 고민했지만 16k쯤 지나면서 이미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이 딱 맞았다. 생각 없이 오른손에 초코파이를 들고 뛰다 눈이 안 달린 내 왼손이 잘 보지를 못하고 오른손을 쳐서 순식간에 초코파이가 데굴데굴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내 초코파이...


 




그 다음엔 그냥 숫자세기 권법뿐이었다. 한걸음마다 1미터로 숫자를 올려 세었고 그 덕분에 겨우겨우 20km까지는 갔다. 남은 1km는 몸을 데굴데굴 굴려서라도 간다. 어쨌는 골인 지점이 보이겠지 하고 끝이 어디냐 어니냐 하고 간다. 그런데 정말 이 대회 마지막 코스가 극악무도하다. 아니 죽기 직전인 사람들한테 너무 심한 언덕배기를 넣어놨다. 정말 여기가 최선인가요… ㅠㅠ 마음속으로 코스 짠 사람을 욕하고 원망하며 끝내 Finish 라인으로 들어왔다.


나의 찻 하프 도전기




다 뛰고 까칠이 친구가 축하하며 소감을 물아본다. 내 다리 아작 났다. 너무 힘들었다. 정말 하프도 겨우 뛰었고 풀 코스는 죽어도 못 뛰겠다. 푸념 어린 소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나의 친구 까칠이가 바로 “야 너는 풀은 당연히 안되지!! “ 란다.


아…

이렇게 또 나를 자극하다니. 나 정말 자신 없는데. 근데 또 나에게 넌 절대 안 된다고 하면… 또 내가 뛰어버리고 싶어 지잖아…


나 정말 풀코스는 아예 자신이 없는데.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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