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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장 내용이 짧아지면 어린이집에 간식을 돌려

연장반 아기라서 괜히 더 맘 졸이는 나

by 이지



매일 오후 3시, 맥세이프 충전기에 올려둔 아이폰에 익숙한 어플 모양의 알림이 하나 뜬다. 바로 어린이집에서 보낸 ‘오늘의 알림장’. 9시부터 회사에서 일할 동안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냈고, 점심은 잘 먹었는지, 낮잠은 몇 시간 잤는지 등등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알림을 발견하는 순간 모든 일을 멈추고 알림장을 읽는다.


알림장 내용은 주로 오전에 활동한 활동 사진들, 그리고 그날 활동한 내용과 아이의 반응, 간식과 점심을 어떻게 먹고 잠은 몇 시간 잤는지, 응가는 했는지 등등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알림장 내용이 짧아지고 활동 사진들도 어떤 순간의 사진들만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 문단 정도였던 내용이 두 문단, 한 문단으로 줄어든다. 뭘까?


선생님이 알림장을 쓰시는 게 이제 귀찮아지신 걸까? 우리 아이가 활동을 잘 안 한 걸까? 다른 아이를 케어하느라 우리 아이를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봐주신 걸까? 왜 점심은 다 남겼을까?


알림장 내용 하나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초보엄마다. 더군다나 우리 아이는 맞벌이 부부인 부모를 둔 탓에 연장반이다. 늦게까지 있는 아이에게 항상 뭔지 모를 미안함이 가득한데 알림장 내용까지 이러면 괜히 맘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어린이집에 간식 돌리기’이다. 요즘 같은 더운 날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7잔과 커피 못 드시는 선생님 한 분을 위한 에이드가 제격. 복호두나 쿠키세트를 곁들여도 좋다. 출장으로 테라로사 근처에 간 날은 테라로사 라테팩 8개. 부지런히 카드를 긁고 양손 무겁게 하원길에 나선다.


‘어머, 어머님 이게 다 뭐예요~ 이렇게 안 사 오셔도 되는데.’ 라며 아이 손을 나에게 건네줌과 동시에 내가 준비한 간식들을 챙기시는 선생님. 선생님, 지금 매우 함박웃음 이신대 빈말 안 하셔도 됩니다. 속으로 생각하며 ‘저희 아이가 늦게까지 있는데 잘 좀 부탁드려요^^’ 하고 허리를 숙여본다.


그리고 지금까지 100%의 확률로 간식 다음날의 알림장은 내 브런치 글보다 길고 풍성하다. 선생님이 어제 내 간식이 맘에 드셨나 보다. 안도하면서 씁쓸하기도 하고 이러려고 돈벌지 싶기도 하다가 주기적으로 간식 안 나르면 우리 아기 홀대당하겠네 싶기고 하고.


유효기간은 한 달. 그래서 난 월급을 받으면 제일 가까운 날 하원길에 양손 가득 간식을 사들고 간다. 커피, 아이스크림, 쿠키, 뭐든 좋다. 다음 날 풍성한 알림장과 선생님의 하트 이모티콘, 그리고 우리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신다면야. 마음 한 구석 죄책감과 애잔함을 안고 사는 초보 워킹맘의 고군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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