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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동고양이 Oct 24. 2021

현금 천만 원의 자존감

새해 첫 계획은 현실이 되다.

오래전 가족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올해 바라는 일이나 목표가 있는지 적어 보자는 제안을 해 한 명씩 돌아가며 말을 했었다. 아이들은 어렸지만 각자 자기의 생각들을 말했고, 남편과 나는 현실적인 제안들을 냈었다. 그중에 나는 '현금 천만 원을 모을 거야!'라고 공표하고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그때의 가족들의 표정이 아직 선하다. 특히 남편의 표정은 잊을 수 없었다. 아직 어린 남자아이 둘은 그런가 보다 라는 눈빛이었지만 정작 남편의 눈빛은 '와! 대단하다.'라는 눈빛이 아니었다. 순간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어! 그걸 한다고?' 그리고 살짝 웃음 짓는 그 표정이 딱 포착되었다. 


뭐든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나를 발목 잡는 것 중 하나가 돈이었다. 낮은 자존감의 주부가 돈에서는 더 작아지는 법이니까. 그때부터 한 달에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부터 월급 외에 나오는 돈은 10원 하나라도 한 통장에 넣어가며 모았었다. 아이들 학교 가는 거리로 대출받아 아파트를 샀기에 대출금도 있는 상황이었다. 대출금과 현금을 모으는 것의 차이와 아직 돈 공부를 하던 초보이기에 대출금을 갚을지 현금으로 모을 지도 수없이 찾아보며 묻고 영상을 봐가며 나는 어디에 속하는 케이스인가를 알려고 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름의 결론은 이렇게 닿았다. 그저 모아 보자로 나의 생각은 그렇게 갔다. 모아보고 그 재미를 알고 싶고 그 결과가 생각만 해도 나에게 큰 희망과 기대를 줄 것 같아 택했다. 그렇게 시작한 그해의 천만 원 모으기는 1월, 2월, 3월, 조금씩 모였다. 이렇다 할 금액은 아니었지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자 작은 돈들이 뭉터기로 보이기 시작했고, 여름이 지나서부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마침 동생이 집을 분양받아 친정엄마께서 세금이 많을 테니 내주고 싶어 하시면서 두 딸들에게 500만 원씩을 주셨다. 물론 나는 그 500만 원을 고이 간직한 채로 있었다. 그 500만 원이 빛을 발하는 시기는 내가 모은 돈과 그 돈이 만나니 목돈이 된다는 것에 꼭 내가 다 모은 것처럼 크게 느껴지고 뿌듯할 수가 없었다. 


옛 말로 돈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많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과, 99개 갖은 사람이 하나 갖은 사람 것도 뺐는다, 그리고 100만 원이 500만 원은 어렵지만 500만 원이 천만 원, 천만 원이 5천만 원을 쉽다고 했다.

난 500만 원, 600만 원, 이 넘으면서 마음은 벌써 부자가 된 것 같았고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재밌었고 탄력 받아 엄마가 주신 그 돈을 한 군데 모았다. 꽤 큰돈이 됐다. 내가 혼자 오롯이 모은 돈으로 천만 원은 아니었지만 힘이 났고, 동기부여로는 확실했다. 


난 이어갔다. 쭉 한 통장에 이체하는 낙으로 재미를 봤다. 그 해가 넘어가던 차에 난 돈을 모은 이야기를 하며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조금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한다고 했지만 그걸 이룬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었고 확언을 쓰며 뭔가를 적고, 통장을 확인하고 한다는 것을 알기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1천만 원을 공표하고 이후 아파트 대출은행을 갈아타며 큰 결심을 했다. 보통 대출이 얼마이든 간에 30년 동안 원리금 상환으로 원금과 이자를 낸다. 난 과감히 10년으로 줄여 대출이자가 싼 다른 곳으로 옮기고 한 달에 내는 상환금액은 당연히 올라갔다. 남편은 그걸 낼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월에 은행을 갈아타고부터 난 달리기 시작했다. 이자와 상관없이 돈이 생기면 미리 상환하기 시작했다. 그저 원금 자체가 줄어드는 재미에 사이트에 접속해서 확인하는 게 낙이었다. 그렇게 난 7개월 동안 무려 1700만 원을 갚았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고 이 느낌을 얻으려 내가 달렸구나 싶고 나 자신이 대견했다.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고 얼굴을 쭉 뻗으며 의기양양했다. 


그 이후 부동산을 알게 되고 공부해보니 나의 방법이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돈이 생기는 족족 대출금을 갚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초보였고 그 돈을 갖고 있지 않고 모두 대출금을 갚았기에 그 당시에는 더 합당했다 여긴다. 아주 잘했다고 뭘 모를 때 그저 막연할 때는 모으고 갚고 가 충분한 방법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이뤘다는 것이 더 크기에.


몇 해 지나 그 집은 팔고 다음 달에 바로 청약에 당첨되는 천운도 누렸다. 이것도 그저 된 것은 아니었다. 무주택으로 집을 팔았기에 가능했고 그 당시 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그 돈 천만 원은 내가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낮은 주부로의 자존감 또한 쭉 올려주는 새해의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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