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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로 May 24. 2024

약 4개월, 이불 번데기 은둔일기

언제 나비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날들.

나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앓은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보육원 선생님들과 늘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자마자 더 이상 보육원에서 살고 싶지 않다 선전포고 했다. 수없이 말리셨지만 나는 더 이상 말을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집쟁이다.)그래서 무작정 퇴소 절차를 밟고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북적북적하던 시설과는 달리 작은 공간에 오로지 나 혼자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너무 벅찼다.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 꿈을 이루다니!

앞의 글만 읽어보자면 자취를 시작한 것이 좋다 이야기하는 거 같겠지만 사실 내 첫 자취 생활은 썩 유쾌하진 않았다.


나만의 공간이 생겨 행복한 것과 별개로 집 안에 필요한 게 모두 있으니 점점 은둔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스로가 나가길 거부하고 창문마저 암막커튼을 쳐놓으니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 나중엔 그냥 아무리 어두운 밤이어도 내가 일어나는 때가 아침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핑계 같지만 나름 이유를 더 대보자면, 새로운 시작을 위해 연고가 없는 부산으로 내려와 살다 보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 다닐 자신도 없었다. 부산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친구만 종종 만나고 대부분은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다. 혼자 보내는 시간엔 보욱우원 아이들이 많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가족처럼 커서 더 그런가? 얼굴이 머릿속에 둥둥 떠오르면 가끔 시설에 놀러 갔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그런 내가 미우셨는지.


‘그러게 왜 일찍 퇴소했어? 후회하지? 이제 자주 오지 마 여기 살기 싫다고 퇴소해 놓고 왜 자꾸 오는데?‘


하는 아픈 말들을 하셨다. 나한텐 여기가 집인데, 보기 싫으니 오지 말라는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제 어디에 기대야 하는 거지? 그날을 기점으로 우울증은 나날이 심해젔고, 하루에 꼴랑 7걸음(화장실 한 번 다녀온 정도) 걷고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날도 늘었다. 안 그래도 힘들던 시기에 공황빌직까지 불숙 생겨 힘든 마음에 더 움직여야 할 이유, 그러니까 나갈 필요를 못 느꼈던 거 같다.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사실을 누가 아는 것도 아닌데 괜히 위축되었다. 


낮밤을 구분하지 않고 약 4개월을 살았다. 먹고 움직이지 않으니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기도 했다. 그냥 문득 이렇게 살면 망하거나 고독사 하겠다 싶어서 일상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식물을 많이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무기력한 은둔생활에서 벗어나야겠다 다짐하며 베타 물고기 한 마리를 데려왔다. 이름은 ‘반디’였는데 정말 사랑스러웠다. 내 밥을 먹기 전에 물고기 밥부터 챙기고, 내 일을 하기 전에 어항 물부터 갈아주었다. 어항 앞에 앉아 말을 건네는 날이 많아졌다. 내가 가까이 가면 와서 쳐다보는 게 너무 귀여웠다. 이 공간에 나 외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게 내게 조금은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헤엄치는 반디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따뜻했다


그리고 혼란한 시절을 함께 해준 반디를 팔에 타투로 새겨 넣었다. 잊지 않으려고.


사랑하는 반디야 용궁에서 잘 지내지?


다시 은둔 생활 이야기를 꺼내보자면, 고립되어있다 보니 나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가치관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생각한다. 사실 보육원 퇴소할 때 내 인생이 망할 거라 장담하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말이 꼬리표처럼 나를 괴롭게 할 때면 또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선택이 옳았을까?
정말 인생이 망하면 어떡하지

지금으로선 내 가치관을 정리하는 귀한 시간이라 추억하지만, 그때엔 그냥 내가 정신이 이상해서 선택에 대한 후회를 끊임없이 하곤 했다. 그래도 그때의 선택이 최선이었겠지. 위안 삼는다. 꼬리표 역시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다.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구나. 과거의 나라면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을 텐데 현재는 좀 더 확실해진 가치관을 거쳐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에 감사하다.




은둔하는 동안 이불을 둘둘 말고 누워있으면 내가 애벌레가 되어 번데기에 쏙 들어가 있는 것이란 상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번데기라면 언젠가 나비가 될 텐데. 과연 내가 우울함에서 벗어난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너무 어렵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나비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스무 살의 나는 서투르고 더 나아지는 방법을 몰랐다. 껍질을 훌훌 벗고 날아가는 나비가 되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나비로 성장시켜 줄 일이 생기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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