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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로 Jun 01. 2024

번데기는 당연히 나비가 될 줄 알았지.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었는데 중간에 좋은 기회로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칩거하고자 하는 본능은 떨쳐지지 않았다. 밤마다 공황발작이 찾아왔고 깊은 우울감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적이 수두룩했다. 분명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는데 오히려 자꾸 안으로 숨고 싶었다. 내가 달팽이었다면 그냥 외면할 있었을 텐데 웃긴 상상도 했고.


한동안 안 나가던 교회에 나가면서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늘어나게 되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내 우울감과 불안이 조금은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을 보고 있자면 다들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일이든 공부든 책임감 있게 해내는 것이 신기했다. 각자가 모두 빛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는 같은데,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조급함이 느껴졌다. 다들 달리고 있는데 나만 우두커니 서있는 느낌. 나는 언제쯤 저렇게 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무기력과 우울함이 나를 뒤덮었다. 비교를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더라. 친구들은 내가 인턴 일을 시작한 뒤로 멋지다고 칭찬해 줬지만 사실 잘 모르겠더라.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했다. 좋은 사람이나 멋진 사람이 되려고 무능한 나를 숨기면서 살았다.


교회를 다니고 인턴 일을 하며 억지로 밖으로 끄잡혀 나오게 되니 사실 우울함은 조금 사라졌다. 그러나 한 가지 남은 게 있었다. 공황발작.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회사는 1시간 거리에 있었고 어쩔 수 없이 꼭 타야 하는 이동수단이었는데 아침부터 온 진을 빼고 나니 일을 기쁘게 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첫 사회생활을 하던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불안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단순히 우울함을 넘어 죽어야겠다. 따라가야겠다. 그런 생각들에 휩싸였다. 결국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되면서 주치의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 나는 나에 대한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해나가면 되는데 처음부터 높은 목표를 잡으니 계속해서 힘들어하는 거 같다 말씀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행동을 고쳐야겠다 생각했다. 드디어 번데기를 조금씩 벗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번데기였다. 사실 번데기 안이 아늑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둘러싼 번데기 껍질이 안전하다고 느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번데기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찢어낼 수 있었다.


해외 아웃리치(단기선교)를 다녀오게 되었는데 몽골 땅에서 마주한 풍경과 사람들은 (각자 그들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너무 아름답고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할까?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했다. 몽골에 다녀온 뒤로 그 땅의 아이들과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팀원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서툰 영어로 연락을 주더라.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보고 싶다 말해주는 아이들을 보며 아무런 목표가 없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때 선교사님의 삶이 궁금해졌다. 따로 여쭤보기도 하고 아이들과 계속 연락하며 조금씩 우울함에서 벗어나는 거 같았다. (물론 여행 중 만난 들판과 대비되게 빌딩이 바글바글 밀집해 있는 서울로 돌아왔을 땐 조금 힘들었지만) 적어도 몇 달 많으면 몇 년을 몽골에서의 기억으로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은 자신감을 얻어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노력하려고 했는데, 또 한 번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다 찢고 나오지도 못한 번데기를 밖이 무서워서 다시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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