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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로 Jun 07. 2024

미워하는 것도 힘들더라

내게 있어서 미움이란 무엇인가? 

항상 아빠를 미워했다. 친구들의 아버지를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우리 아빠도 저렇게 다정하게 말했더라면,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줬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까지 우울하지 않았을 텐데.


교회에 수련회에서 가장 많이 기도했던 것은 '아빠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였다.


미워하는 감정도 계속 안고 있으면 내가 지치더라. 신경도 안 쓰던 사람이었으면 굳이 미운 마음도 안 들었을 텐데 나는 아빠가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끊었던 연락을 다시금 해볼까 고민하고 있던 시기 었는데 도무지 아빠에게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다시 힘들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과 못된 아빠의 행동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게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계속 기도만 했던 거 같다. 


한동안 나의 기도제목은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점점 아빠에서 한정된 게 아닌 나를 왕따 시켰던 친구도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좀 덜 힘들 텐데.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연락을 드려볼까 고민하던 시기에 아빠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셨다. 너무 허무했고, 아빠의 유서에 적힌 첫째 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은 나를 무너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연락드렸다면 지금쯤 아빠는 살아있을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아빠의 죽음이 원래 나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빠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거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빠가 죽는 게 아니라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아빠를 묻어준 후 다시 일상에 복귀했을 때 나는 심한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회사 점심시간마다 나가지 않고 창고에서 울었다.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연락했어야 했는데...


그러다 문득 멀리 떠나보내고 나서야 내가 아빠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아빠를 사랑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그렇게나 많이 했는데, 사람의 때와 하나님의 때는 다르다고 듣긴 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거 아닌가? 기도의 응답이 이런 쓰라림과 고통이라니. 매일매일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아빠가 떠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고통도 무뎌지긴 하더라. 사람이 죽었는데 점점 무뎌지는 감정이 역겨웠다. 그리고 유서를 두고두고 읽으며 아빠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아빠와의 연락을 막아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길 원하시는 주님이니 최선의 방법으로 내게 사랑을 알려주신 게 아닐까? 내가 아빠와 진작 연락했었다면 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모든 원망과 외로움을 딸이라는 이유로 껴안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원망스러운 마음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미워하는 마음은 그 대상을 사랑하고 애정한 적이 있어야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워하기는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쓰게 하고, 상대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상처 내게 만들곤 한다. 그럼에도 계속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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