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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Oct 22. 2024

31. 죽어도 내돈은 가져가는 세상

죽어야 사는 여자

‘포에버월드’ 규제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 (2차)


[토론자 명단]

김한영 : 행정안전부 장관

주인호 : 모털 컴퍼니 한국 지사장

유원재 : 한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성애란 : 참시민 연합회 사무처장


4명의 토론자는 단상 위에 방청석을 향해 만들어진 반원형 테이블 앞에 앉아있었다. 500석 규모의 방청석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고, 맨 앞줄에는 기자들이 노트북을 펴고 앉아 토론자들의 발언을 정리하고 있다.


유원재 교수 : 포에버월드를 서비스라고 하셨는데, 그게 만약 서비스라면 누구를 위한 서비스입니까? 거주민입니까? 보호자입니까?

 

주인호 지사장 : 둘 다입니다. 거주민에게는 이승에서 다 못 이룬 것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버릴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고, 보호자에게는 거주민을 좀 더 기억하고 추모할 시간을 주는 것이죠. 이보다 훌륭한 서비스가 어디 있습니까?


유원재 교수 : 그건 둘 다, 사망자의 의식이라고 주장하는 그것이 영혼이라고 가정할 때 이야기죠. 제가 볼 때는 그것이 진짜 영혼이라 가정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은데요. 영혼을 한정된 공간에 가둬두고 동물원처럼 구경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지난번 버츄얼 참관 기억하시죠? 기본계약을 맺은 거주민의 활동 공간은 겨우 여의도 정도 크기입니다. 그들의 일상을 보셨습니까? 밥 먹고 산책하고 영화보고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그게 답니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는 철저히 분리돼 있습니다. 실제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 좁은 세상에 갇혀서 계약기간동안 사육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주인호 지사장 : 사육이라니, 말씀이 너무 심합니다. 


김한영 장관 : 유교수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너무 지나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정부 입장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근 들어 포에버월드와 관련된 사건사고와 민원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민원이 비용문제인데, 고가의 비용 때문에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뉴스 보셨으면 알겠지만 최근에는 시한부 환자가 사후 포에버월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일도 있었습니다. 


성애란 처장 : 저희 소비자단체 입장에서는 요즘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소송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많은 소송이 자녀의 유산상속권과 관련된 소송입니다. 다시 말해 부모가 남은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자신들의 포에버월드 전송 비용으로 쓰기 때문에 자녀들이 반발하는 건데요, 의식전송 금지에 대한 가처분 소송이 하루에만도 수천 건이 넘습니다.


김한영 장관 : 네, 정부도 소송비용이 너무 커서 그 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입니다.


주인호 지사장 : 사실 전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부모가 죽기 전에 본인의 재산권을 어디에 사용하든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겁니까?


성애란 처장 : 편법 때문이잖아요? 원래 대로라면 부모의 보호자는 자식인데, 의식전송에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고, 자식이 반대하니까 부모들이 제3자를 보호자로 지명하고, 자식은 제3자 보호자 지명이 유산상속권을 침해한다고 소송을 내는 건데, 지사장이라는 분이 그것도 모르고 있는 건가요?


김한영 장관 : 잠시만요. 오늘 이 자리는 이런 걸 논쟁하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오늘은 지난번 버츄얼 참관을 토대로 포에버월드 거주민들을 정부가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자는 자리입니다. 먼저 제 생각부터 말씀 드리자면, 포에버월드 거주민들은 우리와 똑같이 사고하는 인격체로 봐야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원재 교수 : 저는 반대합니다. 저는 그보다 포에버월드는 디지털기술을 앞세운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인권이란, 정신과 육체 그 중 하나만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에버월드 거주민의 육체는 ‘코어 뉴런’이라는 신경세포 몇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두고 어떻게 인간의 육체라고 하겠습니까? 컴퓨터 안에 저장된 고인의 기억이 생전 기억과 일치한다고 해서 그것을 어떻게 인간이라 생각하고 인권을 논하겠습니까? 저는 포에버월드 서비스의 전면적인 중단을 건의하고 싶습니다.


성애란 처장 : 시민단체 입장에서 나라 경제를 걱정할 처지는 아니라는 것 아는데요. 그래도 상속이라는 제도를 통해 시민들이 사회안전망이 유지되는 측면이 있는데 포에버월드가 상용화되고 나서부터 상속이 이뤄지지 않고 경제적 여유자금이 대부분 모털 컴퍼니로 편중되는 점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속된 말로 산 사람, 살아야 하는데 죽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돈을 쓰다 보니 산 사람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주인호 지사장 : 여기서는 저만 나쁜 놈이 되는 것 같은데요.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여기 나오신 패널 여러분들은 내일 죽게 된다면 포에버월드에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끝내시겠습니까? 솔직하게 답변해 주세요. 참고로 저는 포에버월드에 갈 겁니다. 이미 신탁 대리인을 통해 준비도 하고 있구요. 죽기 싫은 거 여러분도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생을 연장할 수 있다는데 그게 컴퓨터 속이면 어떻습니까?


주인호의 마지막 발언이 끝나자 패널들은 모두 당황했다. 게다가 방청석도 웅성거렸다. 자신만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 아닌가? 더 살 수 있는데 죽고 싶은 사람 누가 있나? 내 돈 자식들 주는 대신 내 생명 연장하는데 쓰겠다는데 누가 왈가왈부하나? 


방청석에 앉아있던 지현우는 일어났다. 박지나와 약속시간이 가까워졌다. 박지나는 박장우에게 전부 말할 것이었다. 그가 만나고 있던 윤지호가 실은 아들 박민혁이 보낸 여자라는 사실을. 물론 지호는 아무것도 몰랐겠지만.


걱정됐다. 사실을 알게 된 박장우가 지호를 압박하고 몰아붙이면 어쩌나, 그래서 박지나를 박장우와 연결시키지 말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박지나는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통하지 않고도 박장우와 면회할 수 있고 그럴 바에는 자신이 옆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지호에게 미리 알려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박장우는 절망적 심정으로 술 마시고 있었다. 그래봐야 알코올 흉내를 내는 디지털코드를 의식에 주입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 외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윤지호가 자신을 피하는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새로 사귄 이웃남자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말도 없이 이럴 리는 없고, 혹시 자신의 원래 나이와 정체를 알아버린 걸까? 예전에 자신을 알던 어떤 사람이 귀띔이라도 해 준 걸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절대 알아서 안 되는 비밀이기도 하고.


술 마시고 휘청거리며 초조하게 거실을 오가다가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콜센터 전화기 알림창을 봤다. 


::: 자녀 박지나씨로부터 아웃라인 면회 요청이 있습니다. 응하시겠습니까?


살아있을 때는 꽤 친하게 지냈지만 죽고 나서는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포에버월드의 이런저런 민원을 해결하는 데에는 아들 박민혁이면 충분했고 그러라고 더 많은 유산을 상속했다. 더구나 박지나는 끝까지 박장우의 포에버월드 의식전송을 반대했다. 


=아빠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세요? 거기는 어떠세요?


박장우가 해외여행쯤 가있는 것처럼 말한다. 


“니가 무슨 일이냐?”

=어머, 아빠. 젊어지셨다더니 목소리도 젊어진 거에요? 그런데 이거 원래 얼굴은 안 보이는 거에요?


박장우는 화상연결에는 반대했다. 굳이 딸자식에게 젊어진 얼굴을 보여주고 주책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 시답지 않은 소리나 할 거면 그만 하자. 너하고는 할 말 없다.”


다른 때였다면 오랜만에 듣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반가웠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더구나 몇 년만에 연락한 것이라면 이유는 뻔했다. 돈, 죽으나 사나 돈!


=아니에요. 아빠가 꼭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 연락한 거에요. 오빠가 말이에요.

“민혁이가 뭐? 니들끼리 싸웠으면 니들끼리 해결해라. 난 이제 그 세상 사람 아니다.”


=그게 아니고, 오빠가 지금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죠?

“걔가 뭘 꾸미든 나하고는 상관없다. 끊자.”


애써 취하게 만든 가짜 술기운도 달아나려한다. 박장우는 소파에 누워 좀 더 비참해지고 싶었다. 자기연민에 취하고 절망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싸구려 감정 소모였다.


=혹시 윤지호라는 여자가 아빠한테 접근했어요?


가짜 술이 확 깬다. 


“니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지?”

=아빠, 알아요? 벌써 만났어요? 와, 그 여자 행동력 끝내주네.

“지호씨를 어떻게 아냐니까?”


박장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박지나가 윤지호를 알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빠 그 여자한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죠?

“뭘 말해? 뭘 말이야?”


박장우는 흥분했다.


=아빠 스위스은행 계좌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 여자, 오빠가 보낸 스파이에요. 아빠 재산을 가로채려는 여자. 제 말 듣고 있어요?


박장우의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무슨 맥락없는 헛소리인가? 박민혁이 윤지호를 보내다니.


“누가 그딴 소리를 해? 니가 윤지호를 어떻게 아는 지나 말해!”

=윤지호가 죽을 때 의식전송 비용을 오빠가 내고 대신 그 여자는 아빠의 스위스은행 계좌를 알아내기로 한 거라니까요...


그 순간, ‘지직’ 수신음이 끊기는 소리가 나더니 지현우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닙니다. 지호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 약속은 저와 박민혁 사장이 한 약속입니다.

=아, 진짜. 여기서 지현우 당신이 왜 끼어들어? 당장 안 끊어?


박지나의 화난 목소리가 들린다. 


“뭣들 하는 거야? 지팀장은 그게 또 무슨 소리야?”

=아빠, 내가 말할 게요. 지현우씨 얼른 끊고 나가요! 경고에요. 


=제 말이 맞습니다. 지호는 절대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박민혁 사장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계약해지한다고 했는데도 거절했습니다.


=지현우씨, 당신 내가 가만히 둘 것 같아? 이게 뭐하는 짓이야?

“박지나! 너나 조용히 해. 난 지현우 팀장하고 얘기하겠다.”


=아빠, 내 말을 들어야 해요. 이 인간은 지 여자친구를 팔아먹은, 오빠나 똑같은 인간이라구요!

“박지나, 당장 안 빠져? 니가 안 나가면 내가 끊겠다. 너하고는 할 말 없어! 넌 아빠가 포에버월드 들어오는 것도 반대했잖아!”


=그건 아빠. 난 아빠가 이런 이상한 컴퓨터 속에 들어가는 게 싫어서 그랬죠.

“듣기 싫다. 니 말대로 난 이런 이상한 컴퓨터 속에 있으니 니 아빠도 아니고 니 말 듣고 싶지도 않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박지나가 아웃라인 통화에서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현우 팀장, 이제 무슨 일인지 처음부터 자세하게 말해봐. 솔직하게.”


박장우가 박지나 대신 지현우를 선택한 건 잘한 일이었다. 지현우는 착잡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모든 것을 털어놨다. 그리고 박장우는 알게 됐다. 왜 윤지호가 갑자기 자신을 피하는지, 왜 문을 걸어 잠그고 안 열어주는지. 


지현우와 아웃라인 연결을 끊고 나서 박장우는 미칠 것 같았다. 이런 일을 꾸민 박민혁에 대한 분노보다도 어떻게 해야 윤지호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얼굴 보고 얘기를 할 수 있어야 뭐라도 풀게 아닌가? 그녀는 완전히 닫았는데 어떻게?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지현우는 지호가 너무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한번이라도. 그러나 지호는 그날 이후 아웃라인 통화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녀 쪽에서 거절하는 이상 그녀를 볼 가능성이라도 있는 마지막 방법은 버츄얼 연결뿐이었다. 


버츄얼 연결은 포에버월드에 전송될 사람이 실제 의식전송 전에 포에버월드를 사전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장치였다. 버츄얼룸에서 VR장비를 착용하고 포에버월드로 진입하면 제한된 구역에서 이동과 관찰이 가능하다. 그러나 VR장비 사용자는 포에버월드 안에서 이동속도가 느려 거주민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고 상호 소통도 불가능했다. 심지어 거주민들은 VR장비를 착용한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  


박장우의 말대로 지호가 집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좌표를 윤지호의 집으로 설정하고 진입하는 게 가능했다. 버츄얼 연결 자체는 포에버월드 내에서 유령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벽을 뚫고 갈 수도 있고 집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물론 프라이버시 규정위반이며 적발될 경우 중징계를 받게 된다. 현우는 중징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버츄얼 연결개시 

::연결중

::연결완료

::동작개시


현우가 눈을 뜨자 지호의 집 거실이었다. 의식전송 전에 지현우가 직접 고른 집이었다. 모니터로만 봤던 지호의 집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좌우를 돌아보려 하니 랙 걸린 게임화면처럼 시각이 천천히 움직였다. 걸음걸이도 마찬가지였다. 한발 한발이 어찌나 더딘지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고의적으로 이렇게 느리게 만든 것이었다. 거주민의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명분이 있었다지만 시스템을 이렇게까지 만든 이유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호가 집에 있다면 작업실에 있을 것이다. 현우는 숨을 크게 쉬며 조금씩 그녀의 작업실에 가까이 갔다. 작업실 문은 열려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넓게 터진 유리창이었다. 시각처리가 느려서 슬로우 화면처럼 보였다. 유리창 밖으로 코발트빛 강이 흘렀다. 강의 흐름마저 느렸다. 강 위에 하늘, 하늘 위에 구름. 


지호가 있는지 보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녀의 머리카락, 하얀 뒷목, 약간 굽은 등이 차례로 보였다. 윤지호였다. 그녀는 있었다. 현우는 오랫만에 보는 지호의 뒷모습만으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조금 더 가까이 걸었다. 이제 손을 뻗으면 그녀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호는 당연히 현우가 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노트북 화면에 집중한 채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그럼 약속한 거다. 지금은 아니고 먼 훗날, 어쩌면 가까운 날일 수도 있고."


더 가까이, 앞으로 돌아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노트북 화면을 보는 줄 알았던 그녀의 눈동자는 꿈꾸는 것 같았다. 표정은 평화롭고 입술은 살짝 열려있었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리드미컬하게 키보드 위를 춤추며 화면 위에 새로운 문장을 찍어내고 있었다.


“시간은 태양이 높이 뜬 오후 3시쯤, 한적한 공원 벤치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어. 그녀의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바람에 낮게 날리고 그녀는 행복한 표정을 짓겠지. 그때야. 그때 날 죽여줘.”


그녀의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머리일까, 가슴일까. 지호에게 남아있는 몸은 신경세포 몇 조각에 불과하다. 데이터필드에 저장된 그녀의 메모리? 그것도 아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정녕 영혼이라도 있다는 말일까?


여전히 지호는 현우가 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현우는 이곳에서 유령에 불과하다. 산 자가 유령이고 죽은 자는 소설을 쓴다. 


이제 현우는 지호를 마주 보고 있었다. 현우의 시각에서 지호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소설을 쓰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 둘의 얼굴이 거의 붙었다. 코가 닿을 것 같다. 

‘이토록 가까이 있는데, 이토록’


그래도 없다. 현우에게 있는 지호가, 그 지호에게 현우는 없다. 슬프다. 한없이 슬프다. 그의 슬픔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머리에서? 가슴에서? 눈물은 눈에서 나온다. 


현우는 손으로 지호의 얼굴을 만졌다. 그의 손이 그녀의 얼굴에 닿는 모습이 보이지만 느낄 수는 없다. 눈을 감는다. 과거 그녀의 얼굴을 만졌던 느낌을 기억해낸다. 


“현우?”


착각? 착각이 아니다. 윤지호는 분명한 발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알 수 없을 텐데’


“현우 맞지? 여기 있어?”


지호가 소설을 쓰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소설을 쓰다 얼마 만에 의자에서 일어섰는지 몰랐다. 하루인지, 이틀인지, 아니면 일주일이 지났을 수도 있다. 시간은 더이상 그녀에게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았으니까. 


윤지호는 현우가 함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야? 현우야 어딨어?”


지현우는 자신을 찾는 윤지호를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내 말 들려? 내 말 들리지?”


현우는 끄덕였지만 지호가 그를 보지 못하는 건 확실했다. 지호는 조금 더 찾아보다가 가만히 한곳을 응시했다. 현우가 그쪽으로 움직여 그녀를 마주 보는 위치에 섰다. 이제 둘은 마주보고 있다.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할게.”


현우는 끄덕였다.


“미안해. 니 마음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아. 늦었지만.”


지호의 감사인사를 받으니 현우는 가슴이 찡해 왔다. 가슴이 아픈 것도 너무 늦었다.


“진짜 내 걱정은 하지마. 난 앞으로 나아갈 거니까, 너도 뒤돌아보지 말고 이제 앞으로 가. 그래야 해.”


지호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는 것처럼 보였다. 현우는 지호에게 다가가서 천천히 입을 맞췄다. 전혀 느낄 수 없겠지만 지호도 그걸 아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유령 같은 키스가 끝났다. 


“그럼 이제 진짜 안녕. 잘 가.”


드디어 진짜 이별이었다.


::버츄얼 연결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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