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달 May 14. 2022

잡고만 있어도 괜찮아.

시한부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7>

 3개월이었다. 루비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이 강아지와 마지막을 함께 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난겨울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고 당시 루비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으면 다리가 풀리고 털썩하고 쓰러진다. 심지어 먹어야 할 약의 양은 또 얼마나 많은지... 꿀을 함께 섞어서 입천장 위에 발라주면 어쩔 수 없이 먹긴 하는데, 먹고 나서는 침을 계속해서 흘린다. 거실 바닥 흘리고 지나간 약을 닦는 것이 내 아침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무사히 겨울을 넘겼고 봄이 찾아오자 루비도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루비 생일 기념사진

 지난 4월, 루비는 맞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11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하루 3번 꼬박 먹는 약도 이제는 요령이 생겨 맛있는 과일과 함께 꿀떡꿀떡 잘 넘긴다. 루비도 요령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하루 세 번 무수한 실험(?)으로 인해 현재로선 최적의 방법을 찾아냈다. 

1. 가루약을 캡슐에 넣는다.
2. 고구마를 얇게 펴서 캡슐을 감싼다.
3. 좋아하는 과일 (파인애플, 딸기) 등을 얇게 펴서 감싼다. 
4. 알아서 잘 먹는다?

 과일을 약과 함께 먹인다는 것에서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알레르기나 부작용은 없었다. 오히려 약을 뱉어내거나 흘리는 게 더 좋지 않았다. 평생을 먹어야 하는 약이기에 조금이라도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했으니까. 주사기를 통해 강급하는 방법, 올리고당 등으로 뭉쳐서 먹이는 방법, 좋아하는 음식에 뿌려주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지만 이 녀석은 눈치가 무척이나 빨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냄새가 나면 먹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과일이었고 현재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가루약을 다시 약 먹는 시간은 더 이상 루비에게 입 안으로 사람의 거친 손과 함께 약이 들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달콤한 향이 나는 맛있는 파인애플과 함께 정체모를(?) 무언가를 함께 삼키는 시간이 되었다. 

루비의 하루치 심장약이다.


 최근 한 달까지만 하더라도 외출하고 돌아오면 심한 흥분의 끝엔 비틀거림. 그리고 일시적인 기절이 몇 번 찾아왔다. 심지어 약효가 떨어져서 가장 위험한 순간. 약 먹기 직전에도 쓰러지곤 했다. 쓰러진 다음날 부랴부랴 병원으로 찾아가 상담을 했다. 현관문 밖만 나서면 흥분을 하는 탓에 차마 데리고 가진 못했다. 강심제를 늘리는 처방을 받았더니 웬걸.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튼튼해지는 루비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좀 살만한지 심심하다고, 놀아달라고 졸라댄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는 요즘.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다. 정말 오랜만에 루비와 바깥바람을 쐬고 왔다. 병원을 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외출이 아닌 산책. 여름의 싱그러운 풀 내음도 맡고 '여긴 내 구역이야' 하고 마킹도 좀 하라고. 목줄을 매고 달리는 건 조금 힘들어서 아파트 입구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화단에 조심스레 루비를 내려놓는다. 루비는 예전처럼 뛰쳐나가지 않는다. 자신도 힘든지 아니면 요령이 생긴 건지 무리하지 않는 방법을 나와 함께 배워가는 것 같다. 작은 나무 기둥에 마킹. 총총총. 그리고 다시 냄새를 한창 맡다가 마킹. 동물, 개로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나는 이 현상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풀밭을 벗어나려고 하면 하나밖에 없는 통로를 틀어막는다. 당황하는 루비. 그렇게 잠깐의 외출이 끝나고 슬슬 지치는 기색이 보이면 나는 루비를 다시 들어 안는다. 10분 정도의 짧은 외출이지만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몇 개월 만의 야외 마킹


 비록 심장은 계속해서 나빠지겠지만 루비가 살고 싶다는 의지가 지속되는 한 나 또한 방법을 찾아가지 않을까 싶다. 요즘 들어 맛있는 걸 달라고 칭얼거리는 것도 늘었다. 고마워 루비야. 끝까지 함께 행복하게 살아보자. 놓지 않을게. 


이전 09화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