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달 Jun 01. 2022

요즘, 날씨가 참 좋네. 그럼 만날까?

시한부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8>

 따뜻한 봄날, 오랜만에 루비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인지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간다. 병원까지는 차로 약 20분 정도. 별도로 예약을 하는 병원이 아니다 보니 가기 전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본다. 다행히도 담당 선생님은 계시고 현재까지 대기 인원은 없다.

 눈치 하나는 동네 강아지들 중에서 탑을 자랑하는 녀석이라 집사람과 나 동시에 옷을 갈아입는 것만 봐도 낌새를 눈치챘다. 빨라지는 호흡... 큰일이다. 또 흥분하기 시작했다. 기왕 눈치챈 것 서두른다. 집 바로 앞에 차를 대기시켜 놓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차를 탄다. 조금 짖으려는 느낌이 들면 준비해 둔 간식으로 1분 정도는 조용히 시킬 수 있다. 병원 입구를 들어서기도 전에 짖어대는 녀석 때문에 이제는 병원의 테크니션 분들도 루비가 오는 줄 알고 있다. 말하기도 전에 대기표에 루비 이름이 올라가 있다..


 이번 검사는 초음파, 혈액, 엑스레이 크게 3종류. 초음파를 통해서는 심장의 혈류량과 판막의 상태 등을 체크할 수 있으며 엑스레이는 전체적인 심장의 크기 및 기도, 폐수종 여부. 그리고 혈액 검사로는 BUN, Creatine 등 복용하는 약에 의해 영향을 받는 신장의 수치를 측정한다.

 아무래도 검사 시간이 좀 있다 보니 병원에서 외출을 해도 괜찮다고 한다. 검사가 끝나면 따로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평일 낮 시간. 집사람과 오래간만에 가져보는 마음 편한 외출 시간이다. 근처 공원을 걷다가 이른 점심도 먹는다. 점심에 커피까지 풀 코스를 먹고 나니 전화가 온다.

마음 편히 둘이서 평일 낮 산책. 겨울 이후 처음이다.


루비 검사 끝났어요. 데리러 오시면 됩니다.


 무사히 검사가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밀려오는 검사 결과에 대한 불안함은 어쩔 수 없다. 더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 병원에 도착하니 말끔한 얼굴의 루비가 우리를 맞이해 준다. 오늘은 크게 긴장하고 바둥거리지 않아서 얼굴 쪽 세수도 하고 지저분한 털은 다듬어 주셨다고 한다. 얘가 웬일이래. 이제 검사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로. 두근거리며 들어갔던 진료실. 주치의의 첫마디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좌) 검사 전 찌지붕 루비. (우) 검사 후 말끔 든든 젠틀 루비


지난번보다 오히려 신장 수치가 훨씬 나아졌어요.


 어........ 사실 생각하지 못했지만 너무 기뻤다. 독한 약을 매일 같이 먹었는데 오히려 그걸 버텨내고 있다니. 지난번 쇼크 이후 늘린 강심제가 잘 맞나 보다. 심장이 튼튼해지면서 다른 장기들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버텨주고 있어요. 심장의 크기도 크게 변화 없이 잘 유지되고 있고 이상이 없습니다.

 

심장병 때문에 병원을 다닌 지 약 2년 만에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항상 급속도로 악화되었던 전과 달리 오히려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올해 들어서 가장 기쁜 말이었다.


 좌심방이 지난 초음파 결과 검사 때 보다 약간 줄어든 것 같아요. 이대로 적정선에서 유지만 된다면 심방이 다시 모델링이 되어 나아질 수도 있어요. 물론 정상으로 돌아가기는 힘들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것처럼 현실을 짚어주시는 주치의 선생님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니까. 심장이라는 장기는 엄연히 수명이 존재하는 장기라는 것을 이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묵직한 약봉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따라 어찌나 날씨는 맑고 화창하며 루비는 예뻐 보이던지. 루비도 덜 힘들었는지 아니면 체력이 좀 붙어서인지 오는 길에 졸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단순 혈액검사만 받고 나와도 돌아가는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곤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모처럼 바람을 느끼며 안정적으로 드라이브.
그래도 피곤했는지 집에 와서 곯아떨어졌다.




 루비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해가 쨍하고 맑은 날에는 루비도 쌩쌩하고 활기차다. 흐리고 우중충한 날에는 기운이 없다.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온습도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신생아들도 적정 습도가 있는 것처럼 강아지들에게도 쾌적하기 지내기 위한 적정 습도가 있다. 대개 40~60% 권장하는데, 나는 집을 50% 이하로 유지하려고 한다. 덕분에 작은 우리 집의 제습기와 에어컨은 거의 향시 돌아가고 있다. 상태가 좋은 날은 20~23 사이의 습도 30%,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은 습도가 50%~60% 이상. 이는 단순한 기준일 뿐이지 견종  연령에 따라 많이 다를 것이다.

 심장병, 심장비대증을 앓고 있는 강아지의 경우 심장이 커지면서 호흡을 하는 기도를 압박하기 때문에 특히나 습도처럼 호흡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치에 민감하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날씨'어플을 보고 스케줄을 짜는 지경에 이르렀다.


목요일은 비가 오니까 누룽을 유치원에 맡기고..
금요일은 비 그치고 날씨가 좋을 것 같으니 오후쯤 산책을 한 번 트라이해볼까..
약속은 언제였지? 이 날 둘이서 잠깐 외출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집 사람의 근무뿐만 아니라 날씨에 따라 생활이 바뀐다. 정말 어쩌다가 있는 친구들과의 약속도 그래서 잡기는 참 어렵다. 물론 아예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시 집을 비운 시간에는 화창하고 맑아서 루비가 조금이라도 좋은 컨디션에 집에 있어주길 바란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은 날이니까 바깥에 산책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약속 전 서둘러서 잠깐이나마 루비와 함께 바람을 쐰다. 날씨가 좋은 날에 나는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 된다.

이전 10화 잡고만 있어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