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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Jul 09. 2022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까?

시한부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10> 4대 지랄견


회사에서 나 미국으로 가라는데?
응? 출장이야? 얼마나? 언제?
아무것도 안 알려 주고 그냥 발령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어. 비자부터 준비하래.
어떻게 한담... 갈 수 있겠어?


 며칠 전, 출근한 여자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국내의 다른 지역도 아니고 미국이라니... 여자 친구는 갑작스러운 발령에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당장에 갈 수도 없을뿐더러 일방적인 회사의 결정에 분노했다. 인적으로는 여자 친구의 미국행을 내심 바랬다. 지금 있는 곳이 썩 만족스럽지 않을뿐더러 짧게나마 미국에 다녀온다면 앞으로도 많은 기회가 있을 듯해서였다. 그런데 너무 갑작스러웠다. 당장의 루비의 문제도 있고 내년에는 이사도 예정되어 있었다. 이사 어떻게 미루고 정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루비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가야 하는 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통보만 받은 여자 친구는 급하게 면담을 신청했고 조정되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담에서 여자 친구는 집의 아픈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리더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했다고 한다. 고작 '강아지' 때문에 회사의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퇴사도 이랬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강아지 때문에. 하루 세 번 약을 줘야 하고 케어가 필요한 강아지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할 상황입니다.라고 말하는 나를 팀장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결정에 대해서 존중은 해 줬다. 그럴 수 있지. 뒤에 말하길, 오히려 회사의 높은 사람들에게 이를 전달하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한다. 요즘 세대들은 이런 이유로도 퇴사를 한다.라고.

 어찌어찌해서 여자 친구의 미국행은 없었던 일로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을 가고 싶어 하는 다른 동료가 있어 이 분이 가게 되었다. 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를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상황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당시 여자 친구와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 중에 가장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했고 덕분에 3개월을 선고받았던 루비는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여름, 그리고 장마가 시작되면서 치솟는 습도에도 활력을 잃지 않고 가끔은 드라이브, 산책도 나가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내가 아쉬움이 남아 여자 친구에게 스윽하고 물어본다. 만약 그때로 돌아갔어도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거냐고.


아마 그때로 돌아갔어도 지금과 똑같은 선택을 했을걸? 우리는 후회하지 않을 일을 했어.




 미국 발령 소동이 있었던 잠깐 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했다.


나 가면 혼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지금도 거의 혼자서 다 하고 있잖아.
그렇긴 한데, 강아지들보다 네가 문제지. 너 한 번씩 풀어주지 않으면 지랄 나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1~3달까지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여자 친구가 미국으로 가서 혼자 루비누룽을 케어하는 상황이라면 어찌어찌 살아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룽이는 유치원 보내고 안정적인 시간에 병원 가서 약 타오고, 가끔 활력이 좋은 날엔 잠깐 산책 다녀오고.. 하지만 말 그대로 버티는 것이었을 것이다. 사실 강아지들보다 내가 문제였다. 우리 집에는 루비, 누룽이 외에 지랄견이 한 마리 더 있었다. 슈나우저, 비글, 코카스파니엘로 대표되는 3대 지랄견. 무시무시한 활동량과 함께 이 활동량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소위 '지랄'하는 이 강아지들처럼 나 또한 그러했다. 강아지를 케어하면서 거의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기 전에도 혼자서 서울 전역을 누볐고 졸업 후에는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했다. 어디 한 군데 오래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활동적인 일을 했다. 그런 사람이 평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집 안에서 강아지를 케어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기간보다 길어지자 당장의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여갔고 가끔은 이게 드러나기도 했다. 무기력함 때로는 짜증. 그렇다고 오롯이 집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대 근무를 하는 여자 친구와 함께 일정을 맞춰 짧은 외출도 했다. 외출의 대부분이 누룽이 산책, 유치원 등원 집에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마트 등 목적성 외출이긴 했지만...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이 '임계점'에 대해 알게 되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넌지시 이야기를 꺼낸다.


나 요즘 스트레스가 쌓인 것 같아.
그래?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될까?
나 점심 약이랑 저녁 약 신경 쓰지 않고 하루를 온전히 밖에서 보내보고 싶어. 저녁에 좀 일찍 돌아올 수 도 있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날짜만 맞으면 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까지는 쉽지 않았다. 여자 친구도 사실 상 집 - 회사를 반복하는 삶이었고 교대 근무의 특성상 지정된 휴일 없이 피로는 더 많이 쌓여갔다. 그래도 얘는 돈이라도 많이 벌어오지. 나는 돈도 벌지 못하면서 집에서 징징대기만 하네.라는 앞선 생각으로 나의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사람들과의 약속'으로 만들어서 외출을 즐겼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회사를 다니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약속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내가 나갈 수 있는 날도 여자 친구의 일정과 맞아야 했기에 친구들과의 만남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날, 이러다간 내가 먼저 죽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고 고맙게도 여자 친구를 이를 이해해 주었다. 나란 사람은 적당한 외출이 에너지를 충전하고 활기를 찾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아줬다.


최근에 누룽이 유치원 하원을 하 차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는 사람들도 약간 너랑 비슷한 것 같더라. 자기만의 시간이 없다고.
그렇겠지. 그런데 그분들은 더 하겠다. 함께해야 할 '시간'이 더 길 거 아냐.
장애 아동은 요양보호사와 같은 제도 혜택도 못 받아서 온전히 가족들이 케어할 수밖에 없다더라. 그런데 내가 본 영상에서는 그래서 주기적으로 치료받는 병원에서 그런 간병인을 짧은 시간이나마 보내준대. 잠깐이나마 볼일도 보고 숨 좀 트라고.
숨 트는 것. 중요하지. 어째 보면 자기의 삶을 온전히 바쳐야 하는 건데. 쉽지 않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감히 그분들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루비. 누룽. 산책도 하고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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