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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an 13. 2022

하루살이의 애씀

멘토링에 대한 집착

지금 와서 냉정하게 분석해 보니 그를 통해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비단 의료적 도움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의료계통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는 더 나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욕구와, 지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욕심과, 옛사랑에 대한 미련을 잘못됐다고 지적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리고 그와의 끈을 유지해 간다는 것은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나 자신을 위한 집착이기도 했다. 결국 타인을 의지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도움닫기로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던 것이 잘못된 방법이었다는 것을 그의 반응이 말해주었다. 내가 나를 바로잡을 수 있고 내가 내 중심이 견고할 때, 타인과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또 한 번 체득하였다.      


그에게 가장 미안했던 것은, 그는 현재형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아 가는 입장에서 그를 대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해 가고 있는데 나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 했고, 거기에서 의사소통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몇 번이나 피력했고 나 또한 진심으로 그것을 신경 쓰고 주의하려고 노력했으나, 10여년의 기억이 10년 만에 뇌에서 순차적으로 정리되어 가는 과정을 겪는 중에 그의 말들을 다 기억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최근의 일보다 몇 년 전 일이 더 기억이 잘 나고, 며칠 전 일 보다 몇 달 전 일이 더 기억이 잘 나고, 어제보다 몇 주 전이 더 어제로 느껴지는 그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1분 1초부터 느껴가고 시간의 흐름에 적응해 가는 단계였다. 매일 매시 매분 매초 매순간 목이 졸릴 정도의 위협 속에서 살아있음이 치가 떨릴 정도로 그 단계를 버텨냈다. 그 때를 다시 살라고 한다면 못 살겠다.      


「 난 하루살이다.      

실제로도 난 지금 

시간의 흐름을 계절의 흐름을 

온전히 다 체감하지 못 하고 있고, 

치매 검사를 해 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정도로 

기억이 이어지지가 않는다.      

그 순간의 강렬함과 

에피소드들은 남는데 

이어지는 기억을 안고 가기엔 

뇌 용량이 벅차하는 것 같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받고 싶고, 

하루를 살아냈음을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기록한다.      

이마저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인고의 긴 터널들에 대한 억울함도 있고. 

영화 같은 내 인생 앞에서 현실감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 

       

이 자리를 빌어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진심으로 도와주고 많은 정보를 준 그에게 진정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내가 나일 수 없었고, 오해에 오해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언행들을 했던 내가 얼마나 미성숙해 보였을까 싶다. 연장자로서 더 품어주고 보듬어주지 못 하고, 의료진이라는 이유 하나로 다른 이들을 대하는 것과 다르게 대했던 나의 몸부림에 대해서도 사과를 하고 싶다.  한 인간의 ‘실존적 몸짓’이었노라고, 이해를 바라고 용서를 구한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직접 연락하여 표현할 순 없지만 그가 이 글을 꼭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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