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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an 11. 2022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다 2

무의식이 기억한 사랑

예상대로 그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라면 그럴 것이 마땅했다. 그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 큰일을 하고 있었고, 많은 것들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런 그가, 과거 지나간 사람인 나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나의 기억을 되찾는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와의 소통은 벼랑 끝에 선 내게 절박한 동아줄이었다. 나는 그와 꼭 대화를 하고 싶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와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흔적들을 찾아 헤맸다. 과거 그에게서 받았던 이메일을 읽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메일 주소와 같은 아이디를 메신저에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옛날 이메일주소와 같은 아이디로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를 찾는 길이 쉬웠다니!      


나는 도대체 왜 그 긴 세월동안 단 한 번도 그의 이메일을 다시 열어보지 않았던 것이며, 일상에서 매일 쓰는

메신저에서 그의 아이디를 검색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가? 나의 미련스러움과 멍청함을 자책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까지 얼어있도록 했는지, 무엇이 그에 대한 기억들을 무의식 저 너머 깊고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도록 만들었는지, 나의 뇌를 원망했다. 그와의 추억이 담긴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울고 또 울었다.   


이것은 무의식의 반응이었다.      


기본적인 감정마저도 죽어버린 채 살아만 있었던 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그런 존재였다 그는. 반사반응으로 나의 감정의 영역들이 일어났다.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했었는지, 그를 온 존재로 얼마나 원했었는지, 내 무의식의 반응이 알려주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느껴야 할 기본적인 감각들이 둔하던 때도, 나에게 강렬한 끌림을 가져다주었던 드라마가 세 편 있었다. 어찌나 끌리고 좋던지 tv를 보는 행위가 힘든 몸 상태일 때도 챙겨보고 돌려보곤 했었다.


그 때는 내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지 못 했는데, 기억이 돌아오고 나서 다 이해가 되었다. 세 편의 드라마 모두 소재와 줄거리가 나와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극 중 나이차도 그와 나의 나이차와 흡사했다. 뒤늦게 이 모든 것들을 인지하고 나서, 나는 나의 무의식의 반응들에 소름 끼치게 놀랐다. 나는 그에 대한 기억을 많이 잃어버렸던 그 순간에도 그를 연상하게 하는 것들에는 반응을 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원래 이렇게 강렬하고도 쉽게 잊히지 않는 감정일까?


아직 나는 사랑을 제대로 해 봤다고 할 수 없기에 무어라 자신 있게 정의를 내릴 순 없다. 그런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는 내 무의식이 사랑한 남자였다는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일찍 깨달아 나의 감정들에 충실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과거는 지나갔다. 내 인생에서 진심으로 사랑했던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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