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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an 11. 2022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다

'그'라는 약

내 발로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한 편의 영화 같은 증상들을 털어놓고 받은 진단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 너무 심해서 그동안은 정신적 후유증이 발현되지 못 하다가, 뒤늦게 시작된 거라고 하였다. 당사자인 나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증상을 내가 직접 겪는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는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의사선생님은 전혀 놀라지 않으셨다. 사람의 뇌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여서 뇌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교통사고, 지하철 참사, 자연재난과 같이 끔찍한 일들을 겪은 사람들이 겪는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다.      


또 다른 의사선생님은, 그가 나의 두뇌에 가장 큰 자극을 주는 사람이기에 그를 매개체로 하면 더 많은 기억을 되찾고 더 많은 기능들이 회복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하였던가?  나는 두 번째 의사선생님의 말을 붙잡고, 의학적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 그에게 연락한다는 명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명분을 마음 속 밑바탕에 두고 용기를 내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꿈만 같았다. 

그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이, 

그리고 나를 기억한다는 것이.      


오랫동안 내 인생의 일부분 기억을 잃어버리고 살았기에, 연락히 닿은 그 순간에는 그저 사고 전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쁘고 신이 났다. 그에게 나는 삶의 멘토가 필요해서 연락했노라고 둘러대었다. 한 때 나의 스승이기도 했었던 그에게는 그 이유가 연락을 받기에 가장 부담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통화를 부탁하였다. 그렇게 약 10년 만에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0여년만에 돌아온 기억 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통화 당시의 목소리와 동일한 목소리였다.     


속으로는 만감이 교차했지만 겉으로는 담담하려 애를 썼다. 이 매력적인 목소리를 이제야 듣는다는 것이 억울하고 이렇게 듣고 싶었던 목소리를 그동안 듣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 슬프고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줬다. 그러나 티를 낼 수 없었기에 내 감정과 마음을 숨긴 채 내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그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였다. 그는 시간에 쫓길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성심성의껏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복잡한 나의 마음을 대변하여 정리해주었으며, 그가 진심으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들을 해 주었다. 그렇게 세상과의 소통은 시작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그와 연락을 하면 '내 인생의 답'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는 것 같았었다. 그에게서 답을 찾기 위해 그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을 신이 허락하였노라고 내 멋대로 해석하였다. 아픈 몸으로 누워서 신음소리가 나오는 중에도 그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몇 번이고 반복해 들었다. 10년을 식물인간으로 살다시피 하다 의식이 깨어난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되면서, 더 이상 더 내려갈 곳이 없는 나의 존재를 일으켜줄 수 있는 건 그라는 확신이 들었다. 


듣고 또 듣고, 그의 목소리를 통해 그의 존재를 느낄 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치료를 빌미로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자주 보내었다. 큰 사람인 그는 무언가 내가 인생의 벼랑 끝에 있음을 눈치 챘는지, 연락을 받아주기 힘든 바쁜 상황에서도 꾸준히 연락을 받아주었다. 결국 그에게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니? 화제가 집중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고, 나는 나의 의학적 상태에 대해 털어놓게 되었다.

     

여전히 태산 같은 존재인 그는, 자신이 나에게 그 정도의 존재라는 게 놀랍다고 하였다. 그는 나에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대단한 사람인데, 그런 그는 겸손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나버린 세월들을 다 거쳐 왔기에, 더 이상 나를 향하여 과거의 감정과 같을 수 없는 자리에 있기에,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담담하고도 어른스러웠다.      


그러기에 나는 ‘그는 이성적이고 냉철하니까, 문제될 거 없을 거야. 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게 모두를 위하는 일일거야.’ 라는 합리화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목숨을 살리고자 현재의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에게 연락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망해버린 내가 더 이상 매력적인 존재일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의 삶에 영향을 줄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성공할 대로 성공해버린 그가 나의 연락에 조금도 영향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또한, ‘사람이 죽기 직전인데, 사람 하나 살리기 위해 연락을 받아주고 대화에 응해주는 것이 뭐 그리 잘못된 일인가’ 하는 내 입장만을 고수하는 고집도 있었다. 


그 때의 나는 매일 고통스러운 치료를 감당해 내느라 소리를 지르며 울었었고, 그 치료를 받으러 갈 힘을 충전하기 위해 그의 존재가 필요했었던 터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인생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매일 힘겨운 치료와 호흡곤란과 싸우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더는 그를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불가능한 이야기잖아?’ 라는 나의 머리와      

‘뭔가 더 연락하면 안될 것 같아.’ 라는 나의 본능적 직감이  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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