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아빠랑 병원에 라식하러 왔는데 의사샘이 나보고 라식이 문제가 아니고 눈 상태가 지금 심각하대 잘못하면 실명될 수도 있대. 빨리 당장 큰 병원 가서 수술해야된대."
이 무슨 갑작스런 얘기인지.........
말하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말하는 도중 드문 드문 울먹이는 것 같다.
눈 상태가 좋지 않고 그래서 당장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해야 하고, 그래서 담당 안과의사가 소견서를 써주어서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시험을 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데 하고 싶던 라식수술을 하려고 병원을 갔는데 의사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딸아이도 놀라고 듣는 나도 무척이나 놀랐다.
의사는 최악의 사태를 얘기해 준다고 하더라도 두 눈 모두 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은 내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사무실 밖으로 나와서 친한 보건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딸아이의 병명을 말하면 무언가 도움을 받을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병명과 갑자기 일어난 일에 대해 말을 하다가 의사가 말한 최악의 상황을 입에 올릴 때에 나는 거의 울먹여서 말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하긴 살면서 닥치는 많은 일들은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제의 일 역시 마찬가지다. 딸아이가 공무원 시험을 치고 시험점수를 확인하고 나름 결과에 만족하고 있는데 뜻밖의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고 둘 다 너무 많이 당황을 했다.
병명은 '망막박리'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보가 많이 나온다. 원인을 조회해보니 노화, 당뇨, 외부로부터의 충격, 그리고 심각한 근시가 있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그중에서 심각한 근시가 원인인 것으로 생각이 된다.
항상 휴대폰을 한밤중 깜깜한 가운데 눈에 가까이 폰을 두고 인터넷을 즐기는 딸아이의 안좋은 습관을 몇 번 잔소리를 했지만, 그것이 심각한 근시가 되고 그로 인해 망막박리까지 진행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다른 그 어떤 것도 원인이 될 것이 없어보인다.
딸아이는서 불과 한 뼘정도 떨어뜨린 위치에서 폰을 열심히 본다.
그것이 낮에도 그렇지만 깜깜한 밤에 침대위에서 그렇게 폰을 보아대니 어찌 눈이 멀쩡하겠는가?
게다가 눈이 안좋은 딸은 안경을 쓰는데 안경도 없이 그렇게 폰을 거의 매일 보는 것이 아닌가?
정말 좋지 않은 습관임에 틀림이 없다.
사람들이 없는 사무실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딸아이에게
"엄마가 너의 병에 대해 조회를 좀 해봤는데, 너는 어디에도 충격을 받은 일도 없고, 노안도 아니고, 당뇨도 아니고 그 어떤 원인은 해당사항이 없는 것으로 보여지며, 오직 지나친 근시가 가장 근거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게 엄마가 평소에 하라는 대로 좀 폰을 조심해서 봤어야지."
하니
"아이 잔소리 듣기 싫어. 고만해.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걸....." 한다.
"잔소리가 아니고 엄마가 평소에 하는 말만 잘 들었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니야. 지금도 너 앉는 자세가 딱 디스크를 유발하는 자세인 것은 아니? 너 혹시 시험 합격해서 발령이 나게 되면 그 자세로 매일 일하면 디스크로 인해 허리 수술하게 될거야."
"하이고 알았어."
딸아이는 내 말을 듣기 싫어하고 나는 듣기 싫어하는 딸아이에게 답답한 마음에 자꾸만 말을 폭포처럼 쏟아낸다.
에휴~~~~~
정말 불행중 다행인 것은 질병의 증상이 없었는데 라식수술을 하러 안과에 들러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조금만... 몇 달만 늦었어도 실명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발견 시기가 시험을 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수술을 받기에 여유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내가 해외여행을 가려고 패키지 상품을 예약해두었는데 급히 해지를 했다. 혹여 늦어지면 위약금이 더 많이 나올까 염려되어 딸아이 전화를 받자 말자 예약을 취소했다.
위약금이 10%나 되어 사십여만원의 돈을 못 돌려받을 처지에 놓여진 것이었다. 여행사에 전화해서 사정을 말하고 취소를 요청하니 가족관계증명서와 진단서를 보내주면 알아보겠다는 말을 했지만, 위약금에 대해서 확답은 못해준다고 했다.
딸아이가 두 눈이 실명을 당할 줄도 모르는 이 상황에도 나는 사십여만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같이 여행하기로 했던 친한 동생에게 메세지를 보내 여행을 취소해야 되는 사정을 말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내가 취소하니 함께 취소를 해줄지를 물으니 혼자라도 간다는 얘기를 한다.
다행히 동행하기로 했던 동생의 남편이 나 대신에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했다고 하며, 나는 위약금을 물지 않기 위해 번거로운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딸아이의 수술문제를 거론하며 여행을 취소해야 됨을 말했을 때 그 동생은
"언니! 걱정말고 딸아이 수술만 신경써요. 난 괜찮아요."
말해주었다. 그 말에 정말 나만 걱정해주는 마음이 느껴져서 많이 고마웠다.
사람은 자신이 손해볼 수 있는 위기상황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는데 이 동생은 나보다 훨씬 낫다. 정말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나 대신 남편에게 사정을 말하니 그 고마운 남편이 내가 위약금을 물어야 할 정도면 자기가 가야지 라며 고맙게도 선뜻 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정말 고맙다.
지금은 병실이다.
대학병원이라고 하는데 마치 개업한 지 얼마되지 않는 듯 모든 것이 깨끗하고 조용하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딸아이가
"엄마 여기 너무 좋아.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
이렇게 말한다.
병원에 올 때만 해도 병원이 싫으며 왼지 더 자기가 더 아파질 것 같다는둥 걱정스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병실이 마음에 들었는지 병실 침대에 누워서 설치된 개인용 TV영상을 보며 키득키득 웃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짖는다.
나도 만족스럽다.
쾌적한 병실 창가에 앉아서 최근 구입한 블루투스 키보드를 키고 지루한 시간을 글쓰기를 하며 꿀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상 모든 일은 모두 나쁘지만도 않고, 모두 좋지만도 않다.
몇프로의 좋은 점과 몇프로의 나쁜 점이 있을 뿐이다. 어차피 수술하게 된 것! 병실의 생활을 나는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