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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신쥬디 Mar 29. 2024

등산으로 만끽하는 알래스카

노을, 빙산, 등산, 빝^아민, 모든게 nature

2015/6/14

2주마다 밴쿠버에선 새로운 승객들을 태우고 새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에겐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수백 명의 백발노인들에겐 설레는 크루즈 여행의 첫날이다.

새 크루즈 출항하는 저녁엔 LTTM이라는 웰컴 공연을 하는데, 뱃머리(bow)가 백스테이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공연 전 대기 시간에 어메이징한 노을을 볼 수 있다,

밴쿠버에서 케치칸으로 향하는 날 노을은 다른 날에 비해 유난히 아름답다. 어떤 날은 주황색, 어떤 날은 핑크, 보라, 오묘한 그라데이션이 끝없이 펼쳐지는데 진짜 황홀하다.ㅠㅠ

Bow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 때가 많아서 자주 나가진 않는데 노을 볼 때만큼은 타이타닉이 따로 없다.


6/19

어제는 Skagway에서 또 등산을 했다. 이번엔 일찍 나가서 제대로 올라가기로 작정하고 로날드와 같이 스타트!

힘들었다. 길도 가파르고 끝은 안 보이고 @_@… 큰 계곡도 있어서 한국 산 같았다.

3년 전에 한라산 등반을 내가 어떻게 했지..? 7시간 올라갔는데 백록담은커녕 구름밖에 안 보이고 6시간 걸려 내려와서 일주일 내내 쩔뚝거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ㅋㅋ

그 몸을 이끌고 청평에 놀러 가서 또 고생했던 기억이….ㅋㅋ아 한국 가고 싶네.

콸콸 흐르는 계곡을 지나다가 로날드의 제안으로 시원한 계곡물을 마셨다. 나는야 자연인.

나는 평소 걸을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인데 등산할 땐 더 시야가 좁아진다. 미끄럽고 위험하니까!

오늘도 흙이랑 바위만 보고 낑낑 올라가다가 가끔 주변을 둘러보면 꽤나 많이 올라왔구나, 뿌듯 뿌듯!!… 은커녕~ 키 큰 나무들밖에 안보였다…ㅠㅠ

아주 가~~~~ 끔 나타나는 전망대에선 뻥 뚫린 하늘이랑 아래 세상이 보였지만 끝까지 올라가기 전까진 경치 보이는 곳이 거의 없었다. ㅡ_ㅡ

너무 힘들고 시간도 촉박해서 그만 내려갈까? 하고 고민할 때마다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You’re almost there, don’t give up!!! It’s worth it!!!!

그럼 쫌만 더 가자~ 하고 한참을 가도 끝은 보이지 않…ㅠㅠ

우리 배 출항시간 맞춰서 내려와야 돼서 시간이 많이 없는데..!

로날드랑 고민고민 하고 있는 찰나에 또 다른 등산객이 It’s only 20 minutes from here! It’s so beautiful up there!!!

아 고랭? 20분?? 그럼 시간은 괜찮네, 그래 렛츠고!!! 하고 고고 했지만 도대체 어느 나라 20분이 그렇게 긴 건지 나참….. 우린 3시간의 등산 끝에 upper lake에 도착했고, 마주한 등산객들 말대로 진짜 고생한 가치가 있었다. 알래스카 맨날 구름 끼고 우중충한데 어젠 하늘도 맑고 공기도 시원하고 perfect!

쫄보라 호들갑을 떨며 저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나 진짜 별 짓 다 했네ㅋㅋ


목표였던 저수지에 도착했을 땐 1시. 나는 3시 45분까지 배로 돌아와야 했고.. 30분간 숨 돌리며 경치 구경 후, 1시 반부터 내려오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

두 시간 안에 배 타기 미션!

거의 산에서 질주를 했다. 등산화 없어서 러닝화 신었으니 산에서 러닝ㅋㅋㅋ

몇 번 미끄러지고 무릎과 발은 계속 아팠지만 한 번도 안 쉬고 내려왔다. 아니, 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질주 끝에 여유 있게 배로 돌아왔다. 휴!!!!

오늘 아침에 생각보다 다리가 안 아파서 의외다 싶었는데 지금 9pm, 다리가…. 너무.ㅋ.ㅋ.ㅋ.아프다.ㅋ.ㅋ.ㅋ

그리고 벌레 물린 데는 띵띵 부었다.. ㅠㅠㅠ 목, 발목, 종아리, 두피에도 물리다니 난 food pyramid 가장 아래에 있는지 벌레들만 있으면 된통 당한다ㅠㅠ

Skagway 정복!

등산은 할 때마다 뿌듯하다. 몇 번이나 포기할 수 있었지만 다 이겨냈으니까! 멋진 경치도 보고, 소중한 추억도 생기고, 어젠 맑은 계곡물도 마셨다.ㅎㅎ

미국은 정말 다 가진 나라다. 빙산부터 사막까지 온갖 기후랑 지대를 다 가졌고 그 땅마다 제각각의 자원이 나오니, 남 부러울 게 없어야 할 나라다. 욕심 그만 좀 부려라.



6/22

Sea day- 유난히 날씨가 맑고 해가 뜨거웠다! 이게 웬일인가 하는 찰나에 도미닉이 sky deck에서 sun bathing 하러 가자는 제안을 하길래 오키! 하고 배 꼭대기에서 한참 햇빛 쬐고 놀았다. 나는 베짱이지만 수많은 개미 크루들은 사실 햇빛 볼 시간도 없을 만큼 일을 많이 한다. 엔지니어링 실습생인 도미닉도 마찬가지로 밖에 나갈 시간도 거의 없다. 근데 오늘부터 shift 바뀌어서 낮에 프리하다고 나랑 lunch mate 하기로 했다. Friend 아니고 “mate”ㅋㅋㅋㅋ

햇빛 얘기를 하다가 도미닉이 vietnamese 블라블라 하길래 갑자기 베트남?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몇 번을 묻고 나서야 알아들었다. 도미닉이 말한 건 영국식 발음의 비타민이었다… vit^-ah-min … 나는 그걸 viet^na-mese 비스름하게 들었던 것. 오 마이갓.... “oh… you mean 바이타민!???”

그럼 도미닉은 미국영어가 웃기다고 놀린다. 알다가도 모를 외국영어의 세계.....

스코트랜드에서 온 Ross도 말을 참 요상하게 한다… 한국 사투리 같다. 호주영어, 영국영어, 더치영어, 스캇랜드영어, 남아공영어, 동남아영어 등등 온세계 영어 쓰는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중에 동남아 영어가 제일 알아듣기 어렵다.ㅜㅜ 뚭뚭땁땁..ㅜㅜ??….

sea day에 크루즈에서 보는 아름다운 알래스카. 이 사진은 정말, literally, 빙산의 일각”

무튼.. 따뜻한 햇빛 쬐면서 노닥거리다 보니 3시간이 지나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고… 저녁 먹고 한 시간 동안 연주를 했다. 요즘에 죨쥐랑 바꿔서 내가 세컨건반 하는데 재밌다. 죨쥐는 여전히 30% 정도만 친다. 그래도 많이 늘었다. 휴.


6/23

땅에 있는 웬만한 직업들은 크루즈 내에서도 존재한다. 이 배에 직원만 600명이 넘으니! 저번 일기에도 썼듯이 house keeping, dining, beverage, 등 서비스업이나 보이지 않는 힘든 일하는 사람들은 필리핀/인도네시안들이 대부분이고 engineering/sailing은 유러피안, 내가 속한 entertainment는 미국/외국백인, shop/casino는 남미/인도 등 여기저기서 온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윗분들을 제외하면 entertainment팀인 우리가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센 편이다. 샵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commission이 대부분이라 얼만큼 파느냐에 따라 달렸고 거의 하루종일 서서 일해야 한다. Art gallery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너무 안 팔려서 월급 거의 받지도 못하게 생겼다고 나한테 한탄했다ㅜㅜ 100% commission으로만 월급 받는 아트 경매사 다니엘은 지금 월급 밸런스가 마이너스라고…

이런 걸 접하면 진짜 많은 생각이 든다.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해서 돈이라는 수단으로 그걸 compensate 하며, 이게 진짜 공평한 건지.

내가 이만큼의 일을 하고 이만큼의 대가를 받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이 세상이 만든 기준은 이론적으론 일리가 있다. 뮤지션들은 수년간 악기를 다뤄왔고 음악공부를 했으니 그동안 투자한 게 많았다고 여기고, “professional”이 된 지금, 그 투자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게 세상이 만든 기준이다. “남들이 단기간에 쉽게 못하는 일“인 건가?

그럼.. 교육받지 않아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게을러서,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해서 그 위치에 서게 된 걸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많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겐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다고 생각한다. 가난해서였든, 잘못된 환경 때문이든, 어쩔 수 없이 자기 계발을 하지 못해서 결국 “쉬운” 일에 종사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동남아에 전반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advantage 삼아서 크루들을 죄다 동남아시안들로 쓰는 크루즈 회사들이 참 맘에 안 든다. 백인들도 얼마든지 직원으로 쓸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죄다 동양인으로 골랐는지 사장한테 묻고 싶다. 고객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역시 Asian들이 백인들 대접해 주는군..’ 어린애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걸 보고 자라는 애들이 과연 색안경 안 끼고 사람을 볼 수 있을까? 만약 동남아인들이 아닌 흑인들이었으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을 텐데, 인종차별에 있어서 동양인은 흑인만큼 예민하거나 크게 이슈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것 같다. 이걸 “차별”이라고 단정 짓기도 애매하고…. ㅠㅠ

내가 한국인으로서 거리감 없이 지내는 게 나 혼자 잘 지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동양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한다. 난 미국에서 태어난 2세도 아니고 한국 문화와 언어에 100% 능통한 코리안인데 너네랑 잘 어울라고 일도 잘하니까 다른 동양인들을 접할 때도 그들의 능력이나 성품을 외모로 평가하지 말기를!

반대로, 주눅 들어있거나 피해의식이 있는 동양인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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