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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신쥬디 Oct 26. 2024

유럽을 향한 대서양의 길

배로 대서양을 건넌다면?

바하마 크루즈의 마지막 정박지, 아루바에 왔다.


Aruba

이름만큼은 익숙한 아루~바.

친구 미렐라의 꿈의 휴양지다.

고등학교 때부터 툭하면 "I wanna go to Aruba!" 이 말을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데길래 그렇게 노래를 부르나 싶었는데,

음... 그럴만한 것 같기도?

이런 바다를 며칠 연속 보고, 뜨거운 태양의 여파로 피부가 뱀 허물 벗듯 까져나가는 나로선

크게 감탄하진 않았다. 응~ 그냥 또 예쁜 바다구나~


(사람 마음이란 참 상대적이다. 지금 당장 아루바에 간다면 감탄을 금치 못하겠지.ㅋㅋㅋ)


감탄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바하마 여행지니만큼 베프와 해변을 거닐었다.

이전까지와 다르게 물에는 들어가지 않고, 주로 그늘을 찾아 거닐었다.

백장미 같은 산호를 발견했다. 반들반들하고 동그랗게 말려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색칠하고 싶기도 하고, 이걸로 작품 하나 만들면 좋겠는데? 싶었다.


"이거 너무 예쁘지 않아!?" 하는데 베프의 반응은 싱거웠다.ㅋㅋㅋㅋㅋ

난 쓸데없지만 귀엽고 예쁜 걸 좋아하는데

베프는 그런건 예쁜 쓰레기라며 ㅋㅋㅋㅋㅋ 팩폭을 날렸다. ㅋㅋㅋㅋ

기념품샵에 갈 때마다 내가 예쁜 쓰레기를 사지 못하게 자제시켜준 고마운 팩폭이었다.ㅋㅋㅋㅋㅋ


캐리비안 마지막 섬 아루바를 끝으로 바하마 크루즈가 끝이 났다.

뜨거운 바하마, 안녕~~~~~ 분명 또 올 기회가 있을 거야!


크루즈로 돌아와 오후 연주 임무를 수행했다.

오후 3시, 예쁜 라운지에서 tea time을 즐기는 승객들을 위해 라이브 연주를 종종 했다.

팝을 주로 연주했는데, 밴드 멤버들이랑 눈빛 교환하며 jam 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신나는 곡 하면 모두가 신나 했고, 발라드곡을 할 때면 우리 모두 눈을 반쯤 감고 연주했다.

ㅋㅋㅋㅋㅋㅋ


Entertainment 팀의 일정표

열흘간의 바하마 크루즈를 마치고, 플로리다에서 새로운 승객들을 태운 크루즈는

유럽을 향해 대서양을 가르기 시작했다.

무려 6일간의 sea day를 보내야 Azores 섬에 도착하고, 또 이틀간의 sea day를 보내면 스페인 말라가에 도착하는 루트였다.


일정표에 빨간색 화살표 "HR FWD"는 한 시간 앞으로 당겨지는 밤을 의미한다.

유럽에 도착하면 총 6시간을 잃는 거였다!

시간이 바뀌는 날엔 새벽 12시 59분 후에 바로 2시로 되었고, 그만큼 모두가 잠을 줄이는 날이었다.

새벽 2시에 문을 닫는 우리들의 놀이터 Officer's Bar도 HR FWD 밤에는 새벽 1시에 문을 닫았다. 새벽 1시는 곧 2시니까! ㅋㅋ


이렇게 시간을 잃는 밤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침엔 일이 없는 나에겐 별 지장은 없었지만

매일같이 시차 계산법이 달라지니 미국,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두뇌를 가동해야 했다.

ㅋㅋㅋㅋㅋ


대서양 한복판에서 부활절도 맞이했다.

파스텔 색으로 뷔페가 꾸며져 있었고 Easter bunny 디저트도 한입! :)

부활절 예배에도 참석했다.

크리스천 크루가 모이는 예배에 주기적으로 참석을 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하루종일 일하는 동남아시아인 크루들이 자는 시간을 아껴서 예배를 위해 모이는 시간이었는데

그들의 열정과 예쁜 마음에 처음엔 감동해서 '와.. 이런 환경에서도 예배하다니 본받아야겠다..' 싶었다.


예배에 참석한 나와 내 베프는 자연스레 반주자가 되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마추어 찬양단과 합을 맞추는 것도 힘들었고,

필리핀 억양의 설교 아닌 설교를 듣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4개월간 꼬박꼬박 아마추어(?) 예배에 참석했다.

휴우....


10시간 비행으로 바다 건너는 것도 길게 느껴지는데

그 거리를 6일에 걸쳐 가자니, 비행기는 참 대단한 수단이구나.

제목: Are we there yet?

유럽을 향하는 Koningsdam을 표현한 내 작품이다.

"Are we there yet?"

.... Almost!!!!!



Horta, Azores

두둥!!!! 드디어! 땅을 밟았다!

Azores 섬, 포르투갈 영토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연주곡 Islands Azores가 있는데, 여기구나?

하와이처럼 섬 여러개가 모여있는 지역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내렸는데 이게 웬걸, 이런 날씨를 기대한 게 아닌데..?

하필 우중충하고 찬바람 쌩쌩 부는 날에 왔네...?

시내 구경을 마치고 베프와 나는 카페에 앉아 하트시그널을 봤다.

한참 챙겨보던 때라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인터넷 있는 곳을 찾아 하트시그널을 챙겨봤다.ㅋㅋㅋㅋ

 

특이하게 생긴 나무.

손가락으로 욕 하는 것 같아...^^;;;

Horta 구경은 여기까지~



Ponta Delgada, Azores

다음 날은 Azores의 또 다른 지역, Ponta Delgada에 정박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구름 먹먹한 날이었다.

또 바람과 한바탕 하겠군..

회색빛 하늘 때문인지 몰라도 도시 전체적으로 흑백이었다.

Azores, 내 스타일 아니야~

버스 투어를 했다면 색다른 풍경을 봤을 테지만 앞으로 찐 유럽을 볼 날들이 4개월이나 있으니 욕심 내지 않았다. 

바람과 함께 존재하다.



오후가 되니 서서히 날이 개기 시작했고, 칙칙했던 광장이 조금 생기를 찾았다.

나는 작은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며 스케치할 곳을 늘 찾아다녔는데

Azores라는 생소한 섬에 왔으니 그래도 한 폭은 남기자 싶어서

오전보다는 예뻐진 Porta Delgada의 광장을 손바닥만 한 그림으로 남겼다.

뭉게구름에서 떨어지는 건지, 분명 하늘은 맑았는데 굵은 빗줄기 몇 가닥이 스케치북에 떨어졌다.

자세히 보면 빗방울에 번진 흔적이 있는 내 여행스케치

우두커니 서서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던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사실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완성하니 그가 말을 걸었다.

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기다렸다가 말을 건 듯 싶었다. (빤히 쳐다보는 게 더 방해됐는데..ㅋㅋㅋㅋ)

내 스케치북이 궁금했는지 나보고 아티스트냐고 물으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고

독일인이라는 그에게 독일에서 남긴 스케치도 보여줬다.


이제 크루즈로 돌아갈 시간~

떠날 때 되니까 맑아지는 하늘, 좀 얄밉네!


바다에서 이틀 보내면 대망의 스페인에 도착한다.

그땐 부디 쨍쨍한 하늘이 맞아주기를.

스페인에 도착하면 매일 지중해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닐 수 있다!

진짜 거의 다 왔다, 이틀만 더 바다 위에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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