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바로 Mother of Dragons의 나라?
크루즈 꼭대기층에는 조깅 트랙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gym 대신 바깥바람 쐬며 조깅하는 게 내 운동 루틴이었다.
그때도 그 순간이 참 좋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더욱더 특별한 순간이었다.
바다 공기를 이보다 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랴
참 즐겁게 운동했지만 살은 빠지지 않았다는 ^^;
파도가 심하거나 기후가 안 좋은 크루즈였다면 야외 조깅은 금지되었을 텐데, 4월 지중해 크루즈는 늘 푸르고 평화로웠다.
우리 크루즈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로 향했다.
크로아티아… 월드컵 때 들어본 나라다.
두브로브니크? 생전 처음 들어본 도시다.
두브로브니크는 The Game of Thrones(왕좌의 게임) 촬영지라는데, 한참 그 시리즈가 대세일 때 미국 친구들이 틈만 나면 Game of Thrones 얘기를 해도 나는 호기심조차 갖지 않았었다. 워낙 드라마나 영화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전쟁 이야기라면 더더욱 무관심했기 때문에 내가 왕좌의 게임을 보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 유명한 시리즈 촬영지라고?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자유시간도 많고, 캐빈에 티비도 있고, 마침 Game of Thrones 전체 파일을 공유해 주겠다는 친구도 있는 거 아닌가?
‘이게 그렇게 재미있다고? 한번 볼까?’
마침 베프도 Game of Thrones를 안 본 상태여서 우린 이층침대에 누워 캐빈에 있는 티비로 왕좌의 게임을 보기 시작했다.
첫 에피소드가 끝났을 때 우리의 동공지진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긴 시리즈 중 첫 에피소드가 벌써 이렇게 충격적이라고…?’
어마어마한 시리즈, 왕좌의 게임 촬영지!
두브로브니크에 정박했다.
두브로브니크에 몇 번 와본 친구들과 같이 도시에 입성할 수 있었다.
성문부터 위엄 있었다.
성문을 지나니 넓은 광장에 관광객들이 붐볐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건물들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노란빛을 띠고 있는 건물과 돌바닥이 조금 삭막하게 느껴졌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매력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왕좌의 게임 촬영지 될 만하네 싶었다.
성당에도 잠시 들어가 보았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성당을 너무 많이 봐서 점점 감흥을 잃게 된다.
다 아름답지만, 다 거기서 거기로 비슷한 느낌이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성당은 가우디의 작품 외에는 많이 없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당 또한, 사진을 안 남겼으면 내가 성당에 들어갔다 왔다는 것조차 까먹었을 것이다.
광장 한편엔 듀오 버스킹하는 듀오가 있었다.
‘우리 크루즈 연주자들도 버스킹 한번 해봐!?’ 농담을 던지며 지나갔다.
두브로브니크에서의 출항은 밤 10시인 데다가 연주도 없는 일정이어서 여유롭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워낙 작은 도시라 구경은 금방 끝낼 수 있었고, 뭘 할까 잠시 고민 후에 카약을 타기로 결정했다.
기껏 배에서 내려서는 작은 배 타고 노 젓는 우리의 삶.ㅋㅋㅋ
마침 카약 타기에 완벽한 날씨였다. 4월 지중해 크루즈는 여태 갔던 크루즈 중 가장 볼거리도 많고 날씨도 좋았던 최고로 손꼽히는 크루즈다.
2인용 카약을 타기로 결정하며 아무래도 메인 노꾼은 남자가 해야지~ 싶어 남녀 짝을 지어 카약에 올라탔다.
나는 키튼이라는 남자 싱어와 한 배를 탔고, 베프는 마이클이라는 남자 싱어와 배를 탔다.
키튼과 마이클은 뮤지컬 팀에 있는 메인 싱어들인데, 우리와 막 친해지는 시기였다.
마이클은 우리보다 열 살쯤 많은 게이 친구였고, 키튼은 우리보다 조금 어린, 게이가 아닌 남자였다.
뮤지컬 팀의 남자들은 십중팔구 게이다. 이번 크루즈에서 게이가 아닌 남자는 키튼과 빅터 두 명이었다.
빅터는 후에 나와 절친이 되었고(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키튼은 나중에 엄청난 일을 벌이는 캐릭터로 등극한다.
후속 편에는 빅터와 키튼이 자주 등장할 예정이다.
아무튼 나는 키튼과 짝꿍이 되어 두브로브니크 해안에서 카약킹을 즐겼다.
키튼은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래서 신앙에 관한 얘기를 하며 본인이 얼마나 올곧은 사람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white priviledge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부족할 것 없는 가정에서 자란 키튼은 빨간 머리에 너무나도 하얀 피부를 가진 “red head” 백인 남자였는데, diversity에 대해 얘기하며 본인이 얼마나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본인이 소수 인종을 얼마나 존중하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We white people are so spoiled라며 백인들을 열심히 까대길래 얘 왜 이렇게 오버하지 싶었는데, 듣다 보니 그의 결론은 백인이 아닌 여자들만 사귀고 싶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다.
ㅡ.ㅡ 그럼 그렇지…
이때까지만 해도 난 키튼이 좋지도,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은근히 잘난 척하고 말 많은 게 좀 아니꼬웠지만 올바른 친구라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양아치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
아무튼, 빨간 머리 키튼과의 대화는 재미없었지만 카약킹은 재밌었다.
베프+마이클 조합 카약과 붙어 사진도 찍어주고, 넷이서 잠시 내려 풍경 감상도 했다.
성벽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잠시 내려 언덕에 올라가 그늘에서 휴식을 취했다.
노 젓는 건 주로 키튼과 마이클이 해서 나와 베프는 크게 힘들진 않았다.
햇빛이 뜨거워서 더웠을 뿐..ㅎㅎ
주어진 시간 내에 돌아가야 해서 다시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향해 노를 저었다.
여기서 보는 뷰가 동화 같았다. 동영상도 참 많이 찍어놨는데.. 그때 브이로그를 할걸….
유럽의 마을과 성을 보면 왜 그렇게 성벽에 갇혀있는 공주 이야기가 많은지 이해가 간다.
카약킹을 슬슬 마무리~
사실,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왕좌의 게임을 막 시작했던 때라 성곽과 도시에 큰 애착을 갖진 않았었다.
왕좌의 게임을 한참 보고 갔더라면 떠오르는 장면이 몇 개 있었을 텐데 싶었다.
이렇게 배를 타고 저 성벽을 향하는 씬도 분명 있었을 텐데!
카약킹을 마치고 우리 네 명은 다른 친구들과 연락이 닿았다.
어디서 뭘 하고 있나 물었더니 절벽 다이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 다이빙이 웬 말인가.
어쨌든 그들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길을 잘도 찾아갔다.
두브로브니크의 돌길 바닥은 굉장히 반들반들했다.
골목길과 성벽을 따라 친구들을 따라갔더니 해안에 다다랐다.
우리는 실컷 노 저었는데 저 멀리 보니 모터 달린 스피드 보트가 달리고 있었다.
흠.. 비행기도 이코노미만 타는데 배도 이코노미만 타는 나구나.
괜찮아.. ^^ 난 공짜 여행하며 돈 버는 중이니까 ^^;;;;;라고 늘 합리화를 했다. 하하.
에너지 넘치는 우리 친구들은 신나게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위험해 보여서 조마조마하는 건 나뿐, 본인들은 아주 신나게 몸을 던지고 있었다.
하여튼 파워 E인 예술가 친구들은 말괄량이들이다. 그들의 거침없는 에너지가 때론 부러웠다.
역시 에너지 레벨이 비슷한 나와 베프는 말괄량이 친구들을 실컷 구경하고 우리만의 갈길을 갔다.
늘 그렇듯 특별한 계획도, 궁금한 것도 없이, 새로운 도시에서 정처 없이 거닐었다.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레스토랑들이 참 사랑스러웠다.
과하지 않은 장식이 예쁘게 어우러져 있는 게 딱 내 스타일이었다. 편안한 아름다움!
별 거 없는 듯 하지만 예쁜 카페 테이블
예쁜 골목 레스토랑 중 한 군데에 들어가 우린 저녁으로 버거를 먹고 좁고 긴 계단 골목을 걸었다.
계단이 예뻐서 돌아가면서 사진을 하나씩 찍어주는데 ㅋㅋㅋ 사진 뚝딱이인 나는… 건질 수가 없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고장 나는 나 ㅠㅠ 크루즈 피아니스트 시절의 딱 한 가지 후회가 바로 내 사진이 많지 않다는 것. ㅠㅠ
카메라 앞에서 뻔뻔하게 포즈 잘 취하는 사람들 비법이 뭔가요?
인생샷 존 계단을 오르니 두브로브니크 시내의 붉은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크로아티아 출신 친구는 한 명도 없는데, 두브로브니크의 미관이나 분위기를 보면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왠지 차분하고 우직할 것 같은 느낌이다.
스페인, 이탈리아처럼 화려하고 열정적인 것 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듯한데.. 전적으로 나만의 생각이다.
크로아티아 사람은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
특이하게 생긴 나무와 한컷 찍은 베이시스트 아구스틴.
아구스틴은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너무 따뜻한 친구다. sns를 안 하는 친구라 소식이 끊긴 게 너무 아쉽다.
아르헨티나에서 잘 지내니 아구스틴? 아니면 아직도 크루즈에서 열심히 베이시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려나?
두브로브니크에서의 잔잔한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종일 여행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던 터라, 여길 떠나기 전에 여행 스케치 한 장을 꼭 남겨야겠다 싶어 친구들을 잠시 두고 혼자 스케치할 곳을 찾았다.
광장을 그리자니 그리고 싶을 만한 특색은 없다고 느껴졌고, 아무래도 처음에 이 도시에 왔을 때 마주한 웅장한 성벽이 기억에 남아 성문 앞에 서서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림 그리다가 크루즈 놓칠 수는 없으니 재빠르게 대충 스케치를 마쳤다.
다 그리고 나니 어느덧 해가 졌고, 마침 크루즈로 돌아가던 친구들과 딱 마주쳐서 함께 홈스윗홈 코닝스담으로 귀가했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굉장히 생소한 곳이었지만 이렇게 또 발도장을 찍고 소중한 추억 한 보따리를 담았다.
후에 나와 베프는 왕좌의 게임에 푹 빠져 금세 시리즈를 끝냈다.
그땐 마지막 시즌 8이 나오기 전이라, 완결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시즌 7까지 정주행 했다.
두브로브니크에 가지 않았더라면 난 왕좌의 게임을 안 봤겠지. ㅎㅎ
친구들과 참 즐거운 추억을 남긴 특별한 도시.
후에 내가 키튼을 참 많이 미워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두브로브니크를 생각하면 키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키튼이 아닌 다른 친구와 카약을 탔더라면 두브로브니크가 조금 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겠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키튼과 노 저으며 했던 대화가 그의 위선을 증명했기 때문에 그를 미워할 수 있는 ’명분‘이 더 생기긴 했다. 하하!
2018년 4월 23일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보내고, 우리 크루즈 코닝스담은 몬테네그로 코토르로 향했다.
몬테네그로, 코토르 또한 생소한 지명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