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표면에 꽂혀 이면을 놓칠 때가 있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려 고군분투할 때마다 남편이 말했다. “분유 먹이자. 분유도 잘 나온대.”
그 말이 너무 미웠다. 내 고생이 안 보이는 거야?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어떻게 저렇게 쉽게 말하나. 그는 모유수유를 가벼운 선택지처럼 여기는 듯했다.
마사지를 받으러 가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남편이 분유 먹이자고 할 때마다 너무 미운 거예요.”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던 원장님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아내가 더 이상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는가 봐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남편은 애쓰는 내가 안쓰러웠을 것이다. 나를 옆에서 지켜본 만큼 분유를 권하기 쉽지 않았을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유를 먹이자는 말을 내뱉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그는 몇 차례나 말했다. "나에겐 자기가 힘들어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해." 내 말에는 그렇게 귀 기울이기를 바랐으면서 정작 그의 말은 흘려 들었다.
마음은 마음을 왜곡하기도 한다. 표현과 듣는 사람의 해석을 거치면서 곡해가 생긴다. 진심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이유이다. 나중에야, 한참 뒤에야 “아, 그런 뜻이었구나."하고 깨닫는다. 그러므로 부정적으로 꽂힌 말이 있다면 맥락과 상황 전체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보이는 풍경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피로도 덜하고 말속에 담긴 가치가 보인다. 깨끗한 마음도 보인다. 걱정과 사랑 같은.
한 가지 더, 상대의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나 자신의 상태와 깊이 연결돼 있다. 누군가의 말이 자신을 거칠게 찌를 때에는 마음에 상처가 나있던 상태는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말의 표면에 꽂혀 이면을 놓칠 때가 있다. 그러니 말 앞에서 조금 더 신중하고, 조금 더 너그러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