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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댕 Feb 01. 2021

서른 번째 촏: 한 뼘

초 단편 소설 시리즈

  작가는 3년 만의 소설 초고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이제 이야기의 대단원만 남아있다. 결승점으로 손만 뻗으면 우승할 것만 같은데, 이 한 뼘 남짓한 거리에 아른거리는 결승선이 손에 잡힐 생각을 안 한다. 마지막 문장이 도무지 적히지 않는 것이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눈을 감고 머릿속을 비워본다. 단어들이 미끄러진다.

  작가의 첫 문장은 신이 내려준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마지막 문장은 누구한테 받아와야 하나? 작가는 괜한 심술이 났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글감을 떠올리다 보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잠깐 잠이 들었나? 작가는 살짝 눈을 떠본다. 방에 불을 켜 두고 잠에 들었더니 눈이 부셔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 앞으로 누군가 시야에 들어온다.

  “누…누구세요?”

  “뭔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좀 도와줄까?”

  악마다. 분명하다. 역사에 남는 명작을 써낸 작가 중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온몸에 땀이 흐르고 손 끝도 움직이지 않는다.

  “네 목숨.”

  “난 뭘 얻을 수 있죠?” 겁먹을 필요 없다. 이건 거래다.

  “모든 것. 단, 1년 후에 목숨을 잃고 역사에 남는 문호로 기억될 것이다.”

  작가는 생각에 잠겼다.

  “거절합니다. 거래는 끝났소…니다.” 말 끝이 떨렸다.


  헉! 작가는 깨어나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단잠에 팅팅 불어 오른 얼굴이 땀으로 반질거린다. “종이, 펜, 종이, 펜.” 급하게 필기구를 찾아 그는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한 뼘 거리의 결승선을 다시 출발선으로 삼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2년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소설 “손님”의 집필 후기를 이와 같이 남겼다.

“난 악마와 거래하는 대신 악마에게 소설을 빼앗아 베스트셀러를 썼다. 언젠가 영감을 강탈당한 악마가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악마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더 좋은 조건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about <촏>

글쓰기 앱 <씀: 일상적 글쓰기>에 매일 업로드되는 글감을 주제로, 글쓰기 훈련용으로 쓴 초 단편 소설 시리즈입니다. <씀>의 서비스가 거의 방치 상태이다 보니 작성 글 백업 겸 틈틈이 정리해 브런치에 공개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 각각의 <촏> 에피소드는 별개의 내용이며 한 편으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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